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초유의 ‘장미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7주.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불리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마무리되는 4월 초까지는 3주가 채 남지 않았다. 이 얘기는 곧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이자 차기 대권에 근접한 ‘문재인 캠프’(문 캠프) 혹은 이너서클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권에서는 ‘권력을 잡기 전에 사귄 친구와 집권 이후에 맺은 관계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이 법칙처럼 회자된다. 전자는 창업공신이자 동지(同志)적 관계지만, 후자는 갑을(甲乙)관계, 심하게는 군신관계로 뒤바뀌기 때문이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천하의 인재’ 제갈공명을 얻으려고 삼고초려한 상황과 현 풍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오래 갈무리해둔 큰 뜻을 펼치려는 인재들이 대선캠프에 들어가겠다고 승부수를 던져보는 이유다.
문 캠프는 ‘문전성시’+‘문전박대’
“탄핵 결정을 전후로 전국의 교수 사회가 한바탕 떠들썩했어요. 특히 문 캠프 자문단에 몸담은 교수들에게 이제라도 합류하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어요.”(영남권 B대학 교수)“현재로선 바늘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요.”(문 캠프 관계자)
지난해 4·16 총선 승리를 기점으로 ‘문재인 대세론’이 자리매김했다. 총선 직전 문재인(18%)-안철수(17%)-김무성(16%) 순으로 도토리 키 재기 하듯 촘촘하게 이어지던 차기 대선 구도가 순식간에 1위와 나머지로 나뉜 것이다. 이후 2위권과 지지율 격차를 10%p 이상 벌리며 반년 넘게 수위를 달려온 문 캠프의 전리품은 기호 1번 외에도 능력이 검증된 인재들이다. 실제 문 캠프는 국내외에서 모여든 인재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있다. ‘문전성시(文前成市)’라고도 할 만하다.
기존 야권성향의 인사는 물론, 폴리페서(polifessor)에 속하는 중도성향의 권력지향 교수들도 앞다퉈 자문단의 끄트머리에라도 이름을 올리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연스레 그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인물들에 대한 문전박대(門前薄待)도 다반사다. 국민의당과 인재 영입 전쟁을 벌이던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각 지방의 대표적인 네트워크 교수(명망가)들이 참여 인사의 명단을 늘리고자 후배나 지인에게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촛불정국이 본격화된 뒤에는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먼저 연락해와 싱크탱크 ‘국민성장’에 이름을 올리려고 바삐 움직인다는 것이 문 캠프 관계자의 전언이다.
실제 경제와 사회복지 등 6개 분과에서 교수 500명을 목표로 출범한 싱크탱크 ‘국민성장’은 최근 900명까지 늘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실제로는 1000명을 훌쩍 넘어섰다는 관측도 있을 정도로 대성황이다. 워낙 참여 인사 수가 많고 내부관계도 복잡해 핵심 관계자 외에는 정확히 누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지 모른다는 푸념도 나온다.
자문단 참여와 관련해 각종 민원에 시달리던 문 캠프 측은 인사적체의 난맥상을 풀기 위해 대학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2월 28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특별행사를 갖는 묘수까지 냈다. 전국에서 워낙 많은 교수가 제안서와 보고서를 들고 찾아오자 이들 교수와 문 후보의 ‘미팅’ 기회를 마련한 셈이다.
단체 만남에서 접수된 인재들의 정책제안서는 먼저 싱크탱크 핵심 인사들이 검증하고 토론을 거쳐 캠프와 당의 핵심부에 전달된다. 이를 도맡은 핵심 인물로 K, L, C 교수 등이 거론되지만 실제 이들이 얼마나 많은 권한을 갖고 후보와 직접 소통하는지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확실한 점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의 인재가 갖가지 제언을 담은 정책제안서를 들고 문 캠프 입성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 캠프가 지난 총선에서 얻은 교훈이 작지 않아 보입니다.”(민주당 관계자)
2015년 연말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에게 ‘인재영입위원장’을 제안하며 적절한 타협을 모색하던 문 후보. 그러나 안 전 대표가 탈당과 신당 창당으로 응수하자 직접 총대를 메고 인재 영입 일선에 나섰다. 이제는 ‘민주당 어벤저스’(만화 속 슈퍼영웅들)라 불리는 조응천, 김병기, 박주민 등의 영입은 성공적인 총선 전략으로 꼽힌다.
