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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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대다수 찬성에도 미뤄지는 ‘내장형 동물등록 일원화’

[이학범의 펫폴리] 정부는 생체인식 기술 접목한 등록 방식 도입 우선 추진

  •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입력2025-02-1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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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위해 관련법 및 제도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멍냥 집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반려동물(pet)+정책(policy)’을 이학범 수의사가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최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주재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국민불편 민생규제 개선방안’이 논의됐습니다. 총 38건의 규제 개선 과제가 선정됐는데, 그중 11건이 ‘반려동물 양육 생태계 조성’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해외 데려가려면 내장형 기본인데…

    정부가 ‘칩 이식 거부감’을 이유로 내장형 동물등록 대신 비문(코주름), 안면인식 등 생체인식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GETTYIMAGES]

    정부가 ‘칩 이식 거부감’을 이유로 내장형 동물등록 대신 비문(코주름), 안면인식 등 생체인식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GETTYIMAGES]

    먼저 ‘생체정보 활용 등 반려동물 등록 방식 개선’이 논의됐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가 선정한 안건인데요. 농식품부는 “현재 반려견 등록 방식으로 내장형(마이크로칩 피하 삽입)과 외장형(목걸이) 방식만 인정하고 있는데, 칩 이식 거부감으로 등록률(42%)이 저조해 반려견 불법 유기 및 유기동물 보호비용 상승 등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비문(코주름)·안면인식 등 다양한 생체인식 기술을 접목한 등록 방식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현행 동물등록제에 미비점이 있고 정부가 이를 해결하겠다는 취지 같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자세히 살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동물등록제는 반려견 유기를 줄이고, 유실 시에도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2014년 전국으로 확대 시행됐으며, 현재는 2개월령 이상 반려견이라면 예외 없이 동물등록을 해야 합니다. 반려견 동물등록을 하지 않으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되죠.

    동물등록 방법은 크게 ‘내장형’과 ‘외장형’이 있습니다. 외장형 등록 방법에는 ‘외장형 태그’와 ‘외장형 인식표’ 두 종류가 있었는데, 2022년 인식표 등록 방법이 사라져 현재는 내장형과 외장형 태그 2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외장형 태그는 어딘가에 걸려 잘 떨어지기도 하고, 반려견을 유기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손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반려견 유기를 줄이고 유실 시 쉽게 찾을 수 있게 한다”는 동물등록제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방법이죠. 그래서 선진국은 대부분 내장형만 동물등록 방식으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반려견을 해외에 데려가려고 검역을 받을 때도 내장형 등록이 기본 조건입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동물등록제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내장형 등록이 유일하다고 공통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은 2019년 ‘개·고양이 내장형 마이크로칩 장착 의무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앞서 한국 정부도 “동물등록 방법을 단계적으로 내장형으로 일원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수년째 추진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 이상한 점은 아직 시범사업 단계인 반려묘 동물등록의 경우 내장형만 허용한다는 점입니다. 2023년 한 해 총 1만3184마리 반려묘가 동물등록을 했는데, 모두 내장형으로 등록했습니다. 반려묘는 외장형 태그로 등록하지 못하고, 반려견은 외장형 태그로 등록하는 현 상황, 이상하지 않나요.

    ‌농식품부는 생체인식 동물등록 도입을 추진하는 배경으로 ‘칩 이식 거부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 생각은 달랐습니다. 최근 공개된 ‘2024년 동물복지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국민이 내장형 동물등록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국 만 2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동물등록 시 내장칩 의무화’에 대한 찬반 의견을 조사한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이 78.1%(매우 찬성 35.9%+찬성 42.2%)를 기록했고, ‘반대한다’는 응답은 9.1%(매우 반대 2.2%+반대 6.9%)에 그쳤습니다(그래프 참조). 반려동물 미양육자(찬성률 79.7%)뿐 아니라 반려동물 보호자 74.4%도 내장형 의무화에 찬성했습니다. 반려동물 보호자 4명 중 3명이 내장형 동물등록에 찬성하는데도 정부는 “칩 이식 거부감으로 등록률이 저조하다”고 주장하는 거죠.

    내장형 칩 이식 부작용 0.01%뿐

    ‘2024년 동물복지 국민의식조사’는 지난해 9월 6~27일 농식품부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의뢰로 엠브레인리서치가 진행했습니다. 결과도 농식품부가 발표했죠. 자신들이 발표한 동물복지 국민의식조사 결과에서는 “내장칩 의무화에 대한 찬성 의견이 높았다”고 하고, 민생규제 개선방안에서는 “칩 이식 거부감으로 동물등록률이 낮다”고 설명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겁니다.

    영국에서 1996년부터 2009년까지 시술된 내장형 마이크로칩 피하 이식 사례 370만 건을 분석한 결과 체내 이동이나 부종 등 부작용이 보고된 사례는 391건(0.01%)에 그쳤습니다. 한국에서도 2008년 이후 내장형 마이크로칩이 시술된 18만 마리 반려동물을 분석한 결과 부작용 사례는 14마리(0.01%) 수준이었습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문위원실 역시 ‘내장형 동물등록 일원화 법안’에 찬성 의견을 냈습니다.

    국민 설문조사에서도 내장형 찬성률이 높고, 국내외 대규모 연구에서도 내장형 등록의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며, 국회도 내장형 의무화에 찬성했는데 왜 농식품부만 ‘칩 이식 거부감’을 이유로 아직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다른 방식을 거론하는 걸까요.

    정부는 현재 ‘반려동물 생체인식 기술 관련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6년 4월 실증특례가 끝나면 비문, 안면인식 같은 기술을 동물등록 방법으로 허용할지 말지 세부 방침을 결정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 정확성, 부작용 등을 고려할 때 신기술보다는 내장형 동물등록 일원화 추진이 우선순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