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화마가 휩쓸고 간 전남 장성군 효실천사랑나눔병원 내부가 공개됐다.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한 부모나 가족구성원을 봉양하고 간호하는 문제는 형제자매 간 다툼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맞벌이부부가 늘고 형제자매가 모두 바쁘니 결국 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꼭 등장하는 말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현실로 다가오는 한마디.
“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건 현대판 고려장이다.”
요양 등급만 잘 받으면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오는 데다, 가족 대신 부모를 잘 모시고 치료까지 해주는데 ‘고려장’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요양병원이 대부분 환자를 정부 지원금을 받는 수단으로만 생각할 뿐 의료기관으로서 제 본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아픈 부모를 모셔온 자식은 주거지로부터 가까운 지역 내 어느 요양병원이 제일 나쁘고, 그다음 나쁜 요양병원은 어디라며 줄을 세울 정도로 훤하게 안다.
문제는 그들의 대화 속에 그다음으로 나쁜 요양병원은 있어도 ‘좋은 요양병원’은 없다는 점이다. 부모가 세련된 외양의 요양병원으로 들어가는 날, 자신이 어디 가는 줄도 인식하지 못한 부모 앞에서 자식들이 눈물바다를 보이는 이유도 결국 요양병원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 요양병원의 문제는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가 고민해야 할 골칫덩이가 돼버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총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2.2%였다. 통계청은 2030년 이 비율이 24.3%, 2050년 37.4%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16년 후면 ‘국민 4명 중 1명은 노인’인 시대가 오는 것이다. 노인 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요양병원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전남 장성군 효실천사랑나눔병원 화재로 가족을 잃은 유족이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요양병원은 환자 3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의사, 한의사가 장기요양이 필요한 입원환자에게 의료를 행할 목적으로 개설한 의료기관이다. 노인성 질환, 만성 질환자, 외과적 수술이나 상해 후 회복 기간에 있는 사람 가운데 요양이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2008년 692곳이던 요양병원은 현재 1265곳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우리 국민에게 요양병원의 심각한 파행 운영 실태를 일깨워준 계기는 전남 장성군 효실천사랑나눔병원 화재 참사였다. 5월 일어난 이 참사로 21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이 난 별관에는 78명(1층 44명, 2층 34명)이 입원해 있었다. 사망자 21명 중 20명이 70~90대 치매 및 중풍 환자였다. 숨진 나머지 1명은 간호조무사였다. 2007년 문을 연 이 요양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전문요양병원으로 지정하고 인증의료기관으로 선정한 곳이다. 최근 병원 자체 점검과 지방자치단체(지자체) 안전관리 점검에서도 ‘이상 없다’고 했던 ‘좋은 요양병원’이었다. 치매 환자인 아버지를 이 참사로 여읜 이광운 화재참사 유가족 비상대책위원장은 “유족들이 자체 조사를 벌였는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우리도 아버지를 좋은 병원에 모시고 싶어 여러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고르지 않았겠습니까. 아버지가 입원 중 요도염에 걸렸는데, 나중에 보니 비용을 절약하려고 기저귀를 2~3일에 한 번씩만 갈아줬다고 하더라고요. 체중도 입원 전보다 15kg이나 줄었는데, 식사를 제때 제공하지 않았거나 식사비를 횡령한 건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아버지 외에도 환자 대부분이 입원 후 한 달 이내에 10kg 가까이 살이 빠졌거든요. 이런 부분을 철저히 수사해줬으면 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인증한 곳이 이 정도면 다른 곳은 어떻겠습니까.”
이 요양병원은 불에 탄 별관을 제외하곤 현재 정상 운영 중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경찰과 검찰이 수사하는 사안이라 결과가 나오면 행정처분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전국 요양병원 안전점검과 실태조사를 마쳤다. 이에 관한 자료를 냈으니 참고하라”고 밝혔다(상자기사 참조).
