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다. 눈짓 한 번, 손길 하나로 상대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작업 신공’을 가르쳐준다는 곳이 줄을 잇는다. 그런데 왜 여전히 사랑은 힘들고 ‘운명의 짝’은 도통 만날 수 없는 걸까. 고전평론가 고미숙(54·사진) 씨는 그 원인을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찾는다. 고씨는 연구생활공동체 ‘수유너머’를 만들어 활동했고, 지금은 의역학(醫易學)연구소 ‘감이당’에서 연구와 집필을 하는 인문학자다. 그가 생각하는 우리 시대 사랑의 첫 번째 문제는 ‘사랑을 유예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고씨에 따르면 연애는 미뤄둘 수 없다. 인간은 에로스에 의해 태어났고 여성 열넷, 남성 열여섯 무렵이 되면 자연스럽게 ‘짝짓기’에 대한 관심이 싹트기 때문이다. 고씨는 “이팔청춘에 연애를 시작하는 건 로미오와 줄리엣, 성춘향과 이몽룡 이전부터 도도히 내려온 전통 아니냐”고 묻는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제도와 규율로 본성을 억압한다는 점이다.
제도와 규율로 사랑 본성 억압
“과거엔 대부분 사람이 에로스가 폭발하는 시기에 짝을 만나 성적인 즐거움을 충분히 누렸어요. 그 뒤 자신의 에너지를 직업이나 사회적인 역할 쪽으로 옮겨 어른이 됐죠. 그런데 지금은 학업, 취직, 사회적 성취 같은 것이 에로스를 한없이 뒤로 미루게 만들잖아요. 대학생들과 얘기해보면 보통 서른 셋 정도를 적정 결혼 연령으로 보더군요. 40대 결혼, 임신, 출산도 흔하고요.”
고씨는 이처럼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결국 인간을 공격한다고 말한다. 성별, 세대를 막론하고 온 사회 구성원이 연애에 관심을 쏟으면서도, 각종 ‘힐링’을 주기적으로 소비해야 할 만큼 외로움과 공허에 시달리는 건 ‘자연스러운 삶의 행로’를 억압한 대가라는 게 고씨의 분석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문명의 테러’ 혹은 ‘자연의 역습’이라고 불렀다.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사랑에 대한 그릇된 신화도 ‘연애 불능’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몸에 대한 욕망은 저차원적인 것이며 상대 영혼을 사랑하는 것만이 진정한 연애라는 믿음, 즉 사랑의 탈성화(脫性化)에 대한 지적이다. 고씨는 “요즘 멜로드라마 속 사랑 이야기는 개화기에 이광수가 쓴 소설 속 러브스토리와 한 치도 다를 게 없다. 사랑할수록 상대에 대한 욕망을 억누른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보니 간절히 그리워하다 8년 만에 만난 남녀가 손만 잡고 자더라”며 혀를 찼다.
고씨에 따르면 드라마에서 연인이 하는 일은 서로의 영혼을 샅샅이 뒤져 상대에 대한 사랑에 한 점 의혹이 없는지 확인하는 게 전부다. 그러고는 최종적으로 신 앞에 가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자연스럽던 짝짓기는 더할 나위 없이 비장한 이벤트로 변질됐고, 이런 상황에서 에로스는 설 자리를 잃었다. 에로스의 부족은 극도의 성적 방탕, 즉 변태를 부른다. 고씨가 대표적 사례로 지적한 것이 아이돌 그룹 열풍이다. 그는 “요즘 가요 프로그램은 인간이 ‘성욕의 동물’이라는 걸 현시하는 장”이라고 했다.
“그들의 춤과 노래를 보세요. 거기 성욕을 자극하겠다는 욕망 외에 무엇이 더 있습니까. 그래 놓고 정작 본인들은 토크쇼에 나와 ‘연애를 한 번도 못해봤다’고 하죠. 하는 일은 남의 성욕을 부추기는 건데 정작 자신은 ‘연애금지’라니, 이렇게 슬프고 변태적일 수 있습니까.”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주는 사랑’
고씨는 “성에 인색한 멜로는 권태를 낳고, 권태는 변태를 가져온다”며 “내 몸의 호르몬이 분출하고 분자 하나하나까지 떨리는 연애를 할 때는 굳이 사랑을 확인하고, 증명할 필요가 없다. 나와 상대가 하는 게 사랑이라는 걸 스스로 안다. 연애가 탈성화되니 오히려 사랑에 대한 욕망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랑은 받는 것’이라는 오해도 우리 시대에 진정한 사랑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꼽힌다. 고씨는 “요즘 여성은 교육이나 직업적인 면에서 과거에 비길 수 없는 엄청난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여전히 사랑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뛰어난 남자의 열렬한 사랑만 원한다”며 “이것이 상당수 ‘골드미스’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머리 좋고 잘생기고 돈까지 많은 남자가 한 여자에게만 순정을 바치는 게 이 우주에서 가능한가요.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내게는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씨의 말이다. 그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가치가 날로 높아지는 시대에 여성이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한 남성을 잡아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려는 건 왜곡된 인정욕망”이라며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연애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신을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만드는 건 ‘주는 사랑’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달리 말하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결국 인간을 구원한다고 믿는다. 그는 “사랑은 대단한 사건이다. 인간을 독립하게 하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며, 마침내 세상을 변화시킨다”며 “그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라고 했다.
