
서울 강남구 아파트 단지. 집값이 비싼 강남 등 서울 상급지는 주택용 전력 사용량도 많은 편이다. 뉴스1
기후위기, 신축 아파트 선호 키운다
고가 입지일수록 주민들은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자연스레 필수 가전 외에도 프리미엄 가전 사용이 늘어난다. 이 같은 생활 트렌드가 높은 전력 사용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2023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냉장고, 세탁기 등 필수 가전제품이 아닌 비(非)필수 가전 보유율은 소득 수준과 대체로 비례했다. 특히 월평균 소득 600만 원 이상 가정은 제습기, 오븐, 안마의자, 홈케어 미용 가전 보유율이 평균치를 크게 웃돌았다. 흥미로운 점은 전기차 보유 비율도 서울의 이른바 상급지일수록 높다는 것이다. 4월 기준 서울에서 전기차 등록 대수가 가장 많은 구는 강남(약 1만4000대)이고, 서초(약 7000대)가 뒤를 이었다. 반면 평균 주택 가격이 낮은 편인 강북구와 금천구는 각각 1500대 정도에 머물렀다(이상 한국교통안전공단 통계).갈수록 쾌적한 주거 환경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집값과 전력 사용량의 연관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극심한 더위와 추위가 반복되는 기후위기 때문이다. 부유층뿐 아니라 중산층도 삶의 질을 유지하려면 전력 사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에너지 사용량이 갈수록 증가하는 지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중산층 수요가 몰려 있어 입지 가치 반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전력 사용량은 신축 아파트 선호도도 강화할 것이다. 신축이 구축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구축 아파트의 전기요금은 신축에 비해 1.5∼2배 비싸고, 난방비는 20∼30% 많이 나온다고 한다. 신축 아파트에 적용된 LED(발광다이오드) 조명, 회생제동 엘리베이터 등 고효율 설비와 우수한 단열 시공 덕분이다. 기후위기는 아파트의 에너지 경쟁력이 갖는 중요성을 부각할 것이다. 구축과 신축의 가격 격차가 더 커질 공산이 크다.
기후위기는 근로자의 근무 형태와 도시 공간도 점차 변화시킬 전망이다. 이는 하나같이 부동산시장 재편을 예고하는 중대한 변화다. 전문가들은 향후 탄소절감을 위해 원격·재택근무가 뉴노멀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근무지 유연화는 오피스 시장의 중심축을 기존 도심 CBD(중심업무지구)에서 LBD(지역기반업무지구)로 바꿀 것이다. 이 같은 변화가 현실화되면 주거 입지에 대한 평가 기준도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도심으로의 빠른 출퇴근에 유리한 역세권보다 원격근무지를 비롯한 인프라가 집중된 주거생활권이 ‘슬세권’(슬리퍼로 이동할 만큼 가까운 생활권)으로서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AI 일자리 집중될 데이터센터 입지
부동산시장 전망에서 눈여겨볼 또 다른 에너지 키워드는 ‘데이터센터’다. 인공지능(AI) 산업 확대에 따라 데이터센터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지금까지 데이터센터는 수도권에 주로 지어졌지만, 앞으로는 지방에도 데이터센터 건설이 늘어날 전망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수도권 전력망이 포화 상태가 될 공산이 크고, 지역 균형 발전 목소리도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계획 단계인 신규 데이터센터 39곳 중 82%가 지방에 들어설 예정이다. 향후 전력 수급이 용이한 발전소 근처, 냉각수를 쉽게 공급받을 수 있는 해안가 지방도시가 데이터센터 건설 붐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인근 지역 건설경기 활성화, 중장기적으로는 첨단산업 일자리 증가가 기대된다.데이터센터 건설이 크게 늘어날 지역으로 울산과 부산이 꼽힌다. 울산은 바닷가라는 입지는 물론, 산업단지가 이미 자리해 대규모 전력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이 강점이다. SK그룹과 아마존웹서비스는 7조 원을 공동투자해 울산에 국내 최대 AI 데이터센터를 지을 예정이다. 이에 따라 1000여 개 건설 일자리를 시작으로 데이터센터 상주 인력 144명 등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데이터센터 서버 교체 주기가 3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향후 지속적으로 투자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울산에서 중후장대(철강·화학·자동차·조선업) 산업을 떠받치던 에너지 인프라가 AI 산업까지 아우르는 대전환이 기대된다. 지역경제 활성화는 부동산시장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부산에서는 강서구가 데이터센터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정부는 수요지 인근에서 전력을 생산·공급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형 분산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분산 에너지 특화지역을 지정할 예정인데, 부산에선 강서구가 후보지 중 하나로 올랐다. 그 외 후보지는 울산 남구, 경기 의왕, 경북 포항, 충남 서산, 전남 해남, 제주 등 6곳이다. 특화지역으로 지정되면 저렴한 전기요금이 적용되고 각종 에너지 신사업도 허용된다. AI 산업이 에너지 전쟁을 촉발한 가운데 ‘지산지소’ 입지는 산업 기반과 전력 수급 모두 탄탄하다는 인증이 될 것이다. 향후 부동산 가치 측정에서 간과할 수 없는 포인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