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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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2016 겨울 대한민국, 뭣이 중헌디?

가습기살균제 기업 영혼 없는 사죄로 끝?

옥시, 최순실 게이트 틈타 유가족 배상 절차 유리하게 이끌어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12-06 09: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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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기를 든 줄 알았다. 10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형사재판에서 옥시 한국법인장 아타울라시드 사프달 대표는 법정에 출석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배상 절차를 공개했다. 또 11월 3일에는 옥시가 출시한 제품의 성분을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옥시 홈페이지에는 대표의 사과문과 함께 배상 절차를 안내하는 페이지가 따로 있다. 출시 제품의 성분도 정확히 공개됐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옥시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모든 국민의 관심이 쏠린 틈을 타 배상 절차를 유리하게 이끌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개된 배상 절차를 진행할 때 피해자들이 옥시 측과 개별적으로 합의해야 하는데, 이때 개인이 글로벌 거대 기업에 맞서야 하는 형국이라는 것. 피해자 단체는 옥시가 소비자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조사위원회가 해산하고 소비자의 불매운동도 시들해지자 배상에 임하는 태도도 달라졌다고 보고 있다.



    5년간 싸움의 끝

    정부가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을 처음 확인한 것은 2011년 11월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역학조사와 동물흡입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이 제조·유통하는 6가지 가습기살균제에서 위해성이 발견됐다며 수거 및 판매 중단 명령을 내렸다. 2012년 2월에는 질본이 직접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이 폐섬유종을 유발한다고 발표했다. 소비자 건강에 큰 위험을 줄 수 있는 제품을 판매했지만 가습기살균제 제조·유통사가 받은 처벌은 가벼웠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 8월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세퓨 등 4개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에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과징금 5200만 원을 부과한 것이 이들이 받은 처벌의 전부였다.

    답답해진 유족들이 직접 나섰다. 2012년 8월 유족 8명이 옥시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유통사 10곳을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2013년 2월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피해조사 결과가 나와야 조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소중지를 결정했다. 피해조사는 2014년 2월, 2015년 4월과 12월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으며 총 1282건의 피해가 접수됐다. 올해 1월에 이르러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고 가습기살균제 관련 기업에 대한 조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검찰 조사 시작과 함께 소비자는 가습기살균제 판매량 1위던 옥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였다. 7월 6일에는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조사위원회까지 출범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옥시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4월 21일부터 10월 25일 재판까지 옥시는 공식 사과문과 그룹 최고경영자(CEO)의 사과 등 수차례 사죄의 뜻을 표명했다. 이와 동시에 5월 20일부터 6월 26일까지 옥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직접 만나 배상 방안을 논의해 7월 31일 ‘성인이 사망했을 경우 최대 3억5000만 원, 영·유아의 경우 일실수입을 계산하기 쉽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배상금을 총액 기준 10억 원으로 책정했다’고 배상 계획을 발표했다.

    연이은 사과와 대화 배상 기준을 마련했으니 사건이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나 유가족의 억울함은 풀리지 않았다. 옥시가 발표한 배상액이 법원에서 논의되던 배상액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 대법원은 7월 15일 열린 ‘전국민사법관포럼’에서 기업의 위법행위로 시민 생명이 위협받는 경우 현재 1억 원 안팎인 사망 위자료를 2억~3억 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올가을까지 확정하기로 했다. 특히 옥시처럼 기업의 위법행위에 고의나 중과실이 인정되고 아동이 피해자일 경우, 또는 장기간 후유증에 시달릴 것으로 보일 경우에는 기준 금액에서 1.5~2.5배를 가산하고 여기에 50%를 추가로 증액할 수 있게 했다. 이 내용을 감안하면 가습기살균제 관련 사망 위자료는 최소 4억5000만 원에서 최대 11억2500만 원 선이다.  

    이창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옥시가 적극적으로 배상에 나선 이유는 불매운동 등의 여론을 잠재움과 동시에 형사재판에서 책임을 감면받기 위해서”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피해자는 옥시와 법적 합의를 거쳐 배상금을 받는데, 합의가 되면 합의한 피해자에 한해 옥시의 민형사상 책임이 모두 면제된다. 옥시가 배상하는 데 힘쓴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여론을 달래면서 법원이 배상금을 높게 책정하기 전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 전원 보상도 아니다

    옥시의 배상안에는 다른 문제도 있다. 현재 옥시 홈페이지에 게재된 ‘가습기살균제 배상안’에 따르면 올해 환경부의 가습기살균제 1, 2차 피해조사에서 피해를 인정받은 피해자만 배상 대상이 된다. 4월 22일 4차 피해조사가 시작됐고 8월 18일에는 3차 피해조사가 완료됐지만 3, 4차 피해조사로 확인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배상금을 받을 수 없다.

    가습기살균제의 피해 등급은 폐섬유화 진행도와 후유증 정도에 따라 1~4등급으로 나뉜다. 옥시의 배상 기준에 따르면 1, 2등급 판정을 받은 피해자만 배상 대상이 된다.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겼더라도 폐에 문제가 없는 경우와 영수증이나 관련 자료가 부족한 경우 3, 4등급 판정을 받게 되는데, 이들 역시 옥시의 배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10월 17일 가습기살균제 국정감사 특별조사위원회가 큰 성과 없이 해산됐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자 옥시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얘기하는 피해자가 일부 있다. 실제로 법정 싸움이 장기화하고 여론이 수그러들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배상에 임하는 피해자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옥시가 지속적으로 사과하고 배상 절차 발표가 자주 보도되면서 피해자 배상이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3차 피해조사에서만 피해자 35명이 추가 발견됐고 현재 4차 피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보상 계획이 없을뿐더러 3, 4차 등급을 받은 피해자 중에서도 사망자가 있지만 이에 대한 배상 계획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옥시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와 관계없이 배상 절차는 당초 유가족 측과 협의한 내용대로 성실하게 진행 중”이라며 “3, 4차 피해조사로 확인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관련해서는 따로 배상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법적 사망 위자료가 적다는 논란에 관해서는 “법원의 배상금 관련 대책이 배상안을 만들 당시 법제화돼 있지 않아 배상안에 반영하기 어려웠다. 추후 관련 내용이 확실히 법제화된다면 배상안도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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