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특검팀)이 1월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횡령, 위증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은 기각됐지만 박근혜 정부로부터 경영승계에 도움을 받는 대가로 이 부회장 등 삼성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400억 원에 이르는 뇌물을 제공했다는 것이 특검 측 주장이다. 특검팀 공소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잘 챙기라”고 직접 지시했고, 국민연금공단은 이 지시에 따라 자문기구의 반대에도 국민연금기금을 이용했다. 많은 사람이 재벌이야말로 이번 국정농단의 한 축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해체하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삼성, LG, SK 등이 전경련 탈퇴를 선언했다.
‘포브스’가 꼽은 2016년 현재 한국 부자 1위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고, 2위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다. 4위는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회장, 5위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다. 이 중 온라인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의 권혁빈 회장을 제외한 4명은 모두 기업 창업자의 자손이다.
부의 상속이 한국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도 부친으로부터 거대한 부를 물려받았다.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18년 동안 소득세를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다. 미국 세제의 허점을 이용한 편법일 가능성이 큰데, 트럼프는 이를 자신의 명석함의 증거라고 강변했다. 증여와 상속으로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되면 편법으로 부를 증식하는 것이 세계의 공통된 현상인가.
세계 슈퍼리치 관련 자료를 수집해 정보를 제공하는 ‘Wealth-X’라는 비즈니스 서비스 회사가 있다. 이 회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자산 350억 원 이상 부자를 추출해 그들의 특징을 연구한 결과가 2016년 초 학술저널 ‘인텔리전스(Intelligence)’에 실렸다. 미국 듀크대 조너선 와이(Jonathan Wai) 교수와 Wealth-X의 데이비드 링컨(David Lincoln)이 공동으로 진행한 이 연구는 슈퍼리치의 교육 수준과 부의 원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연구 대상은 자산 가치와 기본적인 인구학적 정보가 있는 1만8245명으로, 여기에 이름을 올린 한국인은 51명이다. 이 자료를 보면 한국 슈퍼리치가 다른 나라 슈퍼리치와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높은 교육 수준이다. 자산 350억 원 이상의 한국 슈퍼리치 가운데 대학 교육을 받은 이는 88%에 달한다. 세계 평균인 70%보다 18%p 높다. 같은 항목에서 미국은 80%, 일본은 69%이다. 핀란드와 노르웨이는 각각 48%와 60%에 불과하다. 각 국가에서 순위 10위 이내 대학이나 인지능력 상위 1% 대학을 엘리트 교육으로 정의하고 슈퍼리치가 그 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은 비율을 따지면 한국은 엘리트 교육 출신자가 78%로 독보적으로 높다. 세계 평균은 32%, 미국은 34%이다. MBA 학위를 가진 한국 슈퍼리치도 29%로 세계 국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세계 평균은 16%이다. 미국은 21%, 이웃 나라 일본은 7.5%에 불과하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지만 노력해 자수성가했다는 성공 스토리는 이제 한국에서는 환상이다.
세계 슈퍼리치에서 남성의 비율은 1만6430명으로 90%, 여성은 1772명으로 10%이다. 여성 대비 남성 수가 9.3배 많다. 한국은 이 비율이 6.3배로 양호한 편이다. 한국 슈퍼리치의 14%가 여성이다. 스웨덴(23%)이나 독일(18%)보다 낮지만 미국(9%), 일본(7%)보다는 높다. 비교 대상이 된 모든 국가보다 남녀 소득불평등이 큰데 슈퍼리치의 남녀 불평등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자료를 기업 운영 면에서 한국이 성별 불평등이 낮은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자료가 다르긴 하지만 ‘포브스’가 꼽은 한국의 2016년 50대 부자를 보면 여성이 5명이다. 그중 자수성가형 부자는 한 명도 없다. 5명 모두 재벌가 딸이다.
한국 부자들이 자수성가형 부자가 아니라는 것은 자산 1조2000억 원(약 10억 달러) 이상인 ‘슈퍼리치 중 슈퍼리치’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2016년 초 발표된 피터슨 연구소(Peterson Institute)의 캐럴라인 프로인드(Caroline Freund)와 세라 올리버(Sarah Oliver)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에서 자산 10억 달러 이상 부자 중 30%가 이른바 ‘금수저’ 출신으로 증여나 상속으로 부자가 됐다. 창업으로 거부를 축적한 비율은 28%, 월가 등 금융 부문에 종사하며 자산 10억 달러 이상을 모은 비율은 21%이다. 그런데 한국은 상속이나 증여로 10억 달러 이상 부자가 된 비율이 74%에 달했다. 미국은 이 비율이 29%, 일본은 19%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슈퍼리치가 되기 어렵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재벌에 대한 형사처벌 시도가 있을 때마다 늘 그랬듯 국가 경제 손실과 경제활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슈퍼리치가 될 수 없는 사회에서 높은 기업가 정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가 세습되는 사회의 경제활력은 낮다. 60억 원을 증여받아 7조 원의 자산을 일군 것은 경제 활력을 높인 행위였던가.
많이 배우고 많이 상속 받은 한국 부자들
이 부회장의 별명은 한때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그가 2000년 자본금 400억여 원을 들여 설립한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이 별다른 사업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고 성공했다는 얘기는 그 후로도 듣지 못했다. 기업가는 대부분 이 정도로 사업에 실패하면 재기에 어려움을 겪지만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임원으로 별 어려움 없이 현 위치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꼽은 한국 부자 50인 중 3위다. 총재산이 7조 원에 달한다. 그는 1990년대 아버지로부터 60억 원을 증여받고 16억 원의 증여세를 낸 뒤 나머지 돈으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사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면서 재산 증식에 나섰다.
