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수행을 전담하는 안봉근 비서(오른쪽).
“나이가 어느 정도 된 사람의 이름 석 자를 듣고 믿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면, 그 사람의 인생은 겉으로 아무리 화려해도 성공한 게 아니다. 신뢰를 저버리는 일을 하면 그 사람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
이번엔 조금 다르게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다시는 안 쓴다는 평가도 있는데”라고 물었다. “그것은 주관적 판단이다. 일관성 있게 자기가 한 말을 잘 지키고 주변에서 ‘저 사람의 말이라면 한마디 말이라도 믿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도덕성 문제를 떠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안 되는 것 아니냐.”(2005년 7월 연합뉴스)
한 번 배신한 사람 다시 안 써?
박근혜 후보가 보여주는 인사스타일 혹은 용인술의 키워드는 ‘신뢰’다. 박 후보가 정치를 시작한 1998년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그렇다. 한번 신뢰하면 죽 함께 일하는 스타일이다. 2012년 박근혜 캠프 구성원 대부분이 2007년에 호흡을 맞춘 인사라는 점은 ‘신뢰’를 용인(用人)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국회의원 14년 동안 이재만, 이춘상 보좌관과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 등 보좌진 4명을 바꾸지 않고 가족 같은 신뢰를 보내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물론 신뢰가 기본이지만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따라 필요한 능력과 전문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사람은 바뀔 수 있다. 당내 경선이 중심이던 2007년과 경선보다 본선이 중요한 2012년 인사스타일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친박(친박근혜)계 한 중진의원은 “박 후보는 누구를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것보다 자리에 맞는, 능력을 갖춘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스타일”이라면서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출신지역도, 학교도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은 본선을 압도했다. 경선에서 이기면 본선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라 여겨졌고 실제로도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인 데다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컸기 때문이다. 당연히 캠프 조직도 경선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당내 인사를 중심으로 박근혜 후보와 가까운 일부 외부 인사가 포진하는 형태였다.
규모는 매머드급이었다.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뒤지는 형국이었고, 한 표가 아쉬웠기 때문이다. 정책은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다. 강력한 상대와 일대일로 맞붙는 ‘전쟁터’에서 큰 싸움에 능한 ‘장수’들이 핵심을 차지했고, 더 많은 군사(지지자)를 끌어올 수 있는 ‘조직과 직능’ 분야가 힘을 발휘했다. 김무성 전 의원, 유승민 의원 같은 ‘장수형’ 정치인이 캠프에서 중심 구실을 했던 이유다. 2007년 경선 당시 박 후보 캠프 주요 인사를 ‘삼국지’에 빗대 김무성은 ‘장비’, 유승민은 ‘관우’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당시 캠프에 깊이 관여했던 친박계 핵심인사는 “이명박 후보에게 밀리고 있을 때여서 충성도 높은 인사를 중심으로 캠프가 꾸려졌다”며 “캠프에는 일종의 비장한 분위기가 흘렀다”고 회상했다.
반면 2012년 대선은 팽팽한 여야 맞대결이 예고돼 있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야권 단일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를 이기는 결과가 나오는 상황에서 목표는 당내 경선보다 본선이 될 수밖에 없다. 당내에서 아무리 1등을 해봐야 당과 후보의 지지기반을 ‘확장’하지 않으면 본선에서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얘기다.
캠프는 본선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여전히 신뢰가 깊은 당내 인사들이 주축을 이뤘지만 ‘외연 확장’이라는 과제가 주어진 만큼 외부 인사 영입이 필수였다. 조직과 직능보다 중도층을 흡수하기 위한 ‘정책’이 중요한 열쇠가 됐다.
김종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박 후보가 보여준 ‘2012년식 인사’의 상징적 인물이다. ‘경제민주화’라는 강력한 개혁 메시지를 통해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겠다는 ‘외연 확장 전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디어와 홍보에 강한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변추석 국민대 학장 등 전문가 그룹을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 내부 정치보다 국민 정서를 잘 읽고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인물이 외연을 넓히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한 과정은 박근혜 인사에서 보기 드문 경우로 꼽힌다. 4·11 공천과정에서 실망감을 표시하며 ‘이탈’했던 그를 ‘삼고초려’ 끝에 설득한 것이다. 2007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시절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과 대화를 나누는 김종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왼쪽).
친박계 한 재선의원은 “4·11 총선에서의 대승이 김 위원장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 측면과 본선에서의 승리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측면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설득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이 생소하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박근혜 인사스타일에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사 과정에서의 지나친 폐쇄주의와 누가 진짜 측근인지조차 알 수 없는 비밀주의, 체계적인 조직 구성과 운영을 가로막는 분할통치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구체적으로는 진영아 패트롤맘 회장의 공천위원 자격 시비와 자진 사퇴, 7인회 논란, 김무성 전 의원의 탈박(脫朴), 현기환 전 의원 공천헌금 의혹 등을 통해 드러났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 후보는 어린 시절부터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하면서 ‘정치’보다 ‘통치’를 먼저 배운 인물”이라며 “참모들과 토론하고 결정을 내리는 수평적 리더십이 아니라, 보고받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종결자 노릇에 익숙한 만큼 인사스타일에도 이런 리더십이 묻어난다”고 분석했다.
특히 배신에 대한 알레르기에 가까운 증오는 인사스타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최측근에 의해 살해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시대 호의호식했던 인사들이 10·26 이후 보여준 태도가 사무쳤던 탓에 사람을 고르는 기준도 ‘충성과 배신’이 중심이 됐다. 박 후보에게 신뢰와 충성은 동전의 양면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배신하지 않을 만큼 충성도 높은 인물은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충성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인물은 철저히 배제된다. 결과적으로 친박 내부의 충성경쟁은 과열되는 양상을 보인다. 박 후보가 해외로 나가면 공항으로 몰려가고, 누군가 박 후보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심기까지 살핀다는 ‘심기보좌’를 잘하는 인물이 충성도 높은 인물로 부각되고 요직에 기용된다. 쓴소리를 마다 않는 인물은 점점 멀어지고 ‘달콤한 얘기’를 잘하는 측근이 권력을 얻는 구조가 고착된다.
중립 성향을 가진 새누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결국 박 후보 주변의 충성경쟁이 상황을 오판하게 할 개연성을 높인다”며 “충성이 아니라 탕평을 통해 능력 있는 인물도 영입하고 외연도 확장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