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부터 24일까지 경기 이천시 지산리조트에서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밸리록)이 열렸다. 일본 후지록페스티벌과 연계하기에 국내 페스티벌 가운데 가장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밸리록은 그럼에도 늘 문제에 시달렸다. 운영과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웠다. 너무 더웠다. 최고의 불쾌지수에도, 그러나 밸리록은 쾌적했다. 셔틀버스 운영, 주변 교통 통제, 숙소가 포함된 패키지 티켓 등 그동안의 문제점이 한 방에 해결됐다. 그뿐 아니었다. ‘아츠(arts)’가 페스티벌 이름에 포함된 이유를 증명하듯, 디자인과 그래픽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시작부터 함께하며 행사장 풍경에 볼거리를 더했다. 주최사인 CJ E&M과 관련 회사들의 부스도 대폭 줄이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배치해 ‘돈 냄새 난다’는 비아냥거림에서 자유로워졌다. 따라서 관객은 페스티벌을 즐기는 데만 전념할 수 있었다.
사흘간 페스티벌을 채운 라인업은 다채로웠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제드, 디스클로저가 메인 스테이지 헤드라이너(headliner·주요 가수)를 장식했으며 이소라, 세카이노 오와리, 트래비스가 서브 스테이지의 마지막에 섰다. 비중의 크고 작음, 무대와 서는 시간에 상관없이 모든 팀이 최고 역량을 쏟아낸 건 당연했다. 관객들은 뙤약볕을 버티며 땀을 쏟아냈다. 한국 관객의 트레이드마크인 ‘떼창’도 폭발했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였던 디스클로저의 공연이 끝나고 하늘 위로 불꽃이 솟을 때, 비로소 페스티벌의 성공적인 끝을 알리는 세리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밸리록이 가진 또 하나의 의미는 ‘음악의 현재’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첫날 헤드라이너였던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다. 2002년 이후 14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지금보다 록이 음악산업의 중심부에 있었고, 한국에서도 많은 이가 록을 들었다. 그들에게 영향받아 음악을 시작한 이도 적잖다. 그 시대의 젊은 세대에게 록페스티벌이란 하나의 로망이자 숙원이었다. 지금의 페스티벌을 만들어낸 것도 그들이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지금, 그 세대는 누가 뭐래도 ‘어른’이 됐다. 60년대 초반생들인 밴드 멤버들 역시 50대 중반이 됐다. 따라서 그들의 공연은 밴드에게나 관객에게나 노스탤지어의 소환일 수밖에 없다. 이 노스탤지어는 현재를 자각하게 한다. 90년대가, 혹은 2002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사실 말이다.
다음 날 제드의 공연은 이 자각을 더욱 강화했다. 록페스티벌에서는 일렉트로닉 계열 음악인이 종종 공연을 한다. 단, 그동안 그들은 무대에서 라이브 믹싱을 하거나, 직접 노래하거나, 미디어 아트와 결합을 통해 무대 중심에 ‘사람’이 있음을 확인해주곤 했다. 하지만 제드는 이 불문율을 가뿐히 무시했다. USB 저장장치에 담아온 음악을 그저 플레이하고 있다 해도 믿을 만큼 ‘공연자’보다는 ‘디제이’에 가까웠다. EDM페스티벌에서야 일상적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록페스티벌에는 어울리지 않는 무대였다. 하지만 전날에 비해 대폭 어려진 관객들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녹음된 노래를 재생하는 것뿐인데도 엄청난 떼창이 울려 퍼졌고 온 몸과 마음으로 열광했다.
어떤 이들은 ‘요즘 애들이란…’ 하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어차피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 공연은 엔터테인먼트, 즉 즐거움이다.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아티스트의 공연을 거대한 무대에서 거대한 소리로 보고 듣는 건 똑같다. 무대 위에 있는 뮤지션이 무엇을 하든 별로 중요하지 않아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차이랄까. 어릴 때부터 디지털로 만든 음악을 디지털 파일로 디지털 기기를 통해 듣고 댄스클럽에서 디지털 파일로 음악을 트는 디제이 문화를 즐기며 자란 세대에게 공연이란, 페스티벌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