김정숙 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가는 “노인 돌봄보다 병원 이윤 창출에만 혈안이 된 민간요양기관이 난립하고 있다. 요양기관이 전국적으로 6000곳이 넘는다. 국내 의료기관의 48%를 요양기관이 차지하고 있는데, 환자가 믿고 갈 수 있는 곳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평가를 모두 통과한 병원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건 얼마나 조사가 형식적이고 부실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별관에 환자가 34명이나 있었지만 간호조무사는 1명뿐이었고, 스프링클러 같은 소방시설과 피난 장비도 갖춰져 있지 않았어요. 진상규명을 철저히 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 한편, 부실한 병원은 환자 안전을 위해서라도 퇴출해야 합니다.”
노숙인을 환자로 위장해 입원
8월 14일 국회에서 ‘요양병원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일부 요양병원은 노숙인을 환자로 위장해 입원시킨 뒤 진료비를 챙기기도 했다. 7월 인천 강화경찰서는 인천 강화군 베스트병원의 최모 원장과 사무국장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서울역과 영등포역 등에서 노숙인 수백 명을 유인, 병원에 입원시킨 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15억 원가량을 받아 챙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일명 ‘픽업자’라고 부르는 운전기사를 고용해 노숙인을 꾀어오게 했고, 퇴원을 요구하는 노숙인을 감금해 퇴원을 막은 것은 물론, 감금한 노숙인이 사망하자 무연고 처리 후 사망신고를 하지 않는 방법으로 불법행위를 숨겨온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역에서 2년째 노숙하는 박재경 씨도 ‘가짜 환자’로 이 병원에 보름간 입원했다 퇴원이 되지 않아 도망쳤다고 했다. 자활근로 중인 그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병원에 가면 숙식을 제공해준다는 말에 솔깃해 차에 탔는데 내보내주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픽업 차량이 역 근처를 돌며 사람들을 태워간다. 병원에 사람을 데려가면 운전기사한테 1인당 10만 원 정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저 같은 사람 하나 입원하면 병원에 200만 원 넘게 떨어진대요. 첫날 링거 하나 놔주더니 진찰도 안 하고 바로 폐쇄병동으로 보냈어요. 밥은 나오는데 할 것도 없고, 저는 알코올 중독도 아닌데 자꾸 약을 주더라고요. 도저히 못 있겠다 싶어 퇴원하겠다고 하니 원장이 출근하지 않아 안 된대요. 그래서 기다렸죠. 그런데 ‘지금은 상담이 어렵다’ ‘원장이 부재 중이다’라며 계속 퇴원을 안 시켜주는 거예요. 결국 비닐봉지에 옷을 싸서 몰래 빠져나왔어요. 차비가 없어 강화터미널까지 6시간 동안 걸어 나왔어요.”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요양병원 일당정액제의 허점을 지적했다.
“우리가 파악한 픽업 행위 요양병원이 서울에만 21곳가량 됩니다. 입원했던 분들의 이야기는 대동소이해요.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미끼로 병원에 입원시키고 퇴원을 못 하게 하는 거죠. 병원에 갔다가 감금과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예요. 침대를 채우면 돈이 들어오니 의료 행위보다 돈벌이가 목적인 사람에겐 진입 장벽이 낮은 겁니다. 현장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의료법 체계를 바꿔야 합니다.”
빈 침대를 채워줄 ‘돈줄’인 ‘가짜 환자’로 요양병원이 붐비는 사이, 진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방치되고 있다. 2010년 국가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 수행기관으로 지정된 경기 남양주시 수동연세요양병원은 간병인이 환자에게 폭언 및 구타를 하고 방치하는 문제로 논란의 중심이 됐다. 지난해 8월 30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환자가 입원 14일 만에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자 인권단체들이 들고 일어섰고, 같은 해 12월 질병관리본부는 수동연세요양병원에 대한 위탁계약을 취소했다.