이런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씨가 들려주는 첫 번째 조언은 ‘몸의 리듬을 따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시절인연’이 있습니다. 내 몸에서 호르몬이 약동할 때죠. 지금 내 몸이 움직이는데 ‘아직 어리니까’라고 감정을 미뤄두거나,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 ‘나이가 됐고, 저 사람 조건이 좋으니 사랑하자’고 작정한다고 진짜 연애가 될까요. 내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잘 관찰하고, 그 리듬을 따라가는 게 중요합니다.”
시절이 맞고 인연이 닿아 사랑이 시작됐을 때 할 일 또한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고씨는 “연애를 잘 하려면 일단 머리를 내버려둬야 한다”고 했다.
“에로스는 단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에요. 거기에 기운을 모아야 합니다. 진짜 사랑이 충만했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생각지도 못한 데서 자꾸 그 사람과 마주치죠. 뭘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내 몸이 저절로 진정성을 표현합니다. 그게 상대를 유혹하는 거예요. 머리로 계산해 수행하는 잔기술보다 훨씬 폭발력이 크죠.”
내 ‘진정한 유혹’에 상대가 반응해주고받는 사랑이 시작됐다면, 이제 할 일은 또 한 번 ‘자연의 리듬’을 따르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됐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고씨도 이 의견에 100% 동의한다. 사람 마음은 변덕스럽고, 세상 모든 것은 변하며, 진정한 사랑 또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씨는 “내 영혼의 반쪽, 영원한 동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시절인연이 닿아 1년이든 10년이든 함께 했다면 그가 바로 ‘운명의 상대’인 것”이라고 했다.
“사랑이 끝나면 우리 몸은 분자적으로 바뀌어요. 미칠 듯 떨리던 상대와 ‘소 닭 보듯’ 하는 사이가 되는 겁니다. 이건 내 잘못도 그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냥 자연의 질서인 거죠.”
고씨는 처음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왜 기성세대는 내게 이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나’ 하며 분노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는 많은 이가 이별을 맞을 때 ‘운명의 짝을 만나지 못해 생긴 일’이라며 자책하거나, 상대를 비난하며 고통의 나날을 겪는 걸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젊은이에게 늘 말한다. 사람이 태어나면 죽듯,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모든 사랑은 결국 변하고 끝난다고. 이 리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또한 진정한 사랑을 하는 방법이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스스로 사랑’이 진정한 사랑
“진짜 사랑했던 두 사람이라 해도 이 리듬이 일치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혹은 상대가 먼저 마음이 변할 수 있죠. 그때 ‘나를 진정 사랑하기는 했니’ 하며 울부짖는 건 불필요할 뿐 아니라 무가치한 일입니다. 자연을 어떻게 움직이나요. 이미 끝난 사랑을 법과 도덕으로 되돌릴 수는 없어요.”
사랑이 끝났을 때 할 일은 또 한 번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생살이 뜯기는 아픔을 온전히 겪는 것, 그래서 자신의 바닥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고씨는 “사랑의 끝을 경험하지 못하면, 다시 사랑이 찾아왔을 때 상대가 자신을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연애를 즐기지 못하게 된다. 계속 사랑을 확인하려 하고, 약속받으려 하다 권태와 변태의 늪에 빠진다”고 했다. 한 사랑을 완성했을 때 비로소 더 큰 자신감과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결국 고씨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 안의 리듬을 깨닫고 따라가며 만족시켜주는 것, 그 과정에서 더욱 멋지고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씨는 “그것이 바로 연애의 힘”이라며 “좋은 연애는 자명하고, 편안하며, 주위 모든 사람을 명랑하게 만든다. 그전엔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을 기꺼이 하게 하고, 끝난 후에도 ‘그 사랑으로 정말 행복했다’고 기억하게 만든다”고 했다.
