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게 새누리당 이정현 신임 대표는 어떤 존재일까. 양날의 칼이다. 적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지만, 손을 벨 수도 있는 흉기다. 이런 이 대표를 박 대통령이 어떻게 활용할지 두고 볼 일이다. 이 대표도 이젠 엄연한 집권여당 대표다.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할 위치다. 그래서 박 대통령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고민 중일 것이다. 그에게도 박 대통령은 양날의 칼이다. 내 손을 베이지 않으면서, 여야의 정적을 제압할 무기로 활용해야 한다.
내시(內侍)
이 대표는 7월 9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대통령의 내시라 불러도 부인하지 않겠다.” 그랬다. 그는 언제나 ‘박근혜의 남자’ ‘박근혜의 복심’ ‘박근혜의 입’ ’박근혜의 호위무사’였다. 2008년에는 ‘박근혜 어록집’까지 냈다. 박 대통령의 말씀을 깨알같이 메모한 산물이다. 오랫동안 대변인도 아닌 대변인 격으로 지낸 그다. 그에게 박 대통령의 말씀은 거의 바이블이다. 지금도 사안별로 박 대통령의 과거 말씀이 어떠했는지 어록집을 뒤져볼 정도다.이 대표는 왜 이토록 박 대통령을 맹종하다시피 하는 걸까. 8월 9일 전당대회 후보 연설을 보면 답이 나온다.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나를 비웃을 때도 나 같은 사람을 발탁해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함을 갖고 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말단 사무처 당직자로 시작해 16개 계단을 밟아온 사실도 강조했다. 말단 사무처 당직자 출신이 국회의원에 오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당대표까지 오르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더욱이 그는 영남 출신이 주류를 이루는 보수정당에서 소수자인 호남 출신이다. 그래서 당대표 당선이 꿈만 같을 테고,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준 박 대통령은 평생의 은인인 것이다. 배신은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인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나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다른 점이다.
당대표 당선 다음 날 그는 이런 어록을 남겼다. “대통령과 맞서고 정부에 맞서는 게 마치 정의고 그게 다인 것처럼 인식한다면 여당 소속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 그에게는 박 대통령이 곧 정의다. 박 대통령을 향한 무한 존경은 8월 11일 청와대 축하오찬에서도 이어졌다. 탕평인사, 균형인사, 능력인사, 소수자 배려인사를 건의할 때마저 이런 긴 접두사를 빼놓지 않았다. “인사권자인 대통령께서 여러 가지 국정 전반에 대해 다 판단하실 문제이긴 하지만….” 그는 박 대통령과 대화할 때 습관적으로 이런 접두사, 아니 긴 접두문을 붙인다. 조아리는 자세다.
그런 점에서 당청관계가 수평적이길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또는 청와대 핵심 측근에게 직언을 쏟아내는 일은 전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비상대책위원회 시절 집단성 지도체제를 단일성 지도체제로 바꿨다. 사실상 총재 시대로 되돌아간 것이다. 이 대표가 원한다면 총재급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그럴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박 대통령을 실질적인 총재로 모시고 본인은 수렴청정을 받아 수행만 하는 부총재급 또는 사무총장급 노릇을 하려들 개연성이 훨씬 더 크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일심동체가 된 셈이다.
당청이 하나가 돼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이 대표가 국민 여론을 박 대통령에게 실시간으로 직보하고, 박 대통령은 곧바로 지시를 내려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다. 그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가 8월 11일 청와대 축하오찬 회동 뒤 곧바로 이뤄진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조치다. 개각과 관련한 이 대표의 탕평인사 제안을 박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은 것은 반대 사례다. 8·16 개각에서 이 대표가 건의한 내용을 반영하려 한 흔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김무성 전 대표 시절에 비해 좀 더 귀를 기울이기는 하겠지만 결국 선별적 수용을 하겠다는 뜻이다. 갑은 여전히 청와대인 것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이 점을 놓치지 않고 8월 12일 이렇게 지적하고 나섰다. “대표가 국민과 야당 목소리를 전하지 못하면 박근혜 대통령 총재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울린 것이나 다름없다.” 수직적 당청관계에서 박 대통령은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보수세력 전체, 더 나아가 국민 모두가 행복할지는 미지수다. 당연히 내년 대통령선거(대선)에서 악재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2016년 총선의 재판으로 흐를 수 있다는 뜻이다.
