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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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이렇게 보았다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2-27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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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는 이렇게 보았다
    알아먹지도 못할 영화평론에 주눅 드신 분, 영화 보고 나오면 바로 줄거리 까먹는 분들, 영화를 빙자하여 사실은 자기 얘기가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분들(여기까지는 김영하씨의 표현이다). 그런 이들이 좋아할 영화책이 나왔다.

    김용택, 김영하, 김용희 3명의 김씨 모두 영화판 밖 사람들이다.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이니 영화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는 못했다. 어쨌든 그들은 모두 영화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김영하씨, 지난 3년 참 열심히 영화를 보고 썼다.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영화면에 소위 칼럼이라는 것을 썼다. 그런데 그 칼럼의 내용이란 게 95%가 영화와 관계 없는 이야기고, 정작 작품에 대한 얘기는 한두 줄로 끝나버린다.

    이런 식이다. 니콜 키드먼(그레이스)의 창백한 아름다움을 강조했던 영화 ‘디 아더스’에서 그레이스가 두 아이를 끌어안고 절망적으로 되뇌던 대사 “This house is ours.”(이 집은 우리 집이야!)를 듣는 순간 20여년전13평짜리 아파트를 지키려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쿠바 음악인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필름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다가, 즐거우면서도 어쩐지 서글펐던 추억의 TV 프로그램 ‘장수만세’를 떠올린 것 역시 김영하답다. 장만위가 출연한 ‘화양연화’에 대해 재미없다고 하느냐, 재미있다고 하느냐를 20대와 30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도 마음에 든다. 가끔 훌쩍 건너뛰는 그의 연상기법이 따라가기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런데 영화칼럼으로 읽을 때는 짜증이 나던 김영하식 영화읽기가 ‘김영하·이우일의 영화 이야기’라는 한 권의 책으로 보니 정겹다. 이우일의 행간을, 아니 그림 사이를 읽게 하는 발칙한 일러스트와 멋진 한 쌍을 이룬다. 이 책이 출고되던 날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서 비소설이냐 예술이냐 분류법을 놓고 우왕좌왕하다 결국 독자가 책을 사러 왔는데 팔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냥 ‘영화’ 두 글자를 빼고 ‘김영하의 이야기’로 읽으면 마음이 편하다.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 2편이 나왔다. 주말이면 아내의 손을 잡고 영화관을 찾는 시인의 영화평에 미장센이 어쩌구 롱테이크가 어쩌구 하는말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예리하다. 곽경택 감독이 ‘친구’에 이어 내놓은 ‘챔피언’을 보면서 그는 모든 장치, 이야기의 전개, 배우의 연기가 치밀하게 계산돼 있음을 눈치채고, 인간을 바라보는 감독의 따사로운 시선을 엿본다. 그러나 관객들은 외면했다. 김용택 시인과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들이 착하디 착하게 나오는 이 영화는 너무 밋밋하다 못해 심심하다. 영화 뒤끝에는 아무것도 없이, 20년 전 죽은 김득구만 자꾸 생각났다.”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는 두 번 보았다. 두 번째는 일흔다섯 노모와 함께였다. 나라에서 공짜로 보여준 영화 ‘시집가는 날’ ‘청년 이승만’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후 영화를 본 적이 없는 어머니가 이 영화를 보고 이감독과 통화를 하게 됐다. 대뜸 수화기를 잡은 어머니. “하이고, 영화 만드신 선생님이다요? 어쩌면 그렇게 영화를 잘 만들었다요. 어쩌면 그렇게 옷도 옛날 옷이고, 다무락도 그렇게 영그락나게 똑같고, 아무튼지 재미있게 봤소. 나중에 또 하나 만드시오. 좋은 영화 맹그러 나까장 보게 해서 고맙소.” 어머니와 감독의 통화내용을 들으며 시인과 아내는 그 자리에 쓰러져 웃는다.

    문학평론가는 소설처럼 영화를 읽고 분석한다. 김용희 교수(평택대·국문학)는 ‘천 개의 거울’에서 팬터지, 일상성, 폭력성, 여성성, 에로스와 포르노, 유토피아라는 쟁점들을 갖고 영화 속으로 들어갔다. ‘반지의 제왕’을 길게, ‘매트릭스’를 짧게 읽어가며 그는 “영상은 사유의 새로운 확장”(영상이 사유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입장에 반하여)이라고 결론짓는다. 마법의 공간은 인터넷을 통해 21세기에 우리를 다시 방문했고 그것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부활했다. 바로 ‘반지의 제왕’ 아닌가. 이제는 지겨워지기 시작한 조폭영화에 대해 그는 “싸우지 않고 어떻게 누구인지 알 수 있지?”라며 위로한다. ‘조폭 코미디의 풍자와 웃음이 자본주의의 참혹한 중력감에 대한 공격적 파괴’라면 감독들이 조폭에 집착하는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다.

    김영하·이우일의 영화 이야기/ 마음산책 펴냄/ 214쪽/ 9500원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 2/ 이룸 펴냄/ 191쪽/ 9700원

    김용희의 영화읽기 천 개의 거울/ 생각의 나무 펴냄/ 239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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