어벤저스, 문 캠프의 자산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최근 삼성 백혈병 피해자 비난 발언으로 논란이 된 양향자(50) 전 삼성전자 상무의 영입이었다. 그가 7번째로 영입된 지난해 1월 12일은 옛 민주당의 호남지역 의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만든 지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등장한 ‘고졸 출신 첫 삼성전자 여성 임원’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젊고 유능한 호남 출신의 여성이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문 전 대표의 존재감에 무게감을 더한 것이다. 말 그대로 인재 영입으로 다른 이슈를 막아서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시작된 문 전 대표의 새로운 피 수혈은 공천이 본격화된 3월까지 30명 넘게, 마치 가수들의 쇼케이스 무대처럼 이어졌고, 다음엔 누가 영입되는지가 관심거리였다. 총선 1년 전 당권을 잡은 문 전 대표는 경제와 안보, 문화, 스포츠 등 명망가를 중심으로 1000여 명의 리스트를 추려가며 직접 접촉에 나섰다는 후문. 명단에는 김연아, 차범근 같은 유명 스포츠인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청와대에서 쫓겨나 서울 마포에서 횟집을 운영하던 조응천 전 대통령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을 영입하려고 심야에 가게까지 찾아간 것은 유명한 일화다.
가장 결정적인 영입은 ‘경제민주화론’의 설계자라 할 수 있는 김종인을 야당 총선을 책임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신 결단이다. 만약 이 영입이 없었다면 박영선, 이종걸 등 수도권 비주류 의원의 탈당이 가속화됐을 공산이 크다. 당 관계자들의 평가처럼 당시 인재 영입이 없었다면 원내 1당이 되지 못했을 테고, 결과적으로 현재까지 이어진 ‘문재인 대세론’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재인 영입 인사들은 흥미로운 인생 스토리로 대중적인 화제를 모으지만, 정치 초보 인사라는 점, 그리고 특정 세력의 단체행동보다 개별 접촉을 통한 영입이라는 특징도 갖고 있다. 아무리 많이 영입한다 해도 문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전체적인 당 구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얘기.
올해 초 재개된 문 캠프의 2차 영입 전쟁은 ‘어벤저스’ 영입 때와 비교해 좀 더 정교하고 정치공학적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가용할 수 있는 인재풀이 훨씬 많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인재를 적시에 들인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연초부터 이어진 외교안보 분야 인재 영입이다. 지난해 1차 영입 때 호남권 인재에 초점을 맞춘 것이 국민의당 창당을 겨냥한 노림수였다면, 올해 초 이뤄진 인력 보강은 명확하게 ‘반기문 출마’와 ‘트럼프 취임’에 대응한 측면이 강했다.
1월 초에는 이태식 전 주미 대사와 장달중, 이호철 교수 등 중량감 있는 외교 전문가를 발탁한 데 이어, 2월 13일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되자 사흘 뒤인 16일 전직 외교관 24명을 중심으로 외교자문그룹 ‘국민 아그레망’을 발족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2일에는 육·해·공 장성 50여 명을 포함한 국방 전문가 180여 명을 주축으로 한 ‘더불어국방안보포럼’을 공개하는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 충분히 준비됐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주려고 했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자 유웅환 전 인텔 수석매니저를 영입하고, 시중에 4월 경제위기설이 유포되자 즉각 경제자문단을 중심으로 한 ‘비상경제대책단’ 회의를 개최하는 등 이슈를 인재로 막는 전략이 이어지고 있다.
영입 인사들의 반복된 ‘구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기득권들이 문 캠프에 모이고 있다. (중략) 한마디로 철학이 없어 보인다.”(3월 14일 이재명 성남시장)그러나 전례 없이 단기간에 많은 수의 외부 인사가 수혈되자 오히려 문 캠프와 친노(친노무현) 핵심 지지층이 당황하는 묘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일부 지지자 사이에서는 “인재(人材)가 인재(人災)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실무자 중심으로 단출하게 캠프를 꾸린 안희정 충남도지사 측은 “세몰이 방식의 인재 영입은 과거 정치를 답습하는 모양새”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가장 직접적인 비판은 당내 경쟁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도맡았다.
이 시장은 3월 3일 CBS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문 캠프 자문그룹 ‘10년의 힘’ 위원 60명 가운데 15명이 삼성 등 대기업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14일 KBS 민주당 대선주자 토론회에서는 정경진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논란이 된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을 막은 당사자이며, 진익철 전 서울 서초구청장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개인정보 유출 의혹과 관련 있는 인물이라고 공격했다. 일부 과장되고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일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정서를 대변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더 큰 문제는 영입 인사들이 부적절한 말과 행동으로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수전사령관 출신인 전인범 전 육군 중장 영입의 후폭풍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2월 4일 문 전 대표의 북콘서트 연사로 참여해 민주당 안보자문위원으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게다가 문 전 대표가 특전사 출신이라는 점도 이 둘의 시너지 효과를 높였다. 특히 전 전 사령관이 경기고-육사37기를 졸업한 정통 보수라는 점, 아버지가 대기업 사장이고 어머니는 대표적인 여성 외교관 홍숙자 박사라는 점이 화제를 모았다. 문 캠프 한 관계자는 “전 전 사령관이 우리 군에서 대표적인 미국 전문가였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언급할 정도로 주한미군 지휘부의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가족의 비리 의혹과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를 전두환이 지시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이 파문을 몰고 왔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은 인물임이 드러나자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결국 전역 직후 호기롭게 정치권에 발을 내디뎠지만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발을 빼고 말았다.
