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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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버티기보다 정계 은퇴가 더 낫다?

안철수 앞에 놓인 손학규의 길 vs 문재인의 길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7-07-14 16: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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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위기가 닥쳤다. 대선 ‘제보 조작’ 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이 터진 후 국민의당 지지율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 7월 1주 차 정례조사에서 4%로 떨어졌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창당 이후 최저치다.

    사건이 불거지고 16일 만인 7월 12일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대국민사과를 내놓았지만 분위기 반전에는 실패했다.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전적으로 지겠다고 했지만,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가 빠졌기 때문이다. 시점도 문제였다. 이 정도 사과 내용이라면 진작 내놓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초기에 ‘정계 은퇴’ 카드를 던졌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 터다. 결국 초동대응에 실패한 형국이다. 그의 위기관리 능력에 회의론이 일 수밖에 없다.



    제보 조작 사과, 분위기 반전 실패

    안 전 대표는 반전을 기대하는 눈치다. 그 반전은 무엇일까. 국민의당 자체 조사 결과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린 것처럼 당원 이유미 씨만 처벌되고 나머지 관련자는 전원 무죄를 선고받는 상황이다. 지난달 리베이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당 박선숙, 김수민 두 의원이 2심에서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바로 이런 결론을 기다리는 것이다. 법률적으로 무죄가 선고되면 정치적으로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으리란 판단이다. 하지만 이유미 씨 외 윗선 몇몇이 유죄를 선고받는다면 그때쯤 책임, 그러니까 정계 은퇴를 고려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안 전 대표는 왜 정계 은퇴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손학규+문재인 학습효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 당시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 가운데 한 명이던 통합민주 당 손학규 전 대표는 2014년 7월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전남 강진에서 칩거생활을 이어가다 지난해 10월 정계 복귀를 선언했고, 올해 대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제3지대를 주도하지 못했고, 국민의당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바람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반면, 한때 정계 은퇴를 고려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결국 살아남아 대선에서 승리했다. 지난해 4월 8일 총선을 닷새 앞둔 시점에 광주를 방문한 당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불쑥 정계 은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습니다.” 호남에서 국민의당 바람이 한창 불 때였다. 총선 결과 민주당이 호남에서 참패했지만 문 대통령은 정계 은퇴를 하지 않았다. 도대체 호남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얼마까지 떨어져야 정계 은퇴를 할 거냐는 조롱 섞인 지적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안 전 대표도 바로 이런 문재인식 대응을 택한 것이다. 어차피 지지율은 변한다. 당장은 악재로 지지율이 최악이지만 호재가 생기면 반등할 것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현재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1개월 뒤 또는 1년 뒤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 1년 3개월 전이던 지난해 4월 총선 직후 국민의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추월한 적도 있다. 한국갤럽의 지난해 4월 3주 차 정례조사 정당 지지율에서 국민의당 25%, 민주당 24%였다. 물론 안 전 대표의 대선주자 지지율도 21%로 1위였다. 문 대통령은 그때 17%로 2위였다. 문 대통령이 안 전 대표의 반면교사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당장은 대선 제보 조작 사건이 세간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집권 초반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기대감 및 지지는 서서히 약해질 것이다. 이런 와중에 혹시 문재인 정부, 또는 민주당 내에서 돌발악재라도 불거진다면 안 전 대표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민주당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반사이익을 본 결과 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더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못하면 기회는 다시 온다는 얘기다.



    문재인이 안철수의 로망?

    물론 기회가 온다고 모두 내 차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탄핵정국의 최대 수혜자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다.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이 준비를 더 잘했다면 지금 집권 여당은 국민의당이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 과정을 돌이켜보면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에게 결정적 기회가 온 적이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황교안 국무총리마저 대선 출마를 포기한 직후 문재인-안철수 양강구도가 형성됐을 때다. 당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안 전 대표 지지율이 1위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TV토론에서 무너지면서 반전에 실패했다.

    TV토론이 시작되기 전 안 전 대표는 문 대통령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 듯하다. 청춘콘서트로 다져진 토론 실력을 과신한 것이다. 반면, 문 대통령은 양자토론을 기피하는 등 약한 모습을 보여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TV토론이 시작되자 예상과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후발 주자들이 오히려 약진하는 속에서 문 대통령은 평균 이상의 실력을 발휘한 반면, 안 전 대표는 미숙한 광경만 연출했다.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안 전 대표가 당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만큼만 토론을 잘했더라면 대선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테다. 그리고 대선 막판 문준용 씨 특혜채용 의혹 같은 네거티브 전략에 과도하게 집착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대선 제보 조작 사건은 이런 점에서 안 전 대표가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버티면 기회는 온다. 하지만 정계 은퇴를 한다고 기회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정계 은퇴와 정계 복귀라는 같은 길을 걸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학규 전 대표의 운명은 갈렸다.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것은 결국 ‘준비’였다고 본다. 준비하기에는 오히려 정계 은퇴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더불어 학습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에게는 그런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정치적으로 안 전 대표는 여전히 미숙하다는 것이 국민의 판단이다. 반사이익에 기대지 않고 자력으로 대통령이 된다면 대통령직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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