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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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독이 든 사과 ‘안보 이슈’ 먹을까 뱉을까 여야 저울질

북핵과 사드 배치로 대북정책 전환 불가피…야당의 ‘전략적 모호성’ 언제까지 먹힐까

  •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ddm21@daum.net

    입력2016-10-14 17: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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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L기 폭파범 김현희, 김포국제공항 도착 TV 생중계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대선) 투표일을 10여 일 앞둔 11월 29일. 미얀마 상공에서 KAL858기가 폭발해 승객 115명이 전원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의 테러범으로 지목된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대선을 하루 앞둔 12월 15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압송됐고, 이 모습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그리고 그다음 날 대선에서 민주정의당(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했다. 민정당이 대선 전 김현희를 국내에 들어오게 했고 실제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16년 만에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고 군사정권에 염증을 느끼는 분위기가 팽배한 속에서 노 후보가 야당 김영삼, 김대중 후보에게 확실한 우세를 점하지 못하던 상황을 일거에 뒤집은 것이다.

    #2 20대 총선, 뒤바뀐 여야

    2016년 20대 총선 무렵 서울 여의도 정가. “개성공단 가동 중단 문제나 북한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문제를 이번 총선에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놀랍게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당 의원들에게 한 말이다. 북풍 자제령을 내린 것이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무조건 반대할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답을 요구하고 설명할 시간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총선 전 최고위원회에서 한 말이다.

    과거와 달리 안보 이슈에 대해 여야가 뒤바뀐 태도를 보인 것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광명성 4호 발사로 20대 총선을 앞두고 남북관계는 한마디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각 당은 안보 이슈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했다. 총선 결과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122 대 178로 참패했다.



    #3 북한의 5차 핵실험에 국민은 불안 넘어 분노

    9월 1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 발표에 따르면 여론조사 응답자는 대부분 ‘북한 핵무기는 위협적’(81.2%)이라고 답했다. 이는 1월 6일 4차 핵실험 때보다 17.3%p 높아진 수치다. ‘매우 위협적’(53.5%)이라는 응답도 절반이 넘었다. 특히 보수 및 중도성향 응답자 중 80% 이상, 진보성향 응답자도 70%가 ‘북한 핵무기는 위협적’이라고 답했다. 무엇보다 자체 핵무장론은 ‘찬성’ 65.1%, ‘반대’ 29.3%였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는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62.4%,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31.9%로 나타났다. 다른 안보 이슈에 비해 북한 핵은 국민의 위협과 불안에 비례해 대북강경책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

    대선을 1년여 앞둔 현재 북한은 또다시 5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국제사회는 세컨더리 보이콧 검토를 비롯해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여와 야,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고 본질적으로는 대북정책의 근본 방향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각 정당의 대표와 대선주자는 앞다퉈 북핵 및 사드에 대한 견해를 발표하고 군부대로 달려가는 ‘안보 정치’를 펼치고 있다. 남북 분단과 군사적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우리나라 역대 선거에서는 북한과 관련한 안보 이슈가 영향을 미쳐왔다. 내년 대선에서도 안보 이슈가 결정적 변수가 될까, 아니면 지난 총선처럼 무풍에 그칠까. 여당은 지난 총선처럼 다가오는 2017년 대선에서도 북풍 자제령을, 야당은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할 수 있을까.



    선거를 삼킨 안보 이슈

    1987년 13대 대선을 10여 일 앞둔 11월 29일 발생한 KAL858기 폭발이 북한 공작원에 의한 테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당인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다. 5년 후 92년 14대 대선에서도 민주자유당(민자당) 김영삼 후보, 민주당 김대중 후보, 국민당 정주영 후보 등 3명이 ‘3파전’을 벌이는 와중에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대선을 2개월 앞두고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을 발표했다. 김대중 후보의 측근이 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됐고, 결국 김영삼 후보는 김대중 후보를 여유 있게 누르며 승리했다. 96년 15대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 판문점에서 북한군 무력시위가 벌어졌다. 이후 치른 선거에서 임기 말 극심한 레임덕에도 여당인 신한국당은 과반 득표에 실패했지만 139석을 얻으며 선전했다. 역대 선거에서 안보 이슈가 결정적 변수가 된 사례들이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정부는 대북 쌀지원을 깜짝 단행했으나 여당인 민자당은 광역단체장 15곳 중 5곳에서만 승리했다. 2000년 김대중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전격 발표했지만 16대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당은 96석을 얻어 참패했고, 한나라당은 112석으로 제1당이 됐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졌으나, 12월 대선에서는 여당인 열린우리당 정동영 후보가 참패하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압승했다. 남북한을 긴장케 한 안보 이슈는 보수 정당에 유리한 결과를 낳은 반면, 대북 유화책은 선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997년 15대 대선을 4개월 앞두고 오익제 전 한국천도교 교령이 월북했다. 오씨는 평양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대선 승리를 기원한다는 편지를 보내고, 선거 직전 북한 방송에 출연해 김 후보의 통일 방안이 북한 고려연방제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여당의 ‘색깔론’ 공세가 거셌음에도 야당 김 후보가 여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꺾었다. 2002년 16대 대선 무렵에는 6월 서해교전, 10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계획 인정 등으로 남북 간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결과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치른 6·2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안보 이슈를 전면에 내세웠으나 참패했다.



