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된 마음은 늘어지게 쉰다고 회복될 수 없다. 충분히 자고 휴식을 취했지만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게만 느껴진다면 재충전 방법을 달리해봐야 한다. 그 완벽한 해답이 여행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번 여행지는 자연과 여유를 사랑하는 낭만의 도시, 미국 ‘시애틀(Seattle)’이다.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미국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시애틀. [위키피디아]
자연과 예술, 음악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미국 북서부 도시 시애틀. 원주민이 살던 시애틀에 백인 이주자들이 들어온 때는 1851년이다. 본디 이 땅에는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온 인디언 수쿼미시(Suquamish)족이 있었다. 추장 이름은 ‘세알트(Sealth)’. 그는 땅을 팔라는 미국 정부의 촉구에 “땅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의 것”이라며 호기롭게 거절했다. 당시 미국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당차고 자신감 있는 이 편지 내용에 감동해 지명을 그의 이름을 따 시애틀로 명명했다.
미국의 42번째 주인 워싱턴주에 위치한 시애틀은 미국 도시 중 한국에서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는 곳이며, 미국에서 볼 때는 아시아와 캐나다, 알래스카로 통하는 항구이자 관문이다. 특히 시애틀은 태평양을 잇는 엘리엇만과 초대형 담수호인 워싱턴 레이크 사이에 자리해 경관이 무척 아름답다. 또한 서쪽에 솟아 있는 올림픽산맥, 동쪽에 솟아 있는 캐스케이드산맥이 겨울 추위와 여름 더위를 막아줘 미국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불린다. 면적은 217㎢로, 서울의 3분의 1 정도로 작다. 주요 볼거리도 대부분 시내 중심 반경 5㎞ 안에 모여 있어 편하다. 덕분에 지도 한 장 들고 천천히 걸으면서 이곳저곳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4만7000석 규모의 개폐식 지붕을 가진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 T-모바일 파크를 시작으로 퍼스트 애비뉴(1st Ave)를 따라 이동하면 웬만한 랜드마크는 모두 볼 수 있다. 걸으면서 만나는 활력 넘치는 도시의 생명력과 오랜 감성이 묻어나는 장소들, 거기에 바다, 산, 호수가 병풍처럼 휘감고 있는 시애틀의 아름다운 자연까지 더해져 세계 어느 도시와도 비교불가한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사실 시애틀은 관광명소가 아니더라도 도시 자체가 한없이 낭만적이어서 어디를 가든 조용하고 평화롭고 아름답다.
시애틀 역사 간직한 스미스 타워
19세기 후반 조성된 비밀 공간을 간직하고 있는 ‘파이어니어 스퀘어’. [GETTYIMAGES]
시애틀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먼저 올드 타운으로 불리는 ‘파이어니어 스퀘어(Pioneer Square)’로 가야 한다. 1889년 발생한 대화재로 폐허가 됐는데 이후 도시를 재건하면서 19세기 후반 조성된 비밀 공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비밀스러운 풍광은 ‘언더그라운드 투어’(Underground Tour: 지하에 묻힌 옛 시애틀 여행)를 통해 구경할 수 있다. 광장 중심에는 높이 18m의 기하학적 형태의 토템폴(Totem pole)들이 자리하고 있다. 토템폴은 인디언 종교의식에 등장하는 것으로, 외부 위협으로부터 부족을 지켜주는 수호신상(像)을 말한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광장 주변에는 19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과 유서 깊은 상점이 즐비하다. 빠르게 변해가는 여느 도시와 달리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거리도 잘 정비돼 있고 볼거리, 먹거리도 풍부해 한나절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시애틀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인 ‘머천트 카페(Merchant’s Cafe)’도 이곳 파이어니어 스퀘어에 있으니 꼭 한 번 들러보자. 1914년 건축된 ‘스미스 타워(Smith Tower)’도 광장 바로 옆에 있다. 시애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 건물은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이 건축되기 전까지 미국 서부 해안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꼽혔다. 삼각형 지붕이 인상적인 타워는 35층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로도 유명하다. 100여 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모터로 가동되며, 내부는 첫 건축 당시 모습 그대로여서 옛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최고층 전망대에 올라서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항구도시의 매력적인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남쪽으로는 다운타운과 흰 눈을 덮어쓴 ‘레이니어산’(Mount Rainier·해발 4392m)까지, 서쪽으로는 엘리엇만과 영화 ‘트와일라잇’의 촬영지인 올림픽산맥까지 조망할 수 있다.