영입 인사의 정치적 이력과 설화에 대한 논란이 잦자 문 캠프의 대응도 달라졌다. 초기엔 감싸고 가는 기류였으나 최근엔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사드 배치 반대’ ‘김정남 암살 이해’ 발언이나 전 전 사령관의 ‘전두환’ 발언이 논란이 됐을 때만 해도 문 전 대표는 “그런 취지로 한 말씀이 아닐 것”이라며 일단 옹호하고 나섰다. 하지만 최근에는 양향자 의원의 “귀족노조” 발언으로 여론이 나빠지자 공개사과를 하고, 캠프 홍보부본부장인 손혜원 의원이 한 인터넷 방송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떠나실 때도 계산한 것”이라는 폭탄 발언을 하자 즉시 캠프에서 물러나게 했다. 문 전 대표는 이례적으로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어젯밤 신속하게 책임을 물었다”고 말했다.
여전히 문제는 ‘친노(親盧)’?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캠프와 차기 정부까지 함께할 생각인가요.”(3월 7일 채널A ‘외부자들’에서 정봉주 전 의원)“저는 거기에서 자유로워야 된다고 봅니다. 정권 교체 자체가 보람이어야 하고, 대선 이후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인사 영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문재인)
영입 인사의 실언과 실책이 계속되자 지지자들의 반발은 갈수록 문 전 대표를 향하고 있다. 한동안 30% 후반대를 달리던 지지율도 탄핵 이후 30% 초반대로 주저앉았다. 보수 색채를 띠는 정통파 인사들을 계속 영입하고 있지만, 의미 있는 세력 확장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오히려 논란이 확산되면서 지지율 정체를 보이고 있다.
과거 ‘3김 시대’에서나 볼 법한 ‘세몰이’식 인재 영입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도 1차 어벤저스 영입 때와는 달리 빠르게 식어가는 분위기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도덕적으로 흠결 있는 정치인을 싫어하는 편”이라면서 “그러다 보니 중도·보수성향의 영입 인사들이 당내 지지자들의 검증 공세를 받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적전 분열의 상황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논란과 관련해 문 캠프 측은 자문단 혹은 선거대책본부 활동과 향후 내각 구성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의견이다. 그럼에도 인재를 싹쓸이 하는 이유에 대해 한 캠프 관계자는 “5년 임기를 안정적으로 채우려면 내각을 최소 3번 회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참여정부 시절 좁은 인재풀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즉 당장 활용하지는 않더라도 A급 인재풀을 최대한 키워 향후 정권의 자산으로 삼겠다는 설명이다.
당 일각에서는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의 인재 영입과 활용 부분에서의 처절한 실패가 이 같은 전방위적인 인재 영입으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2012년 당시 민주당의 주류는 안철수 쪽 ‘진심캠프’와 후보단일화에 전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2002년 노무현-정몽준 때와 흡사하게 단일화가 이뤄지자 승리를 낙관해 외부 인사 영입에 무관심했고 심지어 홀대까지 했다는 것.
당시 문 캠프에서 일한 한 인사는 “캠프 관계자들끼리 장관과 청장 자리를 서로 점찍어두는 등 끼리끼리 인선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면서 “자연스레 뒤늦게 합류한 인사를 자신의 경쟁자로 보고 밀어내려는 알력이 극심했다”고 떠올렸다. 일부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분노해 영입 인사에게 과도한 편 가르기를 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그 결과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도 여당의 선거홍보 전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승기마저 놓쳤다는 뼈저린 반성을 했다는 해석이다.
논란에도 문 캠프의 인재 영입은 가속도가 붙고 있는 상황이다. 3월 15일 박근혜의 경제가정교사로 알려진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을 영입했고, 윤영찬 네이버 부사장은 SNS 대책본부장직을 맡았다.
정치권에선 결국 중요한 것은 당과 문 캠프의 의사결정 구조가 얼마나 열려 있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운영되는지에 달렸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사드 배치 논란이나 한일 간 위안부 협상 등 첨예한 갈등이 산적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적절한 타협이 아직은 검증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런 측면에서 여전히 ‘문재인 대세론’이 지속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언제든 위협 요소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