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대선)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는 전 세계 국가 대부분에서 바라지 않던 시나리오다. 하지만 설마 하던 일이 현실이 되자 각종 경제지표가 급변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시대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다.
대선 기간 내내 트럼프의 당선이 세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란 예측이 대세였다. 먼저 거시적으로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경기후퇴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의 세금인하정책은 재정적자 확대로 이어지고, 보수적인 이민정책은 노동력 감소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고관세정책으로 기업의 노동비용과 생산비용이 증가할 것이며, 정부 재정적자는 기준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주식시장 침체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금리는 12월 0.25~0.5%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며, 단계적 금리인상이 이어질 것이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에 따르면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거시경제 수치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때와 비교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더욱이 트럼프가 선거유세 기간 중 내세운 공약이 그대로 실현될 경우 트럼프의 임기 중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0.6% 증가하고, 고용은 연평균 0.1% 감소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금리는 최고 6.3%까지 오를 수 있다. 만약 트럼프가 의회와 타협해 정책을 수정한다 해도 임기 중 실질 GDP 증가율은 연평균 1.5%, 고용 증가율은 연평균 0.6%, 금리는 4.0% 상승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어찌됐든 두 경우 모두 오바마 정부의 정책 기조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보다 낮은 수치다(그래프 참조).
구호만 있고 내용은 빈약한 경제기조
무엇보다 트럼프가 보여주는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향후 미국 및 세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문제는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구호만 있고 내용은 빈약해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점이다. 선거유세 기간 중 보여준 트럼프의 경제 관련 발언은 매우 간단하고 직관적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경제운용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청사진이나 실천 계획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당선 이후 트럼프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
트럼프가 제시한 주요 경제정책에도 예측 불가능성은 존재한다. 먼저 트럼프는 조세정책 측면에서 고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소득계층의 일률적인 세율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조세를 낮춰 국내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의도로 읽히나, 재정적자가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현 시점에서 세율인하가 과연 지속가능할지 의문이다. 재정적자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율인하를 할 경우 경제성장률이 떨어져 수요 창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부분에 대해 트럼프는 어떤 발언도 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통상정책은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고립주의 등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트럼프는 선거유세 기간 내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포함한 모든 FTA를 재검토 혹은 철회할 것을 시사했고,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 시정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제조업과 관련해서는 통상정책과 연계해 국내 산업 보호를 내세우고 있으며, 이를 위해 고관세를 부과하는 등 국내 제조업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강력한 제재수단을 가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밖에도 인프라 투자 확대와 규제 완화를 통한 화석연료산업 지원 및 클린에너지정책 철폐 등 에너지 관련 정책을 들 수 있다. 인프라 투자 확대는 한국 기업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어 관심이 가지만, 트럼프는 선거유세 기간 내내 어떤 인프라를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또한 클린에너지정책의 파기와 파리협약 등의 거부가 가져올 파장 등과 관련해서도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어 보인다.
이런 불확실성이 집권 후에도 계속된다면 트럼프의 경제운용은 세계경제에 전방위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디스의 예측대로 미국 경제성장률과 국내 수요 감소, 보호무역 기조로 인한 무역량 감소로 연결될 것이다. 이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현재 전 세계인의 이목은 FTA 철회 여부에 집중돼 있다. 최소한 취임 초기에는 당초 공약대로 FTA 및 TPP 재검토나 재협상 내지는 철회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또한 보호무역 강화에 대한 신호로 의회의 동의가 필요 없는 무역구제 조치를 남용하는 등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무시하는 조치로 통상마찰을 일으킬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미 FTA, 안보문제와 엮일 수도
다만 TPP 철회에 따른 발효 지연은 일본과 경쟁관계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우리나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세계 무역 규모를 축소해 한국의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트럼프는 한미 FTA 철회 및 전면 재검토 카드를 꺼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정치체제는 대통령 개인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한미 FTA 철회 같은 중대 사안을 대통령 혼자 결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욱이 FTA는 미국 신뢰도와 연결되는 문제인 만큼 제아무리 트럼프라 해도 의회를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철회를 결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철회까지는 아니어도 재협상을 유도하기 위한 위협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은 꽤 있다. 한미 FTA 재협상을 안보문제와 엮어 주한미군 감축이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빌미로 우리를 한미 FTA 협상 테이블로 이끌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부분은 철강·화학·백색가전 등에 대한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다. 이외에 미국은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과 결부된 첨단기술 제품도 더 강하게 견제할 것이다. 그간 미국이 불만족스럽게 여기던 의약품 및 의료서비스와 관련해서는 개방 압력이 강화되고, 자동차산업은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가 세계 흐름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으며, 우리 정책이 미국과 같은 거대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개연성도 낮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보호무역 공세를 최대한 피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분명히 존재한다. 먼저 신중한 환율정책이다. 현재 트럼프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가 대미(對美) 무역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환율을 조작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수출 증대를 위해 섣불리 환율정책을 펼 경우 미국은 이를 곧 불공정무역을 위한 환율조작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환율정책에 신중을 기하는 차원에서라도 급하게 원-달러 환율을 올려서는 안 된다. 한편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과 관련해 각 기업이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업은 미국 기업과 연계해 한미 FTA는 우리뿐 아니라 미국 기업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미 FTA 철회 움직임을 견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