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대형 지진이 연달아 발생해 국민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7월 5일 울산 앞바다에서 리히터 규모 5.0 지진이 관측된 것을 시작으로 9월 12일에는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 본진이, 19일에는 규모 4.5, 21일에는 규모 3.5 여진이 발생했다. 한국도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 것. 전문가들 역시 “규모 6.0보다 큰 지진이 올 수 있는 만큼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정부도 지진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9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진에 안전하도록 건축물 내진설계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문제는 국토부의 이번 대책으로는 규모 6.5를 넘어서는 큰 지진을 막을 수 없고 지진 피해가 집중되는 단층 건물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 게다가 내진설계가 법제화되지 않은 시절 지은 건물에는 내진 보강을 강제할 수 없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계 “규모 6.5~7.0 지진도 발생 가능”
국토부가 발표한 대책의 골자는 내진설계 의무 대상 건물을 확대하는 것이다. 현행 건축법에 따르면 3층 이상(또는 연면적 500㎡ 이상) 건축물은 반드시 내진설계를 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국토부 계획대로 9월 22일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 1월 20일부터 건축법이 개정 시행되면 내진설계 대상이 2층 이상(또는 연면적 500㎡ 이상) 신축 건물로 확대된다.
하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내진설계 대상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은종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단층 건물에도 내진설계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지진이 발생하면 높은 건물보다 낮은 건물이 더 많이 무너진다. 일본처럼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국가는 건물 층수와 관계없이 내진설계를 한다”고 말했다.
9월 20일 국립대 지질학과 교수들로 구성된 여진분석팀은 “경주에서 발생한 강진의 원인이 경북 영덕군에서 부산까지 육지 170km 구간을 관통하는 양산단층일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의 중간 결론을 발표했다. 죽어 있는 줄 알았던 양산단층이 사실은 활성단층이라는 것. 활성단층이란 활동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되는 단층으로, 학계에서는 이를 지진의 주원인으로 본다. 문제는 정부가 그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활성단층이 양산단층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9월 21일 지진 관련 긴급 현황보고를 위해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나라에 있는 활성단층이 450개 이상인데 현재 25개밖에 조사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지진 위험 요소가 추가로 발견되고 실제 규모 6.0에 근접한 지진이 일어난 만큼 지진 예측 최대 규모를 바꾸고 내진설계에 적용되는 지진 최대 규모도 손을 보는 게 상식. 하지만 국토부의 내진설계 확대 대책에는 기존 건물이 견딜 수 있는 지진 규모의 기준치를 확대 조정하겠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국내 내진설계 강도는 한국시설안전공단이 각종 조사를 통해 2400년 주기로 재현되는 지진 최대 규모를 예측한 뒤 해당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도 붕괴하지 않을 정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에 따라 2009년부터 지금까지 적용된 내진설계 강도는 규모 6.0~6.5 기준. 하지만 이미 경주에서 규모 6.0에 가까운 5.8 지진이 일어났고, 학계에선 규모 6.5를 넘는 지진이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어 내진설계 기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각 지층이 지진을 일으키지 않고 견딜 수 있는 힘의 임계치와 과거 지진 발생 빈도로 예측해보면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한반도에서 최대 규모 7.0 지진까지 발생할 수 있다. 학계에서도 규모 6.5~7.0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라고 밝혔다.
국내에 내진설계를 처음 도입한 것은 1988년으로, 그 전에 지은 건물은 지진 피해에 무방비 상태다. 게다가 88년 당시 건축법에는 층수 6층 이상, 연면적 10만㎡ 이상 대형 건물만 내진설계 대상에 포함됐다. 사실상 특수 건물에만 내진설계를 강제했던 것. 내진설계를 일반 건물에도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7월 건축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3층 이상, 연면적 1000㎡ 이상 건물은 반드시 내진설계를 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2005년 법안을 바탕으로 2009년과 2014년 법 개정을 거쳐 현행 3층 이상, 연면적 500㎡ 이상이라는 기준이 확립된 것이다.
공공시설물부터 제대로 내진 보강 완료해야
내진설계 역사가 짧으니 실제로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물은 그리 많지 않다. 국민안전처 조사에 따르면 6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민간 건축물 679만4446동 가운데 6.7%인 45만5514동만 내진설계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시설물도 내진설계가 안 돼 있기는 마찬가지. 국민안전처가 지난해 12월 공공시설물의 내진설계 이행률을 조사한 결과 대상 시설물 10만5448개의 내진설계 이행률은 42.4%(4만4710개)로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지진 위협으로부터 국민 안전을 지키려면 새로 짓는 건물의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하고 기존 건물의 내진 보강이 시급한 상황.
