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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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웃을 수 있나” 집단우울증

국민들 가족 심정으로 슬픔과 눈물…상실은 슬픔보다 분노 더 야기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psysohn@chollian.net

    입력2014-04-28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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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경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이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단체 수학여행을 떠난 경기 안산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배와 함께 가라앉고,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만 살겠다고 일찌감치 줄행랑을 쳤으며,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에 해당 학교 교감은 목매 자살했다. 자신을 민간잠수부라고 소개하며 허위 증언을 한 ‘리플리 증후군’(허구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의심 여성도 등장했고, 학부모들의 오열과 분노가 연이어 생중계됐다. 정부 당국의 뒤늦은 대처와 초기의 우왕좌왕 행태, 그리고 잘못된 상황 파악에 의한 성급한 발표 등도 있었다. 안전행정부의 고위 공직자 송모 국장은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어이없는 행동으로 유가족의 분노를 샀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건 당일 해군 대조영함에서 작전을 수행했던 병사 한 명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왔다. 한마디로 짜증 그 자체였다. 무책임한 어른들과 생명 경시 풍조, 그리고 뒤늦은 후회는 우리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언론보도를 지켜보는 수많은 국민이 함께 분통을 터뜨렸고, 함께 슬퍼했으며, 함께 넋을 놓았다. 이른바 집단우울증에 빠진 것이다. 필자에게 진료받는 많은 우울증 또는 불안장애 환자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내 아이가 타고 있었다면…

    “선생님, 세월호 학생들을 보니까 너무 불쌍해요. 그리고 우울하고 불안합니다. 증상이 더 심해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약 복용량을 늘려주셔야 할 것 같아요.”

    공황장애를 앓는 한 환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까지 제가 비행기를 타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배도 무서워서 못 탈 것 같아요.”

    장기간 우울증을 앓는 한 환자는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인데 불쌍한 어린 학생들이 대신 죽은 것 같아 하루 종일 기분이 너무 우울하다”며 증상 악화를 호소했다. 집에서는 아내 또는 어머니가 슬픔에 잠겼고, 때로는 분통을 터뜨리며 많은 사람이 불면과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다. 남편이나 아버지도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일하니 집중력이 저하된다고 호소한다. 대한민국 전체가 우울증을 앓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PTSD)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와 같은 증상을 겪는 것일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몇 가지 원인적 측면을 분석해보면, 함입(Incorporation·또는 합일화)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함입이란 ‘동일시’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좀 더 원초적이고 미숙한 단계의 방어기제다. 즉 동일시란 닮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하지만, 함입이란 자신도 모르게 대상에 동화되는 현상이기에 차이가 있다.

    TV 화면에 비치는 세월호 침몰 장면과 신문에 보이는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 흘리는 모습이 마치 나 자신이 그 옆에 있는 듯한 느낌, 나아가 내가 그 부모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그들과 내가 합쳐진 느낌이 무척 강하기에, 내 감정이 자신에게 고스란히 들어오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만일 내 아이가 저 배에 타고 있었다면’이라는 질문이 단순한 가정에 그치지 않고, 마치 실제로 벌어진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면 슬픔, 분노, 절망, 좌절 같은 감정이 연쇄반응처럼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무력감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부모인 내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니, 그러고도 내가 부모란 사람인가’ 하는 죄책감도 함께 작용한다. 자식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이 어찌 웃을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단 말인가.

    둘째, ‘내적 투사(Introjection)’ 과정도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내적 투사란 다른 사람의 태도, 가치 혹은 행동을 마치 나 자신의 것처럼 동화하는 무의식적 과정을 말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슬픔에 잠겨 있고, 실망감에 빠져 있으며, 무기력한 분위기가 공기를 타고 전염되는 것 같다. 웃는 사람 한 명 없고, ‘배 안에 남아 있는 아이가 대부분 사망했을 것’이라는 예측은 감히 꺼내놓지도 못한다. 누가 즐거운 표정으로 노는 모습을 보이면 “저 사람 분위기 파악도 못 하네. 어떤 부모는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자식을 기다리는데 제 정신이야”라는 비난이 던져진다.

    “어찌 웃을 수 있나” 집단우울증

    4월 23일 경기 안산 올림픽기념관 실내체육관에 처음으로 희생자 임시합동분향소가 마련돼 밤늦게까지 조문객 발길이 이어졌다.

