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그린테이블 김윤정, 스튜디오뉴빈 박유빈]
2. 톡톡 터지는 맛이 좋은 방울토마토 피클.
3. 청이나 장아찌로 만들기 좋은 청매실.
4. 한소끔 끓여 만드는 복숭아 조림.
1997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 친구 셋이서 배낭을 메고 전국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말이 여행이지, 곳곳의 친척 집을 순회하며 융숭한 대접을 받고 놀았던 좋은 기억이다. 그때 울릉도 큰외삼촌댁에 처음 가봤다. 당시 울릉도는 지금처럼 관광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지 못했기에 우리는 주로 집과 도동항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중 가장 즐거운 일과는 평상에 앉아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똑똑 따 먹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는데 신기한 모양에 식감과 맛이 모두 황홀해 육지에 돌아와서도 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싱싱한 무화과는 시장에 도통 없어 서른 즈음에야 다시 맛볼 수 있었다. 채소나 과일의 제철이 무색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제때가 아니면 못 먹는 것이 많다. 과일로는 무화과, 산딸기, 매실, 백도, 황도, 자두, 살구, 석류 등이 그렇다.
제때 실컷 먹고도 늘 아쉬운 것이 과일이니 저장해두면 좋겠다. 보관 기간이 짧지만 간편하게 만들기에는 피클이 좋다. 과육의 아삭함이 남아 있는 풋토마토나 대저토마토, 여러 색깔의 방울토마토로 만들면 된다. 피클 재료로 꼭 필요한 것이 피클링 스파이스와 마른 월계수잎인데 대형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토마토를 피클로 맛보면 본연의 시고 달달한 맛이 더욱 도드라져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이다.
과일을 저장하는 가장 익숙한 방법은 설탕을 활용해 만드는 청이나 잼일 것이다. 매실은 거의 끝물이지만 황매실로 청이나 절임을 만들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매실은 익은 정도에 따라 풋매실, 청매실, 황매실로 구분된다. 진녹색의 풋매실은 쓴맛과 풋내가 강해 먹기엔 적합하지 않다. 청매실은 연두색을 띠며 신맛이 강하게 난다. 황매실은 과육이 잘 익어 노르스름하고 단향도 훨씬 진하게 난다.
매실과 같은 양의 설탕을 준비해 잘 버무려 3개월 정도 숙성시키면 매실청이 된다. 같은 방법으로 만든 뒤 숙성 기간을 줄여 과육을 건져 손질하면 씹는 맛이 좋은 매실 장아찌를 만들 수 있다. 청을 거르고 남은 매실에 술을 부어 다시 3개월가량 숙성시키면 매실주가 되니 얼음을 섞거나 칵테일 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황매실로 청을 담그면 청매실로 했을 때보다 풍미가 비교할 수 없이 깊고 좋지만, 과육이 무르고 단맛이 많아 자칫 변질되거나 발효로 술이 돼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황매실은 한 개씩 살살 손질해 소금과 설탕(또는 꿀)에 절여 ‘우메보시’로 만들어 먹으면 좋다.
여름 과일 가운데 저장용으로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복숭아다.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통조림 복숭아, 즉 황도를 떠올리면 수긍이 된다. 절이거나 조려도 제맛과 향, 모양, 색이 잘 유지되는 과일이다. 황도와 백도는 단맛이 좋아 설탕을 적게 넣고 절여도 맛있다. 절일 때 자두, 천도복숭아, 살구를 함께 넣어도 된다. 절임보다 한 수 위 맛을 내는 것이 조림이다.
설탕과 물, 즉 시럽에 바닐라 빈, 시나몬 스틱, 오렌지 껍질, 레몬 껍질, 화이트 와인 등을 취향대로 섞은 다음 복숭아를 넣고 과육이 투명해질 정도로 끓여 완성한다. 복숭아 절임은 과육과 시럽을 탄산수, 홍차, 보드카 등에 섞어 음료로 마시면 청량하고, 여러 과일과 갈아서 주스로 만들어 먹어도 맛있다. 조림은 그대로 건져 먹거나, 아이스크림 또는 요구르트에 넣어 먹는다. 또 고기 요리에 곁들이거나 케이크, 파이에 토핑으로 올리면 맛도 모양도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