“자신을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만이 좋은 연애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연애는 삶과 세상을 다 바꿔놓죠. 진짜 인연도 아닌 만남에 ‘정(精)’을 낭비하지 말고 몸과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고씨의 마지막 조언이다.
고씨에 따르면 연애는 미뤄둘 수 없다. 인간은 에로스에 의해 태어났고 여성 열넷, 남성 열여섯 무렵이 되면 자연스럽게 ‘짝짓기’에 대한 관심이 싹트기 때문이다. 고씨는 “이팔청춘에 연애를 시작하는 건 로미오와 줄리엣, 성춘향과 이몽룡 이전부터 도도히 내려온 전통 아니냐”고 묻는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제도와 규율로 본성을 억압한다는 점이다.
제도와 규율로 사랑 본성 억압
“과거엔 대부분 사람이 에로스가 폭발하는 시기에 짝을 만나 성적인 즐거움을 충분히 누렸어요. 그 뒤 자신의 에너지를 직업이나 사회적인 역할 쪽으로 옮겨 어른이 됐죠. 그런데 지금은 학업, 취직, 사회적 성취 같은 것이 에로스를 한없이 뒤로 미루게 만들잖아요. 대학생들과 얘기해보면 보통 서른 셋 정도를 적정 결혼 연령으로 보더군요. 40대 결혼, 임신, 출산도 흔하고요.”
고씨는 이처럼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결국 인간을 공격한다고 말한다. 성별, 세대를 막론하고 온 사회 구성원이 연애에 관심을 쏟으면서도, 각종 ‘힐링’을 주기적으로 소비해야 할 만큼 외로움과 공허에 시달리는 건 ‘자연스러운 삶의 행로’를 억압한 대가라는 게 고씨의 분석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문명의 테러’ 혹은 ‘자연의 역습’이라고 불렀다.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사랑에 대한 그릇된 신화도 ‘연애 불능’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몸에 대한 욕망은 저차원적인 것이며 상대 영혼을 사랑하는 것만이 진정한 연애라는 믿음, 즉 사랑의 탈성화(脫性化)에 대한 지적이다. 고씨는 “요즘 멜로드라마 속 사랑 이야기는 개화기에 이광수가 쓴 소설 속 러브스토리와 한 치도 다를 게 없다. 사랑할수록 상대에 대한 욕망을 억누른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보니 간절히 그리워하다 8년 만에 만난 남녀가 손만 잡고 자더라”며 혀를 찼다.
고씨에 따르면 드라마에서 연인이 하는 일은 서로의 영혼을 샅샅이 뒤져 상대에 대한 사랑에 한 점 의혹이 없는지 확인하는 게 전부다. 그러고는 최종적으로 신 앞에 가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자연스럽던 짝짓기는 더할 나위 없이 비장한 이벤트로 변질됐고, 이런 상황에서 에로스는 설 자리를 잃었다. 에로스의 부족은 극도의 성적 방탕, 즉 변태를 부른다. 고씨가 대표적 사례로 지적한 것이 아이돌 그룹 열풍이다. 그는 “요즘 가요 프로그램은 인간이 ‘성욕의 동물’이라는 걸 현시하는 장”이라고 했다.
“그들의 춤과 노래를 보세요. 거기 성욕을 자극하겠다는 욕망 외에 무엇이 더 있습니까. 그래 놓고 정작 본인들은 토크쇼에 나와 ‘연애를 한 번도 못해봤다’고 하죠. 하는 일은 남의 성욕을 부추기는 건데 정작 자신은 ‘연애금지’라니, 이렇게 슬프고 변태적일 수 있습니까.”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주는 사랑’
고씨는 “성에 인색한 멜로는 권태를 낳고, 권태는 변태를 가져온다”며 “내 몸의 호르몬이 분출하고 분자 하나하나까지 떨리는 연애를 할 때는 굳이 사랑을 확인하고, 증명할 필요가 없다. 나와 상대가 하는 게 사랑이라는 걸 스스로 안다. 연애가 탈성화되니 오히려 사랑에 대한 욕망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랑은 받는 것’이라는 오해도 우리 시대에 진정한 사랑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꼽힌다. 고씨는 “요즘 여성은 교육이나 직업적인 면에서 과거에 비길 수 없는 엄청난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여전히 사랑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뛰어난 남자의 열렬한 사랑만 원한다”며 “이것이 상당수 ‘골드미스’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머리 좋고 잘생기고 돈까지 많은 남자가 한 여자에게만 순정을 바치는 게 이 우주에서 가능한가요.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내게는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씨의 말이다. 그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가치가 날로 높아지는 시대에 여성이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한 남성을 잡아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려는 건 왜곡된 인정욕망”이라며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연애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신을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만드는 건 ‘주는 사랑’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달리 말하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결국 인간을 구원한다고 믿는다. 그는 “사랑은 대단한 사건이다. 인간을 독립하게 하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며, 마침내 세상을 변화시킨다”며 “그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라고 했다.
