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설. 가족이 함께 차례를 지낸 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주제가 재산 상속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워낙 민감한 주제이다 보니 대화하다 보면 다툼이 생기고, 그게 화근이 돼 법적 쟁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상속 문제 때문에 형제자매끼리 칼부림을 해 살인까지 이른 적도 있다. 집안뿐 아니라 종중(宗中) 재산의 상속을 두고도 다툼이 잦다.
영화나 TV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을 보면 망자(亡者)의 재산 상속과 관련된 유언을 두고 심각하게 다투곤 하는데, 실제 우리나라 일반인은 재산 처분을 유언으로 정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오히려 법정 상속 비율에 따라 재산 상속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행 민법에 따르면 자녀의 상속 비율은 모두 같고, 배우자만 그보다 50%가 더 많다.
구한말까지 우리의 상속 관습은 현행 민법처럼 동일한 호적에 있는 자녀들이 똑같이 재산을 나눠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은 자국의 호주제와 그에 따른 상속제를 조선에 강제로 이식했다. 호적상 호주가 전 재산을 단독 상속하는 내용의 구(舊)민법이 바로 그것이다. 구민법 체제에선 계모자(繼母子·새어머니와 자녀)나 적모서자(嫡母庶子·어머니와 혼외자녀) 관계도 상속이 가능했지만, 1991년 민법 개정으로 상속되지 않는 관계로 바뀌었다(1990년 1월 13일, 법률 제4199호). 현 재의 자식 균분상속제 또한 수차례의 구민법 개정을 통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행 민법에서 배우자는 법률상 혼인한 상대방을 말하므로 사실혼의 경우 상속권이 없다. 독립해 가정을 이뤄 생활했다면 임대차보증금만 승계가 가능할 뿐이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9조). 혼인신고를 하면 배우자가 되므로 하루만 같이 살았다 해도 동일한 법정 상속분을 갖는다. 늙어 재혼한 거부(巨富)는 자식들 눈치 보느라 혼인신고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유언장을 만들어 재산 정리를 미리 해두는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언은 언제든 변경하거나 철회가 가능해 완전한 대비가 될 수는 없다.
자녀들은 어느 경우나 균등하게 상속받는는다. 업둥이거나 미국 시민권자라도 관계없다. 양자도 친생자와 동일하게 상속받는다. 거대 규모의 상속이 예상될 경우 파양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양자는 친생부모와 양부모 모두로부터 상속받는다. 유언으로 특정 자녀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할 수 있지만, 자녀들에게는 유류분 청구제도가 있어 상속분의 절반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근래 많이 인정되는 것은 기여분제도다. 부모를 모시면서 상당 기간 병간호를 했거나 가족사업을 오랫동안 같이 운영했다면 기여분 금액이 상당히 클 수 있으므로 재산 분할 전 꼭 살펴봐야 한다.
상속 재산에서 이러한 기여분을 먼저 산정하고 나머지를 비율에 따라 상속하게 되므로 금액 인정에 별다른 제한이 없다. 상속은 대를 잇는 절차가 재산에서 이뤄지는 행위이므로 무엇보다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망자의 뜻이다. 법정 비율의 상속분은 그다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