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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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마약류 비만치료제 전면 허용의 진실

심장질환 위험, 우울증 부작용 경고에도 전면 허용…개인 간 불법거래 어떻게 막나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8-19 1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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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만치료제 시장이 변화를 맞을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8월 12일 “2017년 말 이후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성분의 제제를 신규 허가하겠다”고 밝혔다.

    펜터민, 펜디메트라진은 중추신경을 자극해 입맛을 떨어뜨리는 ‘향정신성의약품’ 성분으로 ‘마약류’에 속한다. 오·남용 시 부작용 위험 때문에 2013년 9월 이후 국내 시장 신규 진입이 금지됐다. 즉 2013년 8월 이전까지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의약품을 제조하던 제약사들은 계속 생산, 판매할 권리가 있지만 이 의약품을 생산하지 않던 제약사들은 신규 생산 및 출시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2017년 말 이후부터는 이 제한 조치가 풀려 모든 제약사가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제제를 자유롭게 생산할 수 있다.

    3년 만에 정책을 뒤집은 식약처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2017년 말 도입 예정인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마약류의 제조 및 유통 과정을 실시간 관리하면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2013년 8월 이전부터 해당 성분의 의약품을 제조한 34개 업체가 관련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만큼 나머지 제약사의 시장 진입을 허용해 과점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펜터민, 펜디메트라진은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식욕억제 성분이다. 2013년 국제마약감시기구(INCB)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펜디메트라진, 펜터민 사용량은 각각 세계 2위, 5위를 기록했다.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 때문에 소비량이 많아진 탓이다. 박경희 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펜터민, 펜디메트라진은 다른 식욕억제 성분에 비해 효과가 큰 편이다. 향정신성의약품 성분으로 부작용 위험도 있지만 식사량을 줄이기 쉬워 많은 환자가 찾는다”고 말했다.





    ‘태아에게 위험’ 주의성 문구 태반

    문제는 부작용이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향정신성의약품은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것으로 이를 오용, 남용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다’고 한다. 펜터민, 펜디메트라진의 부작용은 심리적 불안, 심장 박동 수 증가, 입 마름, 과도한 의존성 등이다. 심장질환 및 고혈압 질환 유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펜터민을 투여한 뒤 폐동맥 고혈압에 걸렸다는 보고가 1972년 이후 3000건 이상”이라며 부작용을 경고한 바 있으며 독일,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는 이 성분의 제제를 판매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과연 펜터민, 펜디메트라진은 그렇게 위험한 제제일까. 약학정보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펜터민 성분이 들어간 의약품을 검색했다. 그중 흔히 살 수 있는 A의약품은 ‘임신 중 약물투여지침 미국 FDA(식품의약국) 분류’에서 ‘임부에게 투여 금지’ 판정을 받았다. 이는 사람과 동물 대상의 연구 및 임상시험 등에서 태아 위험성의 증거가 나타났으며, 약물 투여가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임부의 치료적 이득보다 큰 경우를 가리킨다. 또한 △다른 식욕억제제와 병용해 투여할 경우 중증 심질환 발병 가능 △급속한 과량투여에 따른 증상으로 불안, 혼수, 공황상태가 나타날 수 있음
    △중추신경계 흥분 후 피로와 우울증 동반 등의 문구도 보인다. 펜디메트라진이 들어간 B의약품은 ‘태아에 대한 위험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이란 판정을 받았고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므로 기계 운전이나 자동차 운전에 종사하는 사람에겐 주의해서 투여할 것’이라는 주의사항이 포함돼 있었다.

    중독성 문제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성남 강남을지병원장은 “펜터민, 펜디메트라진은 프로포폴, 날부핀(강력 진통제)과 비슷한 중독성 수준을 가진 성분으로, 심각한 금단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며 “복용기간을 4주 이내로 제한하는 이유도 중독성 때문이다. 비만을 초기에 빨리 치료하고 장기간 복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부작용과 중독 위험성이 큰 데도 왜 식약처는 2013년 이 성분들에 대해 ‘전면 금지’가 아닌 ‘신규 진입 금지’ 조치를 취했을까. “비만치료로 인한 이득이 부작용 위험보다 크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식약처 측 설명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2013년 9월 당시 해당 성분의 유익성이 위해성보다 크다고 봤기 때문에 유통을 전면 금지하지는 않았다. 다만 오·남용 관리 측면에서 신규 진입을 불허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017년 말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이 운영되면 모든 마약류에 RFID(전자라벨)를 부착해 어느 병원에서 어느 환자에게 얼마나 많이, 자주 처방했는지 철저히 감시할 수 있다. 또한 최근 펜터민과 펜디메트라진 제제의 생산량이 줄고 다른 비만치료제가 많이 나와 신규 진입 허가 후에도 두 성분의 소비가 급격히 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약류통합관리 시작부터 삐거덕

    하지만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제제의 생산량이 감소한 기간은 최근 1년뿐이다. 식약처 통계에 따르면 두 성분을 함유한 제제의 생산 규모는 2010년 365억8000만 원에서 2014년 704억여 원으로 급증했다 2015년 635억여 원으로 9.7% 줄었다(표 참조). 또한 마약류에 RFID를 부착하더라도 의료기관에서 다른 환자 명의를 빌려 불법처방하거나, 인터넷에서 개인 간 거래를 하는 것까지 완벽하게 막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의 실효성을 예측하는 시범사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 강남구약사회 관계자는 식약처가 2015년 시행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시범사업에 대해 “참여율이 저조하고 기간도 짧아 시범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리더기 불량, 프로그램 충돌 문제로 마약류를 취급하는 36개 약국 가운데 두세 곳이 참여했을 뿐이다. 7~11월 시행되는 시범사업도 똑같은 문제를 겪을 것으로 판단해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의 건강권이 달린 문제지만 의사 및 약사 단체는 공식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식약처 조치에 대해 공식 입장을 표명하기 어렵다”며 “우리 단체 대신 식약처나 대한의사협회 측 의견을 참고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이번 조치에 대한 공식 성명을 아직 내놓지 않았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의약업계의 이해관계 충돌 때문에 협회 차원에서 공식 입장을 내놓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대변인은 “비만치료제의 인기가 정점에 달하던 6~7년 전보다 국민 인식이 개선됐다고 본다. 약물 오·남용의 위해성을 소비자가 어느 정도 인지하는 만큼 무분별한 복용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사들은 비만치료제 오·남용을 방지하려면 의료계와 환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경희 교수는 “일부 환자가 비만을 병이 아닌 미용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문제”라며 “의사가 3개월 치만 처방해도 환자가 여러 병원을 다니며 장기간 처방받아 복용하면 막을 길이 없다. 비만이 아닌 사람이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행태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성남 원장은 “펜터민, 펜디메트라진은 장기 복용 시 중독성이 우려된다. 따라서 의사는 반드시 해당 제제의 중독성에 대한 지식, 경험을 갖고 처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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