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졸 취업준비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삼성 직무적성검사(GSAT · Global Samsung Aptitude Test) 공부를 했을 거예요. 올 하반기부터 그 시험이 없어지는 건 채용시장에 굉장히 큰 변화죠.”
온라인 취업 사이트 ‘인크루트’의 박영진 과장의 말이다. 3월 21일 원서 접수를 마감하는 ‘2017년 상반기 3급 신입사원 채용’을 마지막으로 삼성이 사실상 그룹 차원의 대졸 공개채용(공채)을 중단하기로 한 것에 대한 평가다.
삼성은 1957년 우리나라 최초로 신입사원 공채를 시작했다. 95년에는 서류전형을 없앴다. 그 대신 시험을 통해 능력과 적성을 평가하는 GSAT를 도입했다. 지원자의 학벌, 전공, 성별 등에 관계없이 일정 자격조건만 갖추면 누구에게나 GSAT 응시 기회를 줬다. 이러한 정책 덕에 GSAT 응시자 수는 한 해 20만 명에 달했고, 삼성은 우수 인력을 대거 확보할 수 있었다. 신입사원이 어느 계열사에 배치되든 그룹 공통 연수(SVP · Samsung Shared Value Program)를 받도록 한 것도 삼성 채용의 특징이었다. 이를 통해 ‘삼성맨’을 길러내는 시스템은 국내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쳤고, 오랫동안 그룹사가 주도하는 대규모 공채와 신입사원 연수가 일반화됐다.
사회적 약자 배려 시스템 사라진다?
그런데 3월, 60년간 이어져온 이러한 삼성의 채용 시스템에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 표면적 이유는 그동안 전체 계열사의 인력 운용을 감독하던 삼성미래전략실(미전실)의 해체다. 삼성은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후 전격적으로 미전실을 해체했고, 소속 인원 대부분은 이미 각 계열사로 흩어졌다. 그룹의 ‘마지막’ 공채 진행 업무를 맡은 인사팀도 이 절차가 마무리되면 해산할 예정이다. 이후 각 계열사는 자체적으로 채용 절차를 마련해 직원을 선발해야 한다.아직 구체적인 방식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막대한 관리비용이 드는 GSAT 등은 사라지리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온라인 취업 사이트 ‘사람인’의 임민욱 팀장은 “경기불황이 이어지면서 그룹사가 신입사원을 대규모로 선발해 교육한 뒤 각 계열사에 배치하는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대두돼왔다. 이미 2013년 한화그룹이 그룹 차원의 인적성검사(HAT)를 없애고, LG그룹과 두산그룹도 부문별 채용을 확대하는 등 개별적 움직임이 시작된 상태다. 이번에 삼성마저 변화를 선택한 만큼 대졸 채용시장의 그룹별 공채 축소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청년층의 취업문을 더욱 좁힐 수 있다는 점이다. 임 팀장에 따르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은 그동안 ‘청년 취업난 해소를 위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다하고자 그룹 공채 시 필요 인력보다 더 많은 신입사원을 채용한 면이 있다. 그러나 계열사별로 채용 절차를 진행하면 자체적으로 인력 상황, 재정 여건 등 경영환경을 좀 더 고려하게 된다. 또 기업 규모가 작아지는 만큼 채용 인원에 대한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 느끼게 될 수 있다. 이는 곧 안정적 일자리의 축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계열사별 채용이 정착되면 그동안 그룹사 차원에서 운영해온 사회적 약자 배려 시스템도 사라질 개연성이 있다. 삼성은 2012년부터 ‘취업관문에서 차별받고 사회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을 배려하겠다는 취지로 그룹 채용 인원의 35%를 지방대 졸업자에게 배정해왔다. 대졸 신입 채용의 5%는 저소득층에 할당했다. 올 하반기 채용 때도 삼성 계열사들이 이 제도를 유지할지에 대해 현재 누구도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 취업컨설턴트의 분석이다.
“기업이 한창 성장할 때는 때 묻지 않은 신입사원을 뽑아 회사에 충성하는 인재로 기르는 게 좋은 인력운용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신입사원을 가르치고, 그가 역량을 길러 제몫을 해낼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되겠나. 대규모 채용으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경영환경에 적합한 인재를 뽑기 어렵다. 결국 기업들은 충성도보다 능력을 우선시하게 되고, 이 경우 신입사원보다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검증된 경력직 채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 삼성도 신입 공채를 금세 없애지는 않겠지만, 그 비중을 차츰 줄이고 경력직 수시채용을 확대해나갈 것이다.”
삼성은 현재 진행 중인 대졸 신입 공채의 선발인원을 정확히 밝히지 않은 상태다. 업계에서는 “상반기에는 예년과 비슷한 4000명 수준을 선발하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신입 채용자 수를 줄일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하다.
‘직무적합성’ 강조해야
그렇다면 채용환경이 급변하기 전 이번 공채에서 승부를 보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임민욱 ‘사람인’ 팀장은 직무역량과 통섭, 두 단어를 강조했다. 임 팀장에 따르면 삼성이 채용과정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특정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뽑는 것이다. 따라서 원서를 쓰기 전 어떤 분야에 지망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한 뒤 자기소개서를 쓸 때 본인의 전공, 경험, 특기 등을 총동원해 해당 지원 분야와의 적합성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면접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그와 동시에 해당 분야뿐 아니라 다른 업무에도 두루 지식이 있는 ‘통섭형 인재’라는 점을 보여줘야 해요. 삼성은 마케팅 담당자가 기술 분야 용어를 막힘없이 사용하고, 엔지니어가 영업 마인드를 갖기를 바랍니다. 삼성에 합격하려면 자신의 전문 분야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게 좋습니다.”
임 팀장의 조언이다.
박영진 ‘인크루트’ 과장은 “이번 공채에서 채용 인원의 절대 다수가 삼성전자에 배정될 것이라는 데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과장에 따르면 삼성은 현재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물산(상사·리조트·패션), 호텔신라, 제일기획, 에스원,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전자판매 등 15개 계열사 21개 부문에 모집 공고를 냈다. 하지만 약 4000명으로 전망되는 채용 인원을 이들 회사가 공평하게 나눠 갖는 건 아니다.
박 과장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문 업황 호조로 추가 인력이 필요한 삼성전자가 전체의 70%가량을 가져갈 것”이라고 전망하며 “그렇다면 나머지 계열사 중 일부는 모집 채용 인원이 100명에 미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계열사별 채용 규모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원자들이 경쟁률과 합격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원서를 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편 삼성은 4월 16일 마지막 GSAT를 치른 뒤 5월 중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