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육군이 교체하고 있는 군용(전투용) 화물차에 에어백이 전혀 장착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장교가 타는 지휘차량(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은 에어백을 장착한 차량으로 교체돼 형평성 시비가 일고 있다.
육군은 기존에 운용하던 전투용 화물차 수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 그 자리를 민간에서 사용하는 일반 화물차로 대체하고 있다. 지휘차량은 쌍용자동차의 코란도 스포츠로, 화물차는 현대자동차와 타타대우상용차의 5t 트럭, 2.5t 트럭으로 바꾸고 있다. 문제는 일반 화물차가 전투용 화물차에 비해 충돌 시 운전자의 부상 위험이 큰데도 군이 에어백 장착을 차량 제작사에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점. 반대로 지휘차량은 모두 에어백 장착 차량으로 교체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군 일각에선 "운전병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일반 화물차에도 에어백을 달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식 차량보다 부상 확률 높은데…
지금도 일반 운전자에게 전투용 화물차는 무조건 피해야 할 대상이다. 일반 화물차보다 몇 배 두꺼운 강판으로 만들어 살짝만 부딪혀도 일반 차량은 휴지처럼 구겨지기 일쑤이기 때문. 전투용 화물차는 강판이 두꺼운 만큼 차체가 무거워 속도가 느린 데다 소음도 크다. 그래서 전투용 화물차는 군에서도 애물단지다. 전시엔 유용하지만 평시에는 연비가 많이 드는 노후차량 취급을 받는다. 전투용 화물차의 수명은 20년으로, 수명이 긴 만큼 수요는 턱없이 적다. 그래서일까. 현재 국내에서 전투용 화물차를 만드는 곳은 기아자동차뿐이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데다 수요는 적어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가장 잘 알려진 전투용 화물차인 K511A1(2.5t 트럭)의 가격은 8000만 원 선으로, 같은 2.5t 일반 상용 트럭보다 2배 이상 비싸다. 실제 현대자동차의 마이티 2.5t 트럭의 가격은 3900만 원 선이다.육군은 전투용 화물차의 높은 가격과 연비, 낮은 성능 문제를 일반 상용차량을 도입함으로써 해결하기로 했다. 육군본부(육본) 군수과 담당자는 “2020년까지 군 차량의 60%를 일반 상용차량으로 바꾸는 계획을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소형 지휘차량(기아 레토나)을 전부 상용차량인 쌍용자동차 코란도나 렉스턴으로 교체하고, 일부 군용 트럭을 상용차량으로 교체해 전체 군 차량의 60%를 상용차량으로 바꿀 예정이다. 상용 민간차량의 적극적 도입을 통해 육군 수송체계를 좀 더 합리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투용 화물차를 민간 상용차량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전투용 화물차에 비해 민간 상용차량은 충돌 시 운전자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육군 차량 관리 관계자는 “전투용 화물차는 민간 상용차량에 비해 속도가 느려 충돌 시 충격이 덜하다. 게다가 민간 화물차는 운전석과 차 범퍼 간 거리가 짧아 충돌 시 운전자가 부상을 입을 확률이 크지만, 전투용 화물차는 범퍼와 운전자 간 거리가 비교적 멀어 운전자 부상 위험이 민간 차량에 비해 적은 편”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나 탑승자가 다칠 위험은 커졌지만 이를 막거나 줄여줄 안전장치는 부실한 상황이다. ‘주간동아’ 취재 결과 군에 새로 납품되는 일반 상용 화물차에는 에어백이 일절 장착되지 않았으며, 자체적으로도 에어백 장착 계획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육본 군수과 담당자는 “(새로 구매하는) 상용 화물차에는 에어백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서울 일선 부대에서 운전병을 지휘하는 한 군 간부는 전투용 화물차를 에어백이 없는 민간 화물차로 교체하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군에 새로 들어오는 민간 상용 트럭의 경우 에어백이 장착돼 있지 않다. 운전이 미숙한 운전병은 늘어나는데 차량에 안전장치가 없으니 걱정이 더 커졌다. 운전병이 비교적 편한 병과로 인식되면서 운전 기량이 뛰어난 운전병보다 면허만 따고 바로 입대하는 운전병이 느는 추세다. 운전병은 각 부대에 배치되기 전 군 교육기관에서 훈련받은 전투용 화물차에 익숙해져 있는데 실제 몰아야 하는 차량은 민간 차량이라는 것도 문제다. 민간 차량을 운전하는 능력도 미숙한 데다 전투용 차량에 비해 사고 시 다칠 위험도 커 운행할 때마다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지휘차량은 전 좌석 에어백
이처럼 군에 납품되는 일반 화물차에 에어백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인에게 공급되는 화물차를 포함해 국내에서 생산하는 모든 화물차에는 원래부터 에어백이 장착돼 있지 않기 때문. 심지어 화물차 에어백은 신차 구매 시 옵션조항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에서 제조한 5t 트럭에는 원래 에어백이 없다”고 확인해줬다. 육군에 5t 트럭 ‘노부스’를 납품하는 타타대우상용차 관계자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5t 트럭에는 원래 에어백이 달려 있지 않다”고 말했고, 역시 육군에 5t 트럭 ‘메가트럭’을 납품하는 현대자동차 관계자 또한 “5t 트럭은 에어백이 아예 없고 최근 2.5t 트럭 일부에서만 옵션사항으로 추가됐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군이 차량 제조사에 별도로 에어백 장착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전투용 화물차의 대체품으로 납품되는 일반 화물차에는 에어백을 장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용재 교통안전공단 차장은 "에어백이 없는 차량에 자비를 들여 에어백을 장착할 경우, 국토교통부의 지원대상에 '에어백 장착'이 포함되지 않아 에어백 장착에 대한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때문에 현재 일반 화물차를 구매한 민간인은 자비를 들여 에어백을 따로 장착하고 있다. 화물차 운전자 강모(51) 씨는 “화물차는 범퍼와 운전석 간 간격이 좁아 충돌사고가 나면 크게 다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차량 구매 시 따로 돈을 들여 에어백을 장착하는 운전자가 대다수”라 밝혔다.
한편, 전투용 화물차와는 대조적으로 군에 납품되는 상용차 가운데 지휘차량에는 모두 에어백이 장착된 것으로 밝혀졌다. 육본 군수과 담당자는 “지휘차량으로 들어오는 코란도 스포츠의 경우 전 좌석 에어백이 내장돼 있다”고 밝혔다. 지휘차량은 화물차에 비해 충돌사고가 생겼을 때 운전자의 부상 확률이 낮다. 그럼에도 전 좌석 에어백이 내장돼 있는 것.
경기 일선 부대에서 수송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군 간부는 “지휘차량에만 에어백이 달려 있어 운전병 사이에서는 ‘차에 타는 군 간부의 계급이 높을수록 사고가 나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말도 나돈다. 농담이지만 막상 매일 화물차를 몰고 나가는 운전병들이 이런 말을 할 때면 병사들의 군 생활 안전을 책임지는 간부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