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4

..

커버스토리

르포 | 해양 1번지에 부는 불황의 태풍, “우린 지금이 아이엠에프라예”

조선·해운 메카 거제·진해·창원…도산, 법정관리, 체불, 실직으로 “박근혜 정권 탓” 곳곳 원성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11-18 18:01:34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조선소에서는 희미한 용접 불꽃조차 보이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시끄럽던 11월 14일 정오, 경남 거제시 거제도 옥포항에서 바라본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점심시간인 데다 날씨가 좋지 않아 그러리라 생각하고 번화가인 고현항 근처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을씨년스럽기는 고현버스터미널도 마찬가지였다. 터미널 내 식당은 텅 비어 있었고, 근처 오락실도 손님은 없이 오락기 소리만 요란했다. 조선소의 적막은 단순히 점심시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음 날 찾은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만도 상황은 마찬가지. 여기저기 컨테이너가 쌓여 있었지만 이를 옮기는 크레인은 어쩌다 하나 둘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기나긴 조선업계 불황에 9월 1일 국내 최대 해운회사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해양도시 거제와 창원의 지역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조선, 해운 양쪽 모두 물량이 줄어 대기업은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하청업체는 줄지어 도산했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8월 말까지 조선업계 임금체불액은 526억 원으로, 하청업체 직원 1만1746명이 회사 도산이나 위기로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하고 있다.



    실직자, 퇴직자 속출 “1000원 핫도그 인기”

    같은 기간 창원시 진해구의 STX조선해양은 정규직 2100명으로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그중 1300명을 내보냈다. 대우조선해양은 11월 1일부로 희망퇴직 신청자 1200명을 모두 퇴사시켰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3분기 말 각각 희망퇴직 신청자 1700여 명을 퇴직 처리했다. 말이 ‘희망’이지 반강제적인 구조조정이었다.

    고임금을 받던 노동자가 급격히 줄어들자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것은 지역 상인이다. 거제시 중심가인 고현동에서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는 정모(57·여) 씨는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동네 개가 돈을 물고 다닌다’고 할 만큼 호황인 곳이 거제도였다”며 “하지만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올해부터는 이 인근(고현동)에서 이익 보며 장사하는 가게가 드물다”고 말했다. 정씨는 “1월부터 매달 매출이 줄어 이제는 월수입이 100만 원 남짓이다. 월세를 내면 생활비도 빠듯할 지경”이라며 “거제도는 지금이 IMF(외환위기)”라고 말했다. 거제도에서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모(50) 씨는 “일이 없으니 거제로 들어오는 사람도 없어 원룸이 남아돈다. 지금 짓고 있는 아파트 분양까지 시작되면 집값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고현동 식당은 점심시간임에도 열 가운데 서너 곳이 문을 닫았다. 문을 연 식당에도 손님 한두 명이 있거나 그마저도 없는 식당이 많았다. 그런데 유일하게 사람이 줄을 선 가게가 있었다. 고현사거리에 있는 핫도그 가게였다. 가격은 개당 1000원. 핫도그 2~3개로 점심을 대신하려는 인근 직장인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최근 이 근처에 직장을 구했다는 이모(22) 씨는 “어릴 때는 이 근처 회사에 취업하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되리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경기가 너무 나빠 임금 사정도 좋지 않다. 매일 나가는 고정 비용인 점심값부터 줄여야겠다 싶어 인근에서 가장 저렴한 핫도그로 점심을 해결한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불황으로 지역경제마저 무너지니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조선업종 근로자와 기업에게 재취업 및 새 사업 시작을 돕는 조선업희망센터를 7월 28일 울산을 시작으로 창원(7월 29일), 목포(8월 1일), 거제(8월 16일)에 개설했다. 기자가 거제 조선업희망센터를 찾은 11월 14일 오후 2시 30분에는 실업급여에 관한 교육이 있었다. 교육장 앞은 교육을 원하는 해직 근로자로 가득 찼다. 그들은 묵묵히 서류를 작성했고, 시간이 되자 조용히 강의실로 들어갔다.



    멈춰버린 트럭, 사라진 컨테이너

    조선업희망센터에는 각종 취업 및 실업 교육 외에도 심리상담 같은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한평생 생업으로 알고 살아온 조선 기술자들이 갑자기 직장을 잃고 그동안 쌓아온 경력까지 휴지조각이 된 상황이니 이들의 상실감을 보듬어주기 위해서다. 5개월 전 규모가 큰 한 조선 하청업체에서 해직된 백관천(47) 씨도 심리상담을 받았다. 백씨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가족이 쓰는 돈이 정해져 있는데 기업이 원하는 대로 임금을 너무 낮춰 받을 수도 없어 답답하다”며 “주변에는 다니던 회사가 도산해 퇴직금조차 받지 못한 사람도 많다. 그들보다 상황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취업도 어렵고 창업하자니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 점점 우울해진다”고 밝혔다.

