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 공화당원이다.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임을 대내외에 표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진정한 보수란 이런 것이겠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삶과 운명, 사랑과 미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및 포용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올해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설리)도 그런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설리’는 2009년 미국에서 일어난 한 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다. 비행기 추락사고다. 비행기 추락은 우리에게 전멸이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로 여겨진다. 몇 해 전 대만 도심에 추락한 비행기 사고 때도 그렇지 않았나. 이건 재앙과 재난에 대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설리’는 생존 이야기자 생존 이후 이야기고,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다.
2009년 1월 비행기가 추락했고 허드슨 강에 불시착했다. 중요한 것은 탑승객 155명이 전원 생존했다는 사실이다. 부상자 몇 명을 제외하고 어린이를 비롯해 노인까지 모든 사람이 살아남았다. 추락한 지 24분 만에 구조 선박 수백 척과 헬기가 도착했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사람들을 살려냈다. 수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진 허드슨 강 위에 불시착한 사람들, 심지어 허드슨 강에 뛰어든 사람까지 모두 살아남은 것이다. 영화는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제목 ‘설리’는 이 비행기를 운항한 체슬리 설런버거 기장(톰 행크스 분)의 애칭이다.
그런데 정작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이야기는 그 후, 155명을 살려 영웅으로 칭송받은 설리가 청문회에서 가혹한 질의응답을 받는 내용이다. 고가 비행기가 강에 빠졌고, 기장은 사람 목숨뿐 아니라 거액의 회사 자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직원이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회사 측은 근처 공항으로 안전하게 회항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여주며 설리를 압박한다. 비행기를 구할 수 있었는데, 당신의 멋진 에어쇼를 위해 허드슨 강에 처박은 것 아니냐고 힐난하는 것이다.
청문회의 압박 속에서 설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의 판단이 옳았던 것일까.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까’라고. 하지만 영화의 대답, 그리고 설리의 대답은 하나로 응축된다. 155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비행기가 사물이라서 포기할 수 있었다면 155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기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했다는 것. 그러니 사람이 살아남았다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메시지 말이다.
우리는 종종 숫자로 표기된 것 뒤로 돈의 단위를 보곤 한다. 155 뒤에 자연스럽게 ‘명’이 아니라 ‘만 원’이나 ‘달러’ 같은 단위를 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보수란 이런 것 아닐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중심 가치가 있어 그것을 지켜야 마땅하다면 그것을 밝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말이다.
이스트우드는 정말이지 멋진 노인이고, 존경할 만한 선배이며, 그럴 듯한 친구다. 걸작이 아닐지라도 그의 영화를 보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에 대한 영화.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바로 사람에 대한 영화다.
‘설리’는 2009년 미국에서 일어난 한 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다. 비행기 추락사고다. 비행기 추락은 우리에게 전멸이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로 여겨진다. 몇 해 전 대만 도심에 추락한 비행기 사고 때도 그렇지 않았나. 이건 재앙과 재난에 대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설리’는 생존 이야기자 생존 이후 이야기고,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다.
2009년 1월 비행기가 추락했고 허드슨 강에 불시착했다. 중요한 것은 탑승객 155명이 전원 생존했다는 사실이다. 부상자 몇 명을 제외하고 어린이를 비롯해 노인까지 모든 사람이 살아남았다. 추락한 지 24분 만에 구조 선박 수백 척과 헬기가 도착했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사람들을 살려냈다. 수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진 허드슨 강 위에 불시착한 사람들, 심지어 허드슨 강에 뛰어든 사람까지 모두 살아남은 것이다. 영화는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제목 ‘설리’는 이 비행기를 운항한 체슬리 설런버거 기장(톰 행크스 분)의 애칭이다.
그런데 정작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이야기는 그 후, 155명을 살려 영웅으로 칭송받은 설리가 청문회에서 가혹한 질의응답을 받는 내용이다. 고가 비행기가 강에 빠졌고, 기장은 사람 목숨뿐 아니라 거액의 회사 자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직원이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회사 측은 근처 공항으로 안전하게 회항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여주며 설리를 압박한다. 비행기를 구할 수 있었는데, 당신의 멋진 에어쇼를 위해 허드슨 강에 처박은 것 아니냐고 힐난하는 것이다.
청문회의 압박 속에서 설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의 판단이 옳았던 것일까.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까’라고. 하지만 영화의 대답, 그리고 설리의 대답은 하나로 응축된다. 155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비행기가 사물이라서 포기할 수 있었다면 155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기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했다는 것. 그러니 사람이 살아남았다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메시지 말이다.
우리는 종종 숫자로 표기된 것 뒤로 돈의 단위를 보곤 한다. 155 뒤에 자연스럽게 ‘명’이 아니라 ‘만 원’이나 ‘달러’ 같은 단위를 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보수란 이런 것 아닐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중심 가치가 있어 그것을 지켜야 마땅하다면 그것을 밝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말이다.
이스트우드는 정말이지 멋진 노인이고, 존경할 만한 선배이며, 그럴 듯한 친구다. 걸작이 아닐지라도 그의 영화를 보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에 대한 영화.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바로 사람에 대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