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세일’이라고 적힌 포스터에 발걸음은 자석처럼 매장 안으로 향합니다. 딱히 살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세일 포스터 한 장에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팁 문화가 일상적인 미국 식당에서는 종업원의 외모 수준에 따라 팁 액수가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잘생긴 종업원이 일반 직원보다 팁을 40% 더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참 비합리적인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기존 경제학은 사람을 합리적 이성의 존재라고 전제합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가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반론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무의식 마케팅’ 또한 출발점이 거기입니다. 사람의 행동은 매번 체계적인 판단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블랙박스 같은 무의식 체계의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기에 성공적인 마케팅을 위해서는 무의식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예컨대 고객 리서치 결과 “선물용으로 좋겠다”는 반응은 ‘내 돈 주고는 안 사겠다’는 무의식의 표현입니다. “젊은 사람들한테 좋겠다”는 반응은 ‘나처럼 나이 든 사람들한테는 별로다’라는 의미지요.
그렇다면 이런 무의식은 의식과는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을까요. 의식의 본질에 대한 연구 중 대표적인 두 가지가 소위 ‘대통령론’과 ‘대변인론’입니다. ‘대통령론’은 의식이 국가의 대통령 같은 기능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통령(=의식)은 거대 정부 관료 네트워크(=무의식)의 도움을 받지만 중요한 결정은 대통령이 직접 합니다. 대통령 역시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곤경에 처할 수 있지요. 이게 의식을 바라보는 ‘대통령론’의 뼈대입니다. 반면 ‘대변인론’은 의식이 그렇게 결정적인 기능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어떤 기능에도 관여하지 않는다는 게 요지입니다. 대통령(=무의식) 집무실에서 일어나는 상당수 이슈에 직접 관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러 정황을 종합해 가장 합리적으로 정부(=무의식)를 대변하는 대변인(=의식)에 의식을 비유한 겁니다(정성희의 ‘무의식 마케팅’ 참조).
중요한 건, 두 가지 주장 모두 의식이 모든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학계에서도 대변인론에 무게를 좀 더 싣습니다. 그만큼 무의식이 중요하다는 방증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제럴드 잘트먼 하버드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는 “시장조사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어도 신제품 중 80%는 결국 실패한다”고 잘라 말합니다. 척도화된 설문조사 같은 정량적 방법이나 낡은 정성적 조사방법으로 알아낼 수 있는 소비자 욕구는 5%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북극곰 옆에 있는 음료는 왠지 시원해 보이고, 코알라 옆에 있는 음료는 따뜻할 것 같다고 대답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봐야 소용없습니다. 관건은 우리 자신도 이해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무의식입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비용과 이득만 계산해 경제적, 사회적 판단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마케팅 리서치는 무의미하다고 일갈하며 스스로의 직관에 의존했던 고(故) 스티브 잡스, 이래저래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무의식, 앞으로 좀 의식하고 살아야겠습니다.
보통마케터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핀란드 알토대(옛 헬싱키경제대) 대학원 MBA를 마쳤다.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 강의와 자문, 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 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