    거제 조선업희망센터 관계자는 “조선업 불경기가 시작된 1년 전부터 실업급여 및 취·창업 지원을 위해 센터를 찾는 분이 매달 20~30%가량 늘고 있다”며 “내년에 추가 희망퇴직 인원이 퇴사하고, 지금 각 조선소가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배까지 완공되면 퇴직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거제도에서 창원으로 가려고 거가대교를 건널 때 창밖으로 진해구 쪽 부산신항만이 보였다. 부산신항만은 부산항에 몰리는 화물을 분산하고자 2009년 5월 경남 진해군(현 창원시 진해구)에서 만든 항만이다. 한진해운은 전체 신항만 컨테이너부두(터미널) 가운데 2-1터미널의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데, 창원에서는 이곳을 ‘한진해운신항만’이라고 부른다. 2014년 말까지 연간 254만 개 컨테이너가 오가던 곳이지만, 한진해운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오가는 화물이 줄어들었다. 8월 30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돌입하자 그나마 줄어든  화물까지 뚝 끊겼다. 한진해운의 배가 묶였으니 화물은 당연히 들어오지 못했다.

    결국 한진해운신항만은 항만이라는 이름만 유지할 뿐 사실상 컨테이너 창고가 됐다. 11월 15일 항만 인근 도로확장 공사장에서 한진해운을 내려다봤다. 항만에는 들어온 배가 1대도 없었다. 배가 없으니 화물선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크레인도 할 일이 없었다. 항만 내부에서 컨테이너를 재배치하는 지게차들만 가끔 보였다.

    컨테이너를 나르는 대형 트럭은 주차된 모습만 볼 수 있었다. 도로 위 차량 대부분이 일반 승용차이거나 공사장으로 향하는 덤프트럭이었다. 항만 입구 맞은편 도로에는 컨테이너를 나르는 대형 트레일러트럭이 일렬로 주차돼 있었다. 트럭에는 대부분 컨테이너가 실려 있지 않았다. 혹 멀리서 컨테이너인 것처럼 보이던 것도 가까이 가보면 컨테이너처럼 생긴 화물트럭의 짐칸이었다. 주차장 인근에 마련된 운전사 휴게센터에는 식당과 차량 정비시설 등 트레일러트럭 운전사를 위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시설을 이용하는 운전사는 없었다. 이른 저녁시간인 오후 5시에도 휴게센터 내 식당에는 손님이 1명도 없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장모(45·여) 씨는 “지난해만 해도 매일 식사시간이면 가게가 꽉 찼는데, 요새는 하루에 손님 한두 명 받는 것이 전부고 가끔 하던 회식도 사라졌다”며 한탄했다.

    답답하기는 트럭 운전사도 마찬가지였다. 30년 넘게 트럭운전을 해왔다는 최구찬(63) 씨는 “올해 들어 화물량이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더니 요새는 그마저도 거의 없다. 그 물량을 가지고 운전사끼리 경쟁하다 보니 운송료가 낮아져 이제 월 100만 원도 못 버는 소일거리가 됐다”고 한탄했다. 최씨는 “우리처럼 늙은 사람이야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노후 준비도 어느 정도 해놨으니 소일거리 정도로도 생활이 가능하지만, 젊은 트럭 운전사는 ‘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힘들어 한다. 정부에서 대책을 세워준다지만, 말만 나오고 아직까지 뾰족한 지원책을 내놓지 않아 트럭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다들 답답해한다”고 말했다.

    조선·해운업계 불황은 갑자기 찾아온 재앙이 아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교역량이 조금씩 줄면서 전 세계 해운업계에 대불황의 조짐이 보였다. 교역량이 줄었으니 화물을 나를 배의 수요도 자연히 감소해 조선업계의 타격이 컸다. 곪았던 문제가 지금 와서야 터졌을 뿐이다. 해운업계는 정부의 대응이 화를 키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거제, 진해 등 조선소가 밀집한 지역의 주민은 해운업계 1위 업체인 한진해운을 살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둘러싼 잡음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문제가 거론된 것은 5월. 당시 한국선주협회는“법정관리가 현실화되면 피해액이 17조 원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KDB산업은행(산업은행)과 금융당국은 이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법정관리를 택했다. 해운업계는 산업은행의 금융 지원에 확실한 잣대가 없다고 비판한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5조 원대 영업손실을 내고 올 상반기에도 영업적자를 기록했는데도 산업은행이 4조2000억 원대의 금융 지원을 결정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지난해 369억 원 흑자를 냈는데도 (추가 금융 지원을 하지 않아)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산업은행이 어떤 기준으로 추가 금융 지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산업은행이 추가 금융 지원을 하지 않은 이유는 한진그룹이 채권단이 요구한 부족 자금 1조 원을 조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진그룹은 “이미 1조 원 이상을 한진해운에 투입한 상태라 자금 1조 원을 더 투입하면 모기업인 대한항공 경영에도 문제가 생긴다”며 채권단의 요구를 거절했다. 최근 ‘경향신문’이 ‘최순실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만나 거액을 요구했다’는 미확인 보도를 낸 것도 한진해운을 둘러싼 석연찮은 법정관리 결정, 금융 지원 중단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대한항공 측은 11월 16일 전체 언론사에 보낸 e메일을 통해 ‘조 회장은 최순실을 결코 만난 적이 없으며 최순실의 존재 또한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밝혔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1월 16일 국회 정무위원에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최순실과 관련 없다”고 주장했다.   