호남(湖南)
이 대표는 보수정당 최초의 호남 출신 당대표다. 18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로 시작했지만 새누리당 소속으로 야당 텃밭인 호남에서 재선을 기록했다. 19대 총선에서 선거구 재획정 결과 고향 곡성이 떨어져나가는 불이익 속에서도 일궈낸 성과다. 진정성이 통한 결과였다. 2004년 16대 총선 때 광주 서구을에 도전했을 당시 그는 사모관대까지 했다. 하지만 외면당했고, 득표율도 0.65%에 불과했다. 1%도 못 얻은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호남포기전략까지 썼다. 선거에서 패한 뒤 이 대표는 당시 박근혜 당대표 앞에서 호남포기전략을 오히려 포기해달라며 열변을 토했고, 이를 계기로 박 대통령의 대변인 자격을 얻었다.그로부터 8년 뒤인 2012년 19대 총선 때 그는 다시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고, 비록 졌지만 39.7%라는 보수정당 역대 최고 득표율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2014년 7·30 재·보궐선거 당선을 거쳐 2016년 20대 총선에서 재선이라는 성공 신화를 쓴 것이다. 이번에 득표율은 44.1%에 달한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당대회에서 내건 공약이 바로 ‘호남 20% 득표’다. 내년 대선 때 호남에서 20% 지지율을 획득하겠다는 것이다. 8월 16일 YTN과 인터뷰에서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내가 잘하고 새누리당이 호남을 배려하면서 호남을 위한 정책을 펼친다면 그 자체가 호남 사람들 마음의 문을 여는 비결이 될 것이고, 20% 이상은 능히 할 수 있다.”
이제 그는 새누리당의 호남공략, 곧 서진(西進)전략의 핵심 인물이다. 이미 박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 마의 벽으로 여겨지던 10% 지지율을 돌파한 터다. 전북에서 13.22%, 전남에서 10%, 광주에서 7.76%를 득표했다. 여기에 호남 표심을 자극한 특유의 진정성과 그동안 여러 차례 약속한 예산폭탄으로 10%를 더하겠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정현이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반응이 벌써부터 나온다. 내년 대선에서는 호남 삼국지가 펼쳐질 것이란 때 이른 관측까지 등장했다.