40대 에이즈 환자 최모 씨의 어머니는 “서울의료원에 입원해 있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할 때 수동연세요양병원 얘기를 듣고 아들을 그곳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병원 관계자에게 사정했다. 그래서 다른 병원으로 옮겨 한 달간 입원했다가 다시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아들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권미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는 “당시 질병관리본부가 대체 병원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탁계약을 해지하고 간병비 지원을 중단하는 바람에 환자들이 쫓겨날 처지에 놓였었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진 환자들도 장기입원이 어려워 언제 퇴원하라는 얘기가 나올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 1300여 개 요양병원 가운데 71개가 공공요양병원이에요. 환자들을 입원시키려고 공공요양병원 23곳과 서울 민간요양병원 5곳을 대상으로 입원 상담을 했는데 ‘격리 병실이 없다’ ‘전염성 질환자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켜선 안 된다’ ‘면역력 약한 노인이 주로 입원해서 안 된다’면서 거부했어요. 이런 식이면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죠.”
2011년 4월 보건복지부는 에이즈가 일상적인 공동생활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위험이 없으므로 의료법 시행규칙 제36조 2항(‘전염성 질환자는 요양병원의 입원 대상으로 하지 아니하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권씨는 “요양병원의 거절 이유는 의학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에이즈 환자 집단 전체가 요양병원들로부터 배제당하는 상황인 만큼 공공의료 기능을 수행할 국립요양병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명과 인권 해치는 일 빈번
한편 2009년 청주시가 157억 원을 들여 만든 청주시노인전문병원에서는 간병 노동자들이 100일 넘게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 병원은 2011년 위탁운영을 맡은 효성병원이 간병사들의 임금을 체불하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을 집단 해고해 한 차례 위탁계약이 해지된 바 있다. 그러나 위탁업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불법이 자행되자 노동조합원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배형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의료연대 충북지부 조직부장은 “지자체가 설립한 요양병원 대부분이 복지재단 또는 민간병원에 위탁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계약 이후에는 실질적인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아 운영상 횡포를 막을 방법이 없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간병 노동자는 24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임금 체불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4년여 동안 근무한 권옥자 분회장은 “간병사들이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했는데 병원에서는 24시간 중 15.5시간에 대한 임금만 지급했다. 체불 임금액은 9억여 원에서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병원 측에서 부담을 느꼈는지 단체교섭 마지막에 3교대제 전환을 밀어붙였어요. 교섭이 결렬되면서 파업을 하게 됐죠. 물론 24시간 격일제를 3교대제로 전환하는 건 좋지만 인력 충원이 없는 상태에서는 1인당 노동 강도가 폭증하고 환자의 안전도 심각하게 위협받게 돼요. 간병사 1명이 환자 5~8명이 입원한 병실 2~3개를 책임지는 거거든요. 당시 병원에서는 간병사가 없는 방은 폐쇄회로(CC)TV로 간병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쉬지 말고 근무하든지, 환자를 버리라는 것밖에는 안 되는 거죠.”
남윤인순 의원은 “요양병원에 투입되는 국민건강보험 재정 지출은 늘어나고 있지만, 요양병원에 대한 정부 차원의 평가와 관리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된 평가와 관리 없이 우후죽순 늘어난 요양병원에서 환자의 생명과 인권을 해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근로조건도 매우 열악해 환자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실정입니다. 본격적인 노령 사회를 앞두고 해결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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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연세요양병원’ 관련 반론보도]
본 인터넷 신문은 지난해 8월 25일자(952호) “[커버스토리 | 요양병원을 혁파하라 01] 타락한 요양병원 老人은 두 번 운다”라는 제목으로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에이즈 환자에 대한 치료방치 등 부적절한 조치로 사망에 이르게 하였고, 질병관리본부와의 위탁계약이 해지되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수동연세요양병원은 위 사망사건과 위탁계약 해지 간에는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