    류동근 한국해양대 해운경영학부 교수는 “업계 최대 규모인 한진해운을 법정관리하고 그보다 작은 현대상선을 살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업계, 학계를 망라해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대한 위험성을 주기적으로 경고했으나 정부와 산업은행 측은 듣지 않았다. 정부는 원리·원칙에 맞게 법정관리를 진행했다고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명해 업계 반발을 줄이고 빠르게 해운산업을 정상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창원시 진해구에서 한진해운 재하청업체를 운영하다 파산한 김모(57) 씨는 “조선업과 해운업이 잘될 때는 온갖 방식으로 특혜를 주던 정부가 정작 업계가 위기에 처하자 너희가 알아서 하라고 한다. 위기를 키운 건 이명박 정권일지 몰라도 한진해운과 지역경제를 파탄하게 만든 건 결국 박근혜 정권이다. 국민을 먹고살게 해줘야 할 대통령이 비선(秘線) 실세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식물이 돼 있으니 정말 화가 난다”고 개탄했다.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조선업계도 정부 대응에 불만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0월 31일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18년까지 조선 3사(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는 건조설비 23%, 인력 32%를 감축해야 한다. 그러나 조선업계에서는 ‘대기업 챙겨주기’라는 논란이 나온다. 김춘택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 정책홍보팀장은 “대기업의 방만한 경영도 조선업 불황의 원인인데, 정부의 대책은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게다가 중소 조선소와 관련된 대책은 전무해 대기업이 아닌 조선기업은 각자도생하라는 식이다. 크기가 줄어든 대기업만으로는 국내 조선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한데도 정부는 상황에 맞지 않는 대책을 남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월 14일 저녁 찾아간 창원시 최대 번화가인 상남동도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인적이 너무 없어 건물에 붙어 있는 네온사인 간판이 길을 걷는 사람보다 많아 보였다. 상남동에서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김모(56) 씨는 최순실 게이트로 기능이 마비돼버린 정부를 탓하며 답답해했다.  

    “일주일째 가게에 손님이 없어 혼자 앉아 있을 정도다. 그만큼 장사가 안 된다. 인근 다른 가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제위기다 어떻다 할 때마다 정부에서 대책을 세워 대응해왔지만, 이번 정부는 경남지역에서 1년 가까이 심각한 경제불황이 지속되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조선업계 불황 최대 피해자는 일용직 ‘물량팀’◆ 각 조선업체와 건당 계약, 퇴직금·고용보험 없어…일감 줄면 실직 1순위 


    건설업계와 마찬가지로 조선업계 불황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용직 노동자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물량팀’이라 부르는 이들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 물량팀이란 일종의 전문 일용직으로, 각 조선업체는 자사 인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주문이 들어왔을 때 임시계약을 맺고 이들을 현장에 투입한다.  

    물량팀은 조선 경기가 좋을 때는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지만 반대로 경기가 나빠 일자리가 없으면 당장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 게다가 업체와 고용계약을 맺지 않는 경우가 많아 상당수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9월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9월 12일 현재 고용노동부로부터 피보험 자격을 취득한 물량팀 추정 종사자는 전체 4만1385명 중 2340명(5.6%)에 불과했다.

    이수천 거제고용센터 소장은 “할 일이 없어지면 물량팀 근로자는 퇴직 과정 없이 직업을 잃는 경우가 많다. 일정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라 퇴직금이 없고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니 일반 퇴직자보다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밝혔다. 15년간 물량팀 팀장으로 일해왔다는 유모(56) 씨는 “일감이 줄어든 지금은 경남 거제, 창원에서 물량팀을 마주치기조차 어렵다. 업체가 도산해 일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다. 나도 이번 일이 끝나면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평생 해온 일이 배 만드는 일이고, 가장 자신 있는 일도 배 만드는 일인데 환갑이 다 돼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니 답답하다”며 한탄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