시애틀 여행 필수 코스로 통하는 ‘스타벅스 1호점’. [스타벅스 제공]
퍼스트 애비뉴와 파이크 스트리트(Pike Street) 사이를 걷다 보면 애써 외면하려 해도 눈에 띄는 붉은 간판 하나가 나타난다. 이곳은 시애틀을 소개하는 모든 책자에서 첫 번째로 가봐야 하는 곳으로 추천하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이다. 시장을 상징하는 네온사인과 붉은색 시계 앞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인증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 재래시장이 문을 연 것은 1907년이다. 중간상인의 횡포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자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공설시장이 열렸다. 그렇게 시작된 시장은 한 해에 10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들르는 세계적 명소가 됐다. 어디를 가나 시장 구경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3만6000㎡(약 1만 평) 규모의 시장에는 싱싱한 해산물·농산물을 판매하는 가게 외에도 근사한 기념품·공예품을 파는 노점상과 중고서점, 골동품을 파는 작은 가게 등 저마다 다른 개성과 목적을 가진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가게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 은은한 멋이 난다. 또한 항구도시답게 갓 잡아 올린 해산물로 수준 높은 음식을 만들어내는 고급 레스토랑부터 따뜻한 수프나 샌드위치 등 간편하게 즐기는 맛집까지 다양한 장르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이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매장은 전 세계에서 맨 처음 문을 연 ‘스타벅스 1호점’과 펄떡이는 물고기들이 배경인 생선가게 ‘파이크 플레이스 피시’, 그리고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마켓 마스코트인 암퇘지 청동상 ‘레이철(Rachel)’이다. 시애틀은 스타벅스가 처음으로 문을 연 도시다. 1971년 웨스턴 애비뉴 2000번지에 개점했고, 현 파이크 플레이스 1912번지의 작은 매장을 사들여 1977년 이전했다. 1호점은 커피 원두와 향신료, 차 등을 판매하는 ‘스타벅스 커피, 티 앤드 스파이스’라는 상호로 오픈했다. 스타벅스는 브랜드 상징인 사이렌 여신상 로고 디자인을 4차례 수정했지만, 이곳은 1971년 처음 사용했던 가슴을 드러낸 갈색 여신상 로고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시애틀 명물 껌벽
벽 전체에 씹다 만 껌이 가득 붙어 있는 ‘껌벽(Gum Wall)’도 명물 중 하나다. 껌벽은 코너 마켓과 트라이앵글 건물 사이 ‘포스트 앨리(Post Alley)’에 위치해 있다. ‘마켓 시어터(Market Theater)’ 간판 아래 약 4.5m 높이 외벽에 알록달록한 껌들이 붙어 있다. 1993년 극장에 공연을 보러 온 대학생들이 벽에 껌을 붙여놓은 것이 시초였다. 심한 악취와 위생 문제로 2015년 대대적으로 청소했지만, 이후에도 관광객들이 계속 껌을 붙여 현재 100만 개 넘는 껌이 붙어 있다. 시애틀항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형성돼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워터프런트도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과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을 산책하다 보면 ‘시애틀 수족관’ ‘시애틀 대관람차’는 물론, 관광객의 미각을 사로잡는 유명 레스토랑과 크고 작은 독특한 독립 카페가 줄지어 늘어서 있어 낮과 밤이 모두 즐겁다. 언제 가도 로맨틱한 곳이니 꼭 방문해보자.
이어지는 ‘시애틀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시애틀의 다양한 커피 문화부터 시민들의 쉼터인 ‘시애틀 센터’, 우주선 전망대 ‘스페이스 니들’, 유리공예 조형물 전시관인 ‘치훌리 가든 앤드 글라스(Chihuly Garden and Glass)’, 대중음악 박물관인 ‘팝 컬처 박물관(Museum of Pop Culture)’, 그리고 공기 맑고 깨끗한 숲의 도시 시애틀의 공원 산책까지 이 도시의 다양한 매력 속으로 떠나볼 예정이다.
※ 주간동아 1448호에서 ‘시애틀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