‘포브스’가 꼽은 2016년 현재 한국 부자 1위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고, 2위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다. 4위는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회장, 5위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다. 이 중 온라인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의 권혁빈 회장을 제외한 4명은 모두 기업 창업자의 자손이다.
부의 상속이 한국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도 부친으로부터 거대한 부를 물려받았다.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18년 동안 소득세를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다. 미국 세제의 허점을 이용한 편법일 가능성이 큰데, 트럼프는 이를 자신의 명석함의 증거라고 강변했다. 증여와 상속으로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되면 편법으로 부를 증식하는 것이 세계의 공통된 현상인가.
세계 슈퍼리치 관련 자료를 수집해 정보를 제공하는 ‘Wealth-X’라는 비즈니스 서비스 회사가 있다. 이 회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자산 350억 원 이상 부자를 추출해 그들의 특징을 연구한 결과가 2016년 초 학술저널 ‘인텔리전스(Intelligence)’에 실렸다. 미국 듀크대 조너선 와이(Jonathan Wai) 교수와 Wealth-X의 데이비드 링컨(David Lincoln)이 공동으로 진행한 이 연구는 슈퍼리치의 교육 수준과 부의 원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연구 대상은 자산 가치와 기본적인 인구학적 정보가 있는 1만8245명으로, 여기에 이름을 올린 한국인은 51명이다. 이 자료를 보면 한국 슈퍼리치가 다른 나라 슈퍼리치와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높은 교육 수준이다. 자산 350억 원 이상의 한국 슈퍼리치 가운데 대학 교육을 받은 이는 88%에 달한다. 세계 평균인 70%보다 18%p 높다. 같은 항목에서 미국은 80%, 일본은 69%이다. 핀란드와 노르웨이는 각각 48%와 60%에 불과하다. 각 국가에서 순위 10위 이내 대학이나 인지능력 상위 1% 대학을 엘리트 교육으로 정의하고 슈퍼리치가 그 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은 비율을 따지면 한국은 엘리트 교육 출신자가 78%로 독보적으로 높다. 세계 평균은 32%, 미국은 34%이다. MBA 학위를 가진 한국 슈퍼리치도 29%로 세계 국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세계 평균은 16%이다. 미국은 21%, 이웃 나라 일본은 7.5%에 불과하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지만 노력해 자수성가했다는 성공 스토리는 이제 한국에서는 환상이다.
세계 슈퍼리치에서 남성의 비율은 1만6430명으로 90%, 여성은 1772명으로 10%이다. 여성 대비 남성 수가 9.3배 많다. 한국은 이 비율이 6.3배로 양호한 편이다. 한국 슈퍼리치의 14%가 여성이다. 스웨덴(23%)이나 독일(18%)보다 낮지만 미국(9%), 일본(7%)보다는 높다. 비교 대상이 된 모든 국가보다 남녀 소득불평등이 큰데 슈퍼리치의 남녀 불평등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자료를 기업 운영 면에서 한국이 성별 불평등이 낮은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자료가 다르긴 하지만 ‘포브스’가 꼽은 한국의 2016년 50대 부자를 보면 여성이 5명이다. 그중 자수성가형 부자는 한 명도 없다. 5명 모두 재벌가 딸이다.
‘슈퍼리치 중 슈퍼리치’의 민낯
조너선 와이와 데이비드 링컨은 앞선 연구에서 슈퍼리치의 자산 형성 과정을 자수성가, 상속, 상속을 통한 부 증가 등 3가지로 나눴다. 한국은 자수성가 비율이 33%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세계 평균은 66%이다. 한국에서는 자산 350억 원 이상 슈퍼리치 3명 중 1명만 자수성가형이지만, 다른 나라는 3명 중 2명이 자수성가형 부자인 셈이다. 특히 미국은 그 비율이 75%에 달하고, 일본은 57%이다. 한국 슈퍼리치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부를 창출한 것이 아니라, 상속과 증여로 부자가 된 것이다.한국 부자들이 자수성가형 부자가 아니라는 것은 자산 1조2000억 원(약 10억 달러) 이상인 ‘슈퍼리치 중 슈퍼리치’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2016년 초 발표된 피터슨 연구소(Peterson Institute)의 캐럴라인 프로인드(Caroline Freund)와 세라 올리버(Sarah Oliver)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에서 자산 10억 달러 이상 부자 중 30%가 이른바 ‘금수저’ 출신으로 증여나 상속으로 부자가 됐다. 창업으로 거부를 축적한 비율은 28%, 월가 등 금융 부문에 종사하며 자산 10억 달러 이상을 모은 비율은 21%이다. 그런데 한국은 상속이나 증여로 10억 달러 이상 부자가 된 비율이 74%에 달했다. 미국은 이 비율이 29%, 일본은 19%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슈퍼리치가 되기 어렵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재벌에 대한 형사처벌 시도가 있을 때마다 늘 그랬듯 국가 경제 손실과 경제활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슈퍼리치가 될 수 없는 사회에서 높은 기업가 정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가 세습되는 사회의 경제활력은 낮다. 60억 원을 증여받아 7조 원의 자산을 일군 것은 경제 활력을 높인 행위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