    무의식 속 恨이 출몰

    많은 사람이 비난을 던지는 이의 생각과 태도를 내적 투사해 “맞아. 지금이 어느 때인데 정말 너무해. 비난받아 마땅해”라고 동일한 태도를 취한다. 결과적으로 긍정적 감정에 대한 억압이 이뤄진다. 더 나아가 즐거움과 기쁨을 억제하기까지 한다. 실종자 가족에게 함입하고, 주변 사람에게 내적 투사한 결과 우울과 무기력, 분노와 짜증, 불안과 공포가 나 자신을 휘감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실종자 가족이나 주변 사람은 타인 아닌가. 신경 쓰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말이야 쉽다. 하지만 실제는 그리 쉽지 않다. 일단 그런 사고방식은 우리 한국인 정서에 맞지 않는다. 괴로워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그 사람을 못 본 척하고 나만 잘 지낼 수도 없다. 한국인의 고유한 일체감 또는 동질성 때문이다. 지금이야 다문화 혹은 다민족국가로 받아들여지는 대한민국이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단일민족이요, 한 핏줄을 강조하던 나라였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한민족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가치관이 매우 강하게 우리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한민족의 밑바탕 정서인 ‘한(恨)’을 자극한다. 수백 번 외침을 겪었고, 수백 년 동안 보릿고개에 신음했으며, 수십 년간 외국의 지배를 받았던 우리다. 한이 서릴 수밖에 없다.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경험했다. 슬픔과 한이 우리의 밑바탕 정서로 자리 잡았는데, 비록 전쟁은 아니어도 재난에 의한 사람들의 죽음, 그것도 어린 청소년들의 가엾고 억울한 죽음은 우리의 ‘한’을 다시 한 번 표면 위로 올려놓았다. 우리의 무의식 깊숙이 도사리던 한과 슬픔을 의식 세계로 출몰시킨 것이다.

    여기에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무시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식’의 일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향한 대한민국 부모의 사랑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때로는 이와 같이 강한 자식 사랑이 아이를 힘들게 하고, 사회를 경쟁적 분위기로 만들며, 가족 이기주의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식은 부모에게 최고로 소중한 존재다. 그런 자식이 지금 위기에 처했고, 하나 둘씩 죽음을 맞는 이 상황에서 누구의 자식이 아닌 우리의 자식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집단우울증 및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을 겪는 마지막 이유는 ‘상실(Loss)’이다. 상실이란 말 그대로 어떤 것이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끊어지거나 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상실은 본래 우울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이제 앞으로는 저 아이들을 볼 수 없게 된다니’라는 생각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절망하게 만든다. 상실은 때로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한민국 재난대응 시스템의 부실, 리더의 책임감과 양심의 실종, 안전관리 부재는 우리가 마땅하게 지니고 있어야 할 ‘상식’과 ‘자부심’의 상실을 야기했다. 이러한 상실은 슬픔보다 분노를 더 많이 가져다준다. 그래서 우리는 더 힘들다. 슬퍼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분노까지 가슴속에 안고 가려니까 힘에 부친다.

    몸 아프다는 사람 늘어나

    “어찌 웃을 수 있나” 집단우울증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생존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에 시달리며 큰 슬픔을 겪었다.

    그러니 몸 이곳저곳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분노를 당사자에게 직접 표출하지 못하다 보니까 애꿎은 내 몸을 공격하는 것이다. ‘신체화 반응’이라고 할 수 있지만, 거의 자해 수준이다. 이어지는 불안과 공포도 상실이 낳은 결과적 감정의 산물이다. 수학여행 일정을 취소하고, 각종 축제나 오락 행사를 연기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자중하는 차원을 넘어 불안과 공포를 감당하기 어려워 그렇다고 본다. ‘유가족과 온 국민이 슬퍼하는데 우리만 즐거워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슬퍼해야 하고 더 불안해야 한다. 하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다. 언젠가는 일상생활로 복귀하고, 현재의 참사를 교훈 삼아 더욱 발전적이고 상식적인 우리 모습을 기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국민에게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치유법(Tip 참조)을 소개한다(출처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세월호 사건을 겪는 일반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안내문’).

    Tip

    정신적 치유법


    “어찌 웃을 수 있나” 집단우울증

    2005년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어린이가 그림 치료를 받고 있다.

    1.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한다.

    2.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일에 집중한다.

    3. 잠시 쉰다. 쉬면서 자꾸 힘든 생각이 떠오른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본다.

    4. 운동이나 신체활동에 집중한다.

    5. 믿을 만한 사람과 현재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나눈다.

    6. 자신의 감정반응이 지나치지는 않은지 살펴본다.

    7. 종교가 있다면 기도한다.

    8. 고통 또한 자신이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9. 기분이 나아지는 활동을 한다. 현실 도피적이거나 중독 관련 활동은 피한다.

    10. 힘든데도 잘 버텨온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칭찬해준다.

    11.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본다.

    12. 현재 내게 소중한 사람과 가치를 생각해본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

    ● 눈물이 계속 나거나, 잠이 오지 않거나, 이전에는 즐겨 했던 일이 더는 재미없거나, 우울 혹은 화나는 감정 반응이 상당히 심할 때

    ●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들거나, 식욕이나 체중에 변화가 있을 때

    ● 모든 생각이 부정적이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등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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