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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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 대항마’ 야심 드러낸 브릭스

30여 개국 가입 신청 대기… 튀르키예, 말레이시아, 태국 신규 회원국 가능성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4-07-1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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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 중심의 신흥 경제국 연합체인 브릭스(BRICS)가 최근 몸집을 불리고 있다. 유럽연합(EU) 가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튀르키예가 가입을 적극 고려하는가 하면,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합류를 희망하고 있다. 브릭스의 순회의장국인 러시아 측에 따르면 브릭스에 가입을 신청하거나 검토 중인 국가는 30여 개국이나 된다.

    “러시아, 튀르키예 열망 확실히 지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이 2022년 9월 16일(현지 시간)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크렘린궁 제공]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이 2022년 9월 16일(현지 시간)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크렘린궁 제공]

    브릭스는 10월 22~24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가입 신청국 가운데 어떤 국가를 신규 회원국으로 합류시킬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현재로선 튀르키예가 가장 유력한 후보다.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최근 모스크바 크렘린궁을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튀르키예의 브릭스 가입 여부를 타진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브릭스 가입 문제에 대한 튀르키예의 열망을 확실히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튀르키예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지만 미국 등 서방과 대립 중인 러시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튀르키예가 브릭스 가입을 추진하는 것은 EU 가입 협상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1999년 EU 가입을 신청하고 2004년 가입 후보국 지위를 획득한 후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입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튀르키예와 EU의 협상은 그동안 인권 문제 등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채 진전이 없었다. EU는 가입 후보국이 민주주의와 법치, 삼권분립, 언론자유, 인권보호, 시장경제, 공정경쟁 등 이른바 ‘코펜하겐 기준’을 충실히 이행하는지 여부를 심사한다. 가입 후보국의 최종 가입은 EU 27개 회원국의 비준과 유럽의회 승인을 거쳐야 확정된다. 그런데 EU 회원국은 대부분 튀르키예의 가입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표면적 이유는 튀르키예의 열악한 인권 문제와 권위주의체제이지만, 실제로는 종교 문제 때문이다. EU 27개 회원국의 국민은 대부분 기독교를 믿고 있다. 반면 튀르키예는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다. 튀르키예는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EU 회원국들과는 물과 기름 관계라서 화합적인 통합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EU 회원국 사이에서 반(反)이슬람·반이민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튀르키예는 EU 가입을 접고 다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EU가 튀르키예와 거리를 두고 있다”며 “우리는 현 상황을 평가해 필요하다면 EU와 결별할 수도 있다”고 강조하면서 브릭스 가입을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으로선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가 브릭스에 가입할 경우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튀르키예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별 소득은 없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튀르키예에 브릭스 가입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피단 장관은 “브릭스의 특징은 러시아, 중국이 회원국이라는 점”이라면서 “정치적 이유로 모인 주요 7개국(G7)과 달리 브릭스는 경제적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피단 장관은 이어 “브릭스 회원국들은 달러가 아닌 현지 통화로 무역 거래를 하고 있으며 튀르키예도 이를 선호한다”면서 “이는 EU와 비교할 때 브릭스의 다른 점이며, 브릭스의 좋은 점은 모든 문명과 인종을 포함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동남아에 손 뻗는 브릭스

    지난해 8월 22일(현지 시간) 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5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남아공 대통령실 제공]

    지난해 8월 22일(현지 시간) 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5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남아공 대통령실 제공]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고려해 브릭스에 가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니코른데 발란쿠라 태국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브릭스에 가입 신청 서한을 공식 제출했다”며 “이르면 10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도 “우리는 브릭스에 가입하기로 결정했고 곧 공식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브릭스 회원국 가운데 동남아 국가는 없다.

    브릭스는 지난해 8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정상회의를 갖고 올해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이란, 이집트, 아르헨티나, 에티오피아 등 6개국을 새로운 회원국으로 가입시키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경우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새롭게 당선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브릭스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 최대 우방국으로 꼽히는 사우디도 1월 브릭스 가입을 발표했다가 보름 만에 “검토하고 있다”며 번복했다. 이에 따라 4개국만 최종적으로 신규 회원국이 되면서 브릭스 회원국 수는 현재 9개다.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과 안보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대중(對中) 무역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이런 이유로 브릭스에 가입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말레이시아 최대 교역국이다. 지난해 기준 교역액은 989억 달러(약 137조6300억 원)에 달했다. 말레이시아 전체 교역액의 17%에 해당하는 규모다.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1974년 국교를 수립했다. 리창 중국 총리는 6월 19일 양국 수교 50주년을 맞아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리 총리와 안와르 총리는 당시 회담을 갖고 5개년 경제협력협정을 갱신해 무역·투자·농업·제조업·금융 부문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중심 일극체제 공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월 16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월 16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일환으로 말레이반도 동서부를 잇는 동부해안철도 건설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동부해안철도는 말레이시아 서부 해안 클랑항에서 북동부 해안 코타바루까지 640㎞를 연결하는 사업으로, 중국이 사업비 85%를 조달하기로 했다. 중국은 이 철도를 라오스, 태국 철도들과 연결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말레이시아는 중립 외교를 표방하지만, 최근에는 친중 행보를 보여왔다. 게다가 남중국해 문제에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5G(5세대) 이동통신 사업에 중국 기업 화웨이의 참여도 허용했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지지하며 미국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태국의 최대 교역국 역시 중국이다. 지난해 기준 양국 교역액은 1750억 달러(약 243조5000억 원)였다. 태국과 중국은 교역 외에도 관광 산업에서도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은 비자 없이 60일 동안 머무를 수 있다. 중국을 찾는 태국인 관광객도 30일간 무비자로 여행이 가능하다. 양국은 2028년까지 라오스를 거처 서로를 연결하는 고속철도도 건설할 계획이다. 말레이시아·태국의 브릭스 합류는 중국과 러시아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타격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브릭스가 이처럼 몸집을 불리려는 이유는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를 다극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 국제 정세를 미국이 주도하는 ‘규칙에 근거한 국제질서’와 러시아·중국이 추진하는 ‘다극체제’가 맞서는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주목할 점은 표면적으로 볼 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정면 도전하는 모양새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다극체제를 적극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력을 소진한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 등 다방면에서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러시아를 앞세워 자국이 주도하는 다극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브릭스를 비롯해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이 회원국을 늘리면서 세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SCO는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는 유라시아 지역 안보·경제 협력기구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마커스 갈라우스카스 선임연구원은 “시진핑의 중국과 푸틴의 러시아가 점점 더 연합하고 긴밀하게 협력하는 새로운 전략적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다극체제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릭스는 다극체제 구축을 위해 달러화 중심의 국제금융과 교역체제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브릭스 회원국들은 지난해 정상회의에서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을 대체할 자체 개발은행을 설립하고 세계 무역 시장에서 달러화 사용을 줄이기로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브릭스의 궁극적 목적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와 연대·협력을 강화해 서방 중심의 G7에 맞서는 대항마가 되는 것이다. G7의 국제질서 장악력이 떨어지고 세계경제에서 비중이 줄어들면서 G7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공화·민주 양당의 안보 전략통인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과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한국과 호주가 포함되는 G7 확대·개편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G7과 브릭스가 본격적으로 대결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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