정부도 기존 건축물의 내진 보강을 유도하는 여러 대책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내진설계 확대 계획의 일환으로 기존 건축물의 내진 보강 유도 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기존 건축물을 내진 보강해 증·개축할 경우 건폐율, 용적률 등 건축법상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적 보상으로 내진 보강에 소극적인 민간 분야 건물주의 마음을 돌려보겠다는 심산이다.
한편 행정자치부(행자부)는 내진 보강을 한 건물주의 세금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건물주가 내진설계 의무 대상이 아닌 건축물을 수리해 내진 성능을 갖추면 현행 지방세특례제한법 제4조 6항에 따라 취득세 50%, 재산세도 5년간 50% 감면해준다. 행자부는 9월 21일 “내년 1월부터 지방세특례제한법 감면 혜택을 취득세 100%, 재산세 5년간 100% 감면으로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이 같은 대책에 대해 유은종 교수는 “민간 건물의 내진 보강을 정부 차원에서 강제하기 어려운 만큼 인센티브를 통해 민간 건물 내진 보강률을 높이겠다는 의도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민간 건물의 내진 보강을 효과적으로 독려하려면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시설부터 완벽하게 내진 보강을 해 민간 건물주가 그 필요성을 직접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공공시설물의 내진 보강률은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한 관계자는 “다중이용시설인 KTX 승강장이나 학교 시설의 내진 보강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방방재청, 활성단층 지도 미공개 진짜 이유가 뭐야?▼ 양산·울산단층 활성단층 결론 보고서 연구용역…뒤늦은 활성단층 전면조사도 지속성 의구심 ▼
죽어 있는 비활성단층이라고 알았던 양산단층이 시퍼렇게 살아 움직이는 활성단층이라는 사실이 일부 학자에 의해 밝혀지자 단층대 인근 주민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양산단층이 지나는 경북 영덕에서 부산까지 170km 구간에 고리, 월성 1호기 등 총 11개의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어날 추가 지진도 걱정이지만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에 이상이 생길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
이런 우려를 반영해 일부 정치권과 환경단체는 양산단층에 자리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환경회의’는 9월 22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활성단층대에 세워진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중단과 안전점검을 요구했다.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도 21일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안전처 장관이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멈추고 정밀하게 점검한 뒤 재가동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실제로 지진의 90% 이상은 활성단층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물론, 이란과 인도네시아에서도 활성단층 파악에 힘을 쏟는다. 지진 위험이 있는 활성단층대에 원자력발전소 같은 위험시설을 짓는 폐단을 피하기 위해서다. 한국도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은 2009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20억 원을 지원해 ‘활성단층 지도 및 지진위험지도 제작’ 연구용역을 맡겼다. 2012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3년간 지질 연구를 통해 작성한 보고서는 양산단층과 울산단층(양산단층의 소단층)이 활성단층이며 그 주변으로 원자력발전소가 각각 11개, 7개씩 밀집해 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해당 단층을 활성단층이라고 확정 판단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김영석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단층들의 활성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관련 연구 자료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당시 연구에서도 자료가 충분치 않아 보충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왔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하지만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양산·울산단층에 대한 추가 조사나 연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고서야 활성단층 조사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다. 사후약방문 격이다. 9월 20일 국민안전처는 “2015년 1월 수립한 로드맵 일정에 따라 2017년부터 25년간 총 525억 원을 투입해 한반도 활성단층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1단계로 지진 빈발 지역과 대도시의 활성단층 조사에 2021년까지 105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학계에선 당장 내년 단층구조 조사에 배분된 예산이 적어 연구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활성단층 전면 조사에 필요한 예산은 단순히 계산해도 연간 21억 원 정도지만 실제 내년 한반도 단층구조 조사에 배정된 금액은 15억7500만 원에 불과하다. 지헌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센터장은 “활성단층 조사는 장시간이 필요한 사업인 만큼 사업 주체인 국가의 의지가 중요하다”며 “지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것을 계기로 한반도 전역에서 체계적인 단층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