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가 점점 무르익는 시대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마다 소득 증가 및 평판 향상을 위해 지역 명소를 널리 알리는 데 열심이다. 속리산이 충북 보은에 있다고 하면 경북 상주 사람들이 서운해하고, 대둔산이 전북 완주에 있다고 하면 충남 금산과 논산 사람들이 섭섭해하기 십상이다. 이런 현실에서 비롯된 재미있는 판례가 있어 소개한다.
소백산 국립공원(322.011㎢)은 경북 영주시와 봉화군, 충북 단양군에 걸쳐 있는데 공원 넓이의 약 51.6%가 영주시에, 47.7%가 단양군에 위치하며 특히 영주시 단산면은 소백산 국립공원 넓이의 17%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영주시는 2012년 3월 15일 지방자치법 제4조의2 제1항 단서에 따라 영주시 ‘단산면’의 명칭을 ‘소백산면’으로 바꾸는 내용으로 ‘영주시 읍·면·동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를 개정, 공포했다.
그러자 단양군이 발끈했다. 단양군수는 행정자치부 장관(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영주시에서 ‘소백산’을 행정구역 명칭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분쟁조정신청을 했고, 지방자치단체중앙분쟁조정위원회는 2012년 6월 14일 “영주시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바꾸는 것을 불허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영주시장은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6월 20일부터 명칭변경 시행을 중단하고 관련 사실을 알리겠다”는 이행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장관은 “위 명칭변경 조례의 개정에 관한 이행계획이 없으니 2012년 8월 10일까지 위 조례를 개정하라”는 직무이행명령을 내렸다.
이에 영주시장(원고)은 행정자치부 장관(피고)을 상대로 대법원에 위 직무이행명령의 취소를 청구했다. 지방자치법은 이러한 경우 곧바로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영주시가 면 명칭으로 사용하려는 ‘소백산’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산의 고유명사로, 영주시뿐 아니라 단양군 등 소백산에 인접한 여러 지자체와 주민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곳이기에, 소백산이라는 명칭을 영주시가 일방적으로 그 관할구역 내 행정구역 명칭으로 사용할 경우 소백산에 인접한 다른 지자체와 주민의 명칭 사용에 관한 이익을 포함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익을 구체적, 직접적으로 침해할 우려가 있어 원고가 일방적으로 위와 같은 소백산 명칭을 선점해 면 명칭으로 사용하려는 행위는 합리적으로 통제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따라서 “분쟁조정결정이 영주시장에게 통보됐음에도 ‘단산면’ 명칭을 ‘소백산면’으로 변경하는 조례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명칭변경 시행을 완벽히 중단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영주시에 패소 판결을 한 것이다.
소백산에 인접한 여러 고장이 오랜 기간 소백산이라는 명칭을 함께 사용해온 만큼 소백산이라는 명칭에는 특정 지자체 행정구역 명칭의 의미가 없고 소백산 자체를 가리키는 의미만 있다고 판단되니, 영주시가 이를 일방적으로 사용하면 영주시는 이익을 향유하는 반면 다른 지자체는 이익이 침해된다고 본 판결이었다.
함께 사는 세상이지만, 이처럼 사람이 만든 경계와 이름이 그 자체로 경제적 가치를 갖는 일이 많다. 이미 아파트 명칭변경을 둘러싼 인근 주민 간 분쟁이 흔해졌고, 아파트 값을 올리려고 동명을 바꾸려다 분쟁이 생긴 경우도 있다. 자본주의사회의 씁쓸한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