이런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씨가 들려주는 첫 번째 조언은 ‘몸의 리듬을 따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시절인연’이 있습니다. 내 몸에서 호르몬이 약동할 때죠. 지금 내 몸이 움직이는데 ‘아직 어리니까’라고 감정을 미뤄두거나,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 ‘나이가 됐고, 저 사람 조건이 좋으니 사랑하자’고 작정한다고 진짜 연애가 될까요. 내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잘 관찰하고, 그 리듬을 따라가는 게 중요합니다.”
시절이 맞고 인연이 닿아 사랑이 시작됐을 때 할 일 또한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고씨는 “연애를 잘 하려면 일단 머리를 내버려둬야 한다”고 했다.
“에로스는 단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에요. 거기에 기운을 모아야 합니다. 진짜 사랑이 충만했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생각지도 못한 데서 자꾸 그 사람과 마주치죠. 뭘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내 몸이 저절로 진정성을 표현합니다. 그게 상대를 유혹하는 거예요. 머리로 계산해 수행하는 잔기술보다 훨씬 폭발력이 크죠.”
내 ‘진정한 유혹’에 상대가 반응해주고받는 사랑이 시작됐다면, 이제 할 일은 또 한 번 ‘자연의 리듬’을 따르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됐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고씨도 이 의견에 100% 동의한다. 사람 마음은 변덕스럽고, 세상 모든 것은 변하며, 진정한 사랑 또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씨는 “내 영혼의 반쪽, 영원한 동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시절인연이 닿아 1년이든 10년이든 함께 했다면 그가 바로 ‘운명의 상대’인 것”이라고 했다.
“사랑이 끝나면 우리 몸은 분자적으로 바뀌어요. 미칠 듯 떨리던 상대와 ‘소 닭 보듯’ 하는 사이가 되는 겁니다. 이건 내 잘못도 그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냥 자연의 질서인 거죠.”
고씨는 처음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왜 기성세대는 내게 이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나’ 하며 분노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는 많은 이가 이별을 맞을 때 ‘운명의 짝을 만나지 못해 생긴 일’이라며 자책하거나, 상대를 비난하며 고통의 나날을 겪는 걸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젊은이에게 늘 말한다. 사람이 태어나면 죽듯,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모든 사랑은 결국 변하고 끝난다고. 이 리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또한 진정한 사랑을 하는 방법이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스스로 사랑’이 진정한 사랑
“진짜 사랑했던 두 사람이라 해도 이 리듬이 일치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혹은 상대가 먼저 마음이 변할 수 있죠. 그때 ‘나를 진정 사랑하기는 했니’ 하며 울부짖는 건 불필요할 뿐 아니라 무가치한 일입니다. 자연을 어떻게 움직이나요. 이미 끝난 사랑을 법과 도덕으로 되돌릴 수는 없어요.”
사랑이 끝났을 때 할 일은 또 한 번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생살이 뜯기는 아픔을 온전히 겪는 것, 그래서 자신의 바닥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고씨는 “사랑의 끝을 경험하지 못하면, 다시 사랑이 찾아왔을 때 상대가 자신을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연애를 즐기지 못하게 된다. 계속 사랑을 확인하려 하고, 약속받으려 하다 권태와 변태의 늪에 빠진다”고 했다. 한 사랑을 완성했을 때 비로소 더 큰 자신감과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결국 고씨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 안의 리듬을 깨닫고 따라가며 만족시켜주는 것, 그 과정에서 더욱 멋지고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씨는 “그것이 바로 연애의 힘”이라며 “좋은 연애는 자명하고, 편안하며, 주위 모든 사람을 명랑하게 만든다. 그전엔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을 기꺼이 하게 하고, 끝난 후에도 ‘그 사랑으로 정말 행복했다’고 기억하게 만든다”고 했다.
“자신을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만이 좋은 연애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연애는 삶과 세상을 다 바꿔놓죠. 진짜 인연도 아닌 만남에 ‘정(精)’을 낭비하지 말고 몸과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고씨의 마지막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