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새로움을 선도하는 패션몰과 레스토랑이 가득하다. 이 길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얻은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유학생들이 이곳에 다양한 패션숍을 열면서 가로수길은 패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2007년 이후 식당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재료에 대한 탐구와 새로운 시도로 이름을 알린 류태환 셰프의 ‘류니끄’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만든 ‘창조적’ 요리들은 몇 년간 진화를 거듭하면서 ‘2015년 아시아 최고 레스토랑 50’에 ‘정식당’(10위), ‘라연’(38위)과 함께 27위에 이름을 올렸다. 프렌치와 일식 요리를 한국적 재료를 바탕으로 ‘류태환식’으로 해석한 ‘류니크’의 요리는 ‘창조적’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다. 메추리나 오리를 이용한 음식은 프랑스 음식에 메인으로 많이 등장하지만 한국인에게는 낯설다. 이 집의 메추리나 오리 요리의 맛은 깊은 품위와 짠맛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야키토리로 명성을 얻은 ‘쿠이신보’가 지난해 말쯤 가로수길에 둥지를 틀었다. 합정동과는 다르게 꼬치구이 전문점에서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로 변신했다. 사시미에서 튀김, 나베 요리까지 갖췄다. 구이로 시작한 식당답게 참치등살볏짚구이 같은 음식을 잘한다. 원래 타타기처럼 생선 겉면을 살짝 익히는 음식에는 전통적으로 짚을 이용했다. 짚의 풍미와 무쇠도 녹이는 뜨거운 열이 순간적으로 겉면을 익히고 감칠맛을 배가한다. 부드러운 식감과 감칠맛을 내는 청어 사시미나 도미, 해삼 창자를 소금에 절인 고노와다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나온다. 이 식당의 음식은 수준이 높으면서도 고르다.
가로수길 안쪽에 있는 ‘감성 타코’에는 언제나 젊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멕시코 음식 전문점으로, 매콤한 맛의 감성 그릴드 파이타가 가장 인기 있다. 밀전병 같은 토르티야에 새우나 고기를 싸서 먹는 음식이다. 푸짐한 양에 자극적인 맛이 더해져 젊은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요즘 음식업계의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술이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탄산 맛이 강한 대기업 맥주나 일반 소주, 혹은 그 둘을 섞어 먹는 폭탄주 문화는 여전히 강건하지만 마니아 사이에서는 수제맥주와 싱글몰트 위스키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신사동 ‘드램’은 싱글몰트를 주로 취급하는 바(bar)로 마니아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좁은 지하에 자리 잡아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갈 수 없는 아지트형 싱글몰트바다. 가게는 작지만 싱글몰트는 없는 게 없다. 우아한 싱글몰트의 세계로 진입하는 데 제격인 곳이다.
‘미켈러’ 바는 맥주 마니아라면 한 번쯤 가봤음 직한 곳으로, ‘대동강 페일에일’이란 에일스타일 맥주를 판매하는 더부스에서 운영한다. 미켈러는 벨기에 맥주 제조사로, 세계적 권위의 맥주 평가 사이트 ‘레이트 비어’가 3위로 꼽은 창의적이고 기발한 맥주 공장이다. 자신들은 맥주를 직접 제조하지 않는 대신 작고 창의적인 맥주 공장들과 협업해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내는 집시 브루어리를 대표하는 곳이다. 미켈러의 창의적인 맥주를 생맥주나 병맥주로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가로수길 ‘미켈러’ 바인데 전 세계에 매장이 6개밖에 없다. 2015년 가로수길에 자리 잡은 ‘미켈러’ 바는 수제 맥주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에일 스타일 맥주를 기본으로 하지만 흑맥주나 탄산이 많은 벨기에 스타일의 맥주도 함께 맛볼 수 있다.
한국 미식계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가로수길을 터벅터벅 돌아다니다 보면 그 흐름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