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라임 펀드 피해자는 ‘이제 다 끝났다’는 실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8월 24일 금융감독원이 라임 등 3대 펀드와 관련해 새로운 범죄 혐의를 발표해 깜짝 놀랐다. 펀드 사기의 전말을 밝히고 피해를 제대로 구제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은 생겼다.”
정구집 ‘대신증권 라임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최근 금감원의 검사 결과 발표로 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펀드 수사에 탄력이 붙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19년 10월 라임 펀드의 환매 중단 사태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4473명, 피해 금액은 1조5380억 원에 달한다. 2017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집계된 국내 환매 중단 사모펀드 중 피해자 수 및 금액 면에서 최대 규모다(이상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 참고).
정구집 ‘대신증권 라임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조영철 기자]
“라임 펀드 의혹 규명, 이제 시작”
라임 펀드 피해자 중 대신증권을 통해 투자한 이는 약 470명으로, 환매 중단 사태 후 일찌감치 대책위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라임 펀드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 정구집 대표는 그간 대책위 활동을 이끌며 사건 실체를 규명하는 데 앞장섰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를 운영하는 평범한 사업가인 그는 2021년 5월 김부겸 국무총리 국회 인사청문회에 피해자 대표로 증인석에 올라 김 총리의 차녀 가족이 가입한 라임 펀드가 ‘특혜성 펀드’라고 주장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라임 펀드와 관련된 각종 의혹 규명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정 대표를 9월 5일 만나 피해자 구제 상황과 향후 풀어야 할 의혹에 대해 들었다.2021년 7월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무역금융에 투자한 라임 펀드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로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결정했다. 상당수 피해자가 구제받은 것 아닌가.
“라임 펀드 사태와 관련된 대표적인 오해다. 라임자산운용이 판매한 펀드 가운데 무역금융에 투자한 상품의 비중은 20~30%다. 그중에서도 2018년 11월 이후 판매한 것만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대상이라서 투자금 전액을 보상받은 이는 드물다. 나머지 피해자들은 분조위 결정에 따른 손해배상비율 40~80% 안에서 돈을 돌려받거나, 그 이상 배상을 원할 경우 개별적으로 민사소송에 나서야 한다.”
그렇다면 피해 구제는 어느 정도 이뤄졌나.
“대신증권 라임 펀드 피해자 약 470명 중 대책위에 참여한 이는 300명 정도다. 수소문해보면 라임 펀드로 돈을 날린 데다 경제 사정도 나빠 대책위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적잖다. 대책위에서 파악하기로는 피해자 약 100명은 민사소송에 나섰고, 나머지 200여 명은 40~80% 손해배상비율을 받아들였다. 피해자들이 분쟁조정 결과 돌려받은 돈은 투자금의 50~60%였고, 많아도 70% 수준으로 보인다. 개인 피해자로선 금융사 측이 제시한 손해배상비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상당수 피해자가 재산상 막대한 손해를 입은 데다, 오랜 싸움으로 지친 상태라서 분쟁조정에 따른 손해배상비율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인 형편이다.”
당시 금감원은 라임 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한 손해배상비율이 역대 최고라고 자평했는데.
“피해자들이 분조위 결정에 항의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손해배상비율 상한인 80%를 돌려받은 피해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당시에도 피해자들은 손해배상비율 상한을 10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기적 부정거래’ 드러났으니 계약취소 해야”
피해자들은 라임 펀드 판매 과정에서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가 드러난 만큼 금융당국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대신증권 반포WM센터장을 지낸 장 모 씨는 2000억 원에 달하는 라임 펀드를 팔면서 안전성과 수익성을 속여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21년 5월 2심에서 징역 2년·벌금 2억 원을 선고받은 장 씨가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양벌규정에 따라 장 씨의 부실펀드 판매 범행을 막지 못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대신증권은 올해 2월 1심에서 벌금 2억 원을 선고받았다. “대신증권이 대형 증권사로서 감시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직원의 법 위반 행위를 장기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금감원이 분조위 당시 ‘향후 수사 및 재판 결과에 따라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로 재조정할 수 있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대신증권의 라임 펀드 판매는 단순한 불완전판매로 보기 어렵다. 펀드 설명서를 아예 창작하다시피 해 ‘담보금융 100%의 안전한 상품’이라며 투자자들을 속였다. 피해자들이 대신증권이 판매한 라임 펀드에 대해 계약취소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장 전 센터장에 대한 사기적 부정거래 판결 이후 계약취소로 다시 결정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금감원은 “환매 중단으로 피해를 본 470여 명 모두가 사기 피해자는 아니지 않느냐”는 논리로 거부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손해배상비율 상한을 100%로 해 억울한 피해자가 투자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최근 검사 결과 발표와 관련해 이복현 금감원장은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전 환매는 특혜이자 위법”이라고 밝혔는데.
“피해자들은 일찌감치 라임자산운용의 특혜성 펀드 의혹을 제기해왔다. 예전에 금융당국 핵심 관계자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환매 중단 직전에 불순한 사람들, 특혜를 받는 사람들이 현금을 막 빼가고 있었다”더라. 일반 투자자는 환매 청구를 해도 실제 돈을 돌려받는 데 한 달 가까이 걸린다. 결국 당시 현금을 빼 갔다는 것은 청구 며칠 만에 환매 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김부겸 전 총리의 차녀 가족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테티스 11호나 피해자들이 또 다른 특혜성 펀드로 의심하는 폴라리스 1호, 안타레스 등 ‘귀족펀드’ ‘황제펀드’가 적잖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헤성 펀드 수혜자로 지목된 이들과 판매사 측은 “투자자 손실을 막기 위한 정상적 조치였다”고 해명하는데.
“일반 투자자는 2019년 7~8월 언론이 라임 펀드에 관한 각종 의혹을 보도하자 환매를 요구했다. 그러자 대신증권 측은 설명회를 열고 “라임 펀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고 환매하지 마라”고 했다. 대신증권은 2019년 5월 자체 조사를 통해 라임 펀드에 위험성이 있다고 파악해 6월부터 VIP 고객의 신규 가입을 중단했다고 한다. 반면 같은 시기 일반 고객은 계속 가입하게 하고 재투자도 받았다. 이른바 VIP 투자자와 일반 투자자를 이처럼 차별한 이유와 저의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2018년 9월 대신증권 반포WM센터가 개최한 라임 펀드 설명회 모습. 투자자들에게 상품 손실 가능성과 관련해 “발생 가능한 위험을 0%에 가깝게 조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신증권 라임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제공]
“검찰 수사로 피해자 고통 덜어야”
라임 펀드 피해자들은 지금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스트레스로 암이 재발하거나 신경쇠약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이도 적잖다고 한다. 민사소송에 나선 피해자들은 지난한 법정 다툼에 지쳐가고 있다. 현재 피해자들이 금융당국과 수사당국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묻자 정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최근 금감원이 새롭게 지목한 범죄 혐의에 대해 검찰 수사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다면 피해자들이 계약취소 결정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피해자들도 새로운 수사 결과에 따라 유리한 판결을 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피해자들은 지금껏 금융당국과 사법당국이 가해자들을 엄벌하지 못했고 라임 펀드 사기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고 느낀다. 그 결과 가해자들은 지금도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고, 반대로 피해자들만 고통 속에서 움츠러들고 있다. 금감원이 라임 등 사모펀드와 관련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한 만큼 검찰도 수사에 박차를 가했으면 한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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