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 국민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허탈과 분노로 혼란에 빠져 있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사건이 모든 국사(國事)를 일거에 정지시켰고, 헌법 질서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임무를 주권자인 국민 전체에게 던져줬다. 최순실 게이트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국정운영과 관련한 대통령의 일탈행위로, 크게는 정치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 게이트의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 작업을 하고 있지만 국민 시선은 검찰에 고정돼 있다. 게이트 관련자들에게 합당한 형사책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안을 검찰이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조차 없거니와 정치적 일탈행위를 모두 범죄행위로 처벌할 수도 없다. 가뜩이나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검찰에게 너무나 큰 부하가 걸린 셈. 검찰이 느닷없이 귀국한 최순실 씨를 긴급체포하지 못한 것은 48시간으로 한정된 체포시한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앞으로 밝혀야 할 의혹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 검찰로서는 국민의 시선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검찰은 먼저 재벌 기업의 돈이 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재단으로 이전된 사실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의 구속영장에 따르면 안 수석의 범죄 혐의는 직권남용이고 최씨는 공범으로 돼 있다. 여기서 기업으로 하여금 사단법인 미르에 돈을 건네게 한 안 전 수석의 행위에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가 논란이다. 하지만 이는 범죄행위의 동기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대통령비서실 수석이 기업들에게 사단법인 미르에 돈을 이전하게 할 리는 없다. 직권남용죄가 적용되는 것은 흔한 일도 아니거니와 공무원이 직책을 과신해 무리하게 공권력을 행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는 데 돈 문제가 결부됐다면 부정한 이권이 개입했다고 보고 좀 더 큰 그림을 그려 뇌물죄로 바라보는 게 정상이다. 안 전 수석의 기부금 강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기업들이 돈을 뜯긴 것으로 해석한다면 기부를 강요한 행위는 오히려 공무원 직무와 관련이 없다. 차라리 강도죄나 공갈죄를 적용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판례를 보더라도 비록 뇌물을 받은 주체가 일반인이라 해도 사회통념상 공무원이 직접 받은 것처럼 평가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됐다면 일반 뇌물죄가 성립한다. 사단법인 미르의 운영권이 사실상 최씨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설령 사단법인 미르가 주인 없는 재단이라 해도 공무원인 안 전 수석의 개입 행위는 ‘제3자 뇌물제공죄’가 성립하고, 더 나아가 박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면 박 대통령에게도 같은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최씨는 제3자 뇌물수수죄, 기업들은 뇌물공여죄가 성립할 수 있다. 단 제3자 뇌물제공죄 등이 성립하려면 부정한 청탁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사건이다. 검찰 책무는 그중 형벌권을 행사할 부분을 정확히 밝혀내는 데 한정된다. 나머지 더 큰 책무는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주권자인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국민은 이 사건을 거울삼아 더 큰 민주주의 틀을 만들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