    일상화된 안보 인플레이션

    박근혜 정부는 먹고사는 문제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부동산 등 일부 문제에서는 되레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따라서 민생 문제를 놓고 정치적 의제가 형성되는 건 국정을 책임지는 여권에 불리하다. 국면 전환이 절실하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조성된 안보 국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보수진영의 핵심 어젠다인 대북강경론을 꺼내 들었다. 햇볕정책을 비판하면서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조기에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등 안보 이슈에서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상호체제 존중, 내정불간섭, 비방·중상 금지, 파괴전복 활동 금지’를 약속한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중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탈북 권유 등 거침없는 안보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대북강경은 애국이고 햇볕정책은 종북이라는 이분법은 자연스레 보수층을 결집시킨다. 그러나 안보 이슈도 너무 자주 쓰면 내성이 생겨 약효가 떨어진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7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유·무선전화 임의걸기방식(RDD) 혼합조사설계, 응답률 2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는 6월 7일부터 9일까지 조사한 결과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6월 여론조사에서 26%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는데, 7월에는 1%p 오른 27%로 여전히 1위를 지켰다.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6월과 7월 16%로 똑같았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6월에는 10%였고, 7월에는 11%로 역시 1%p 오르는 데 그쳤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더민주 손학규 전 상임고문,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김무성 전 대표 등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대선을 앞둔 시기 주요한 안보 이슈는 북한의 추가 핵실험 등 도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차기 정부의 대책일 것이다. 특히 사드 배치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당장 사드는 내년 연말까지 경북 성주에 배치 완료될 예정이다. 사드 배치는 묘하게도 내년 12월 대선과 겹친다. 사드 배치라는 안보 이슈가 대선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부동층에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선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인 여야의 고정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지만, 국민은 북핵 위기라는 안보 이슈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후보 선택에는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열정적인 보수 및 진보 지지층에게는 다른 문제다.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은 주로 대북정책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다.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 정착을 바라보는 원인 및 해법을 두고 대북강경론과 햇볕정책만큼이나 골이 깊다. 그래서 사드 배치는 중요한 문제다. 더욱이 북핵 해법으로 사드 배치나 핵무장론 같은 강경 대응이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진보진영의 해법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

    사드 배치와 안보 이슈에 대한 각 당 및 대선주자의 태도가 대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먼저 여권의 반기문 총장에게 사드 배치가 호재일 수 있다. 외교적 갈등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만큼 적극적으로 이슈화할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부터 안보 이슈의 볼륨을 키우는 리모컨은 야권에게 넘어간 듯하다. 새누리당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하자 2012년 대선 때는 반(反)복지에서 친(親)복지로 노선을 전환했다.

    이에 맞서 야권은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을 누가 잘 실현할지 우열경쟁을 하기보다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선명야당으로서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및 복지와 차별화하기 위해 유신과 인민혁명당 사건 같은 과거사를 이슈화했다. 이는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의 북방한계선(NLL) 이슈를 재빠르게 들고 나오게 만들었다. 이념과 안보 이슈를 확대한 것은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었다. 결국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48%라는 마의 고지에서 박근혜 후보를 넘어서지 못했다.

    최근 문 전 대표는 사드 배치를 ‘재검토’하자고 한다. 문 전 대표 측은 “배치는 기정사실로 하되 시기와 과정을 재검토하자는 뜻”이라고 했다. 지난 대선 당시 NLL이나 종북 프레임 문제로 문 전 대표에게는 국가 안보를 맡길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래서일까. 사드 배치와 관련해 ‘재검토’라는 김종인 전 대표의 전략적 모호성을 수용하는 듯하다. 사드 배치에 단호하게 반대함으로써 배치에 찬성하는 보수와 대립해 안보 이슈로 크게 쟁점화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큰 변수는 더민주 내부의 강경한 사드 반대 움직임, 그리고 민생과 복지보다 정치와 이념 문제로 야당의 선명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그룹의 움직임이다. 하지만 이미 국민은 안보를 중시하지만 이를 차기 대통령을 선택하는 결정적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음이 확인됐다. 야권은 여권의 안보 이슈에 대해 정면대결을 선택할까. 안보 이슈를 대선 쟁점으로 만드는 것도, 자신의 어젠다를 새롭게 세팅하는 것도 이제 야권에게 공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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