당연히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이나 국민의당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안 그래도 두 야당이 호남 표심을 놓고 접전을 이어가는 중이다. 여론조사 결과도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까지 가세한다고 하니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것이다. 급기야 당권주자 가운데 한 명인 더민주 추미애 의원이 “이 대표는 생물학적 호남일 뿐”이라며 견제하고 나섰다. 또 다른 당권주자인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 역시 이정현 대표 선출에 대해 “‘호남+충청+영남’의 지역연합을 염두에 둔 ‘공포의 삼각편대’ 전략”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이 대표 당선 직후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결의하고자 한다”는 약속을 재차 강조했다. 더민주에 쫓기는 상황에서 새누리당까지 가세했으니 국민의당은 지금 곤혹스러운 처지다. 점퍼 차림에 백팩을 메고 이제 지역구 순천을 넘어 호남 전 지역을 누빌 이 대표를 생각하면 입에 넣은 밥알이 곤두설 것이다. 부친이 전주에서 사업을 한 인연으로 전북 명예도민이 된 김무성 전 대표도 최근 호남 방문이 잦다. 친박(친박근혜)계 이정현에 비박(비박근혜)계 김무성까지 쌍끌이에 나선 형국이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졌다. 민생 행보의 원조인 손학규 전 상임고문에게 자꾸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아직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손학규 카드로 이정현 카드를 제압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 대표는 손 전 고문으로서도 대응하기 어려운 아웃복싱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호남 표심 확보에 이 대표가 득만 될까. 위험 변수는 없을까. 있다. 호남 민심에는 기본적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 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내려오는 호남 홀대에 대한 반감이 원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표의 호남 확장성에는 구조적으로 제약이 따르리라고 봐야 한다. 개인기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지난 전당대회 당시 이 대표가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시절 김시곤 KBS 보도국장과 통화한 녹취록이 공개돼 언론 개입 논란이 일었다. 홍보수석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든 사건이 또다시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사건 또한 계속해서 호남 확장성을 가로막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무수저
7월 7일 당대표 선거 출마 선언 당시에도 이 대표는 어록을 남겼다. “금수저,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로 여기까지 왔다.” 무수저라는 신조어가 일반명사가 된 순간이다. 표현은 강렬했고 주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공감도 이끌어냈다. 그가 걸어온 삶에 딱 맞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무수저 행보는 전당대회 내내 이어졌다. 점퍼에 밀짚모자, 백팩 하나. 대변인 격, 홍보수석 출신다운 자기 연출이었다.당대표 당선 이후에도 그의 무수저 행보는 현재진행형이다. 부자정당 새누리당 이미지와 괴리가 너무 커 더욱더 눈에 띈다. 하지만 밉지 않다. 진보 지지세력이 보기에도, 호남 유권자가 보기에도 그렇다. 부자 김무성 전 대표의 민생행보는 조금 억지스러워 보이는 반면, 이 대표의 민생행보는 무척이나 짝짝 달라붙는다. 당대표 경선이 한창인 더민주와도 자꾸 비교하게 된다. 왜 더민주 대표 경선주자 중에는 저런 사람이 없을까. 오히려 그것이 더 부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다.
박 대통령은 금수저 출신을 중용한다. 본인도 따지고 보면 금수저 출신이다. 그의 주변에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신세를 입은, 그래서 금수저가 된 가문의 자녀도 적잖다. 그래서 너무 귀족 지향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 실세로 급부상한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도 부자다. 중용에 중용을 거듭 중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도 부자다. 조 내정자는 2013년 고위 공직자 재산 1위였고, 우 수석은 2014년 이후 내리 고위 공직자 재산 1위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평균 재산은 29억5000만 원에 달한다. 그것도 1000억 원 이상 재산을 보유한 국회의원을 제외한 평균이다. 물론 더민주에도 김병관 의원이나 박정 의원, 국민의당에도 안철수 전 공동상임대표 같은 재산가가 없지 않다. 하지만 상위 20명 가운데 12명이 새누리당 출신일 정도로 부자의 비중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늘 부자정당, 귀족정당이라는 말이 따라다니는 것이기도 하다. 보수정당이니 당연하달 수도 있겠지만, 선거 득표에 불리한 변수임은 분명하다.
무수저를 자처하는 이 대표에게는 이런 국민적 거부감을 상쇄하는 메리트가 있다. 다만 아직은 국민 대부분이 이 대표를 별종으로 본다. 예외적인 인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대표가 열심히 무수저 행보를 이어가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이상 되기는 어려운 이유다. 새누리당의 금수저 국회의원 모두가 무수저 행보에 나선다면 혹시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대표 경선 과정에서 친박 이미지를 줄이려고 그 나름 애썼다. 하지만 넘어서진 못했고, 친박계의 환호와 지지 속에서 대표에 올랐다. 부인하려 해도 새누리당은 어쩔 수 없이 도로 친박당, 실은 ‘더친박당’이 된 것이다. 무수저 행보로도, 서진전략으로도 이것을 뛰어넘긴 힘에 부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