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공무원에게 올 한 해는 지옥 불에 갇혀 있는 느낌일 것이다. 4~5월에는 가습기 살균제 독성물질 사태 때문에 홍역을 앓았고, 5~6월에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한참을 고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환경부에 6월 15일 새로운 고난이 하나 추가됐다. 공기청정기와 에어컨 항균필터 일부에서 OIT(옥틸이소티아졸론·CMIT/MIT 계열 화학물질)라는 독성물질이 검출된 것.
하지만 이런 고난은 모두 환경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제대로 대처만 했더라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앗아가는 참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환경부는 올해 발생한 그 어떤 사안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2012년 해당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하며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이 확인된 바 있으며, 미세먼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매년 중국발(發) 황사가 닥칠 때마다 거론되는 문제였다.
공기청정기와 에어컨 항균필터에서 발견된 OIT도 마찬가지다. 환경부는 2014년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항균필터에 사용되는 화학물질 OIT를 독성물질로 지정한 바 있다. 그러나 지정 후 후속 조치를 따로 취하지 않아 OIT를 사용한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항균필터가 계속 유통돼온 것. OIT 항균필터 문제에 대한 환경부의 조사 결과 발표 내용이 완전히 바뀐 점도 국민의 불안을 증폭했다. 7월 20일 “OIT가 사용된 항균필터에서 OIT가 방출되는 것을 확인해 즉시 제품명을 공개하고 회수하겠다”고 밝힌 환경부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26일에는 “OIT가 사용된 항균필터가 정상 사용 환경에서는 위험하지 않다”고 발표한 것이다.
문제의 항균필터는 대부분 ‘3M’ 제품이다. 환경부가 7월 20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판 중인 공기청정기·차량용 에어컨 중 61개, 가정용 에어컨 중 27개에 OIT가 들어간 항균필터가 내장돼 있다. 업계에 따르면 3M은 한국에서만 OIT가 사용된 항균필터를 제조 및 유통해왔다고 한다. 한국3M 관계자는 “한국시장은 해외시장과 달리 항균기능이 추가된 필터를 계속 요구해 항균필터를 국내에서 개발 및 유통하게 됐다”고 밝혔다.
환경부 늑장 대응, OIT 필터 한국만 사용
OIT는 곰팡이나 세균 등을 죽일 때 쓰는 물질로, 2003년 항균제품이 유행하면서 필터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OIT가 인체에 유해한 독성물질이라는 점. 이 물질을 처음 개발한 ‘롬앤드하스(Rohm and Haas)’사가 2009년 10월 1일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OIT는 피부 접촉이나 안구 접촉, 흡기, 섭취를 모두 피해야 할 만큼 심각한 독성을 가진 물질’이라고 명시돼 있다.환경부가 OIT의 독성을 안 것은 OIT가 사용된 항균필터가 유통된 지 한참이 지난 2014년이었다. 환경부는 국립환경과학원의 2013년 실험 보고서를 통해 OIT의 독성을 확인했다. 실험 보고서에는 ‘OIT가 경구 및 피부 접촉 시 독성이 강하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환경부는 이듬해인 2014년 OIT를 독성물질로 지정했다. 새로운 독성물질이 지정됐으니 환경부가 해야 할 당연한 후속 조치는 이 물질이 어떤 제품에 포함됐는지,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등을 알아보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환경부는 OIT를 독성물질로 규정하고 어떠한 후속 조치도 하지 않았다. ‘주간동아’ 취재 결과 2014년 이후에도 3M이 계속 OIT를 사용한 항균필터를 제조 및 유통하고 있었지만 환경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관리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조사에 질의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3M 한 관계자는 “2014년 독성물질로 지정된 후에도 필터에 OIT를 사용하는 문제와 관련해 환경부의 지침이 내려온 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OIT를 독성물질로 지정해놓고도 관련 물질을 사용하는 업체로부터 어떤 해명도 듣지 않았던 것. 업계와 관련 학계에서 OIT가 독성물질로 지정된 이후 OIT 사용 항균필터 제품이 2년 동안 시중에 유통된 부분에 대해 감사원 감사나 사정기관 조사가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환경부가 뒤늦게 OIT 사용 실태를 확인하고 나선 것도 언론의 지적이 있은 다음이었다. 6월 14일 언론보도를 통해 공기청정기 필터에서 OIT가 검출된 사실이 알려지자 환경부는 그다음 날인 15일 “시중에서 판매되는 공기청정기 필터의 성분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환경부는 “필터는 환경부 관리품목이 아니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실시하고 있는 전수조사 대상에 필터 성분을 넣기로 했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7월 20일 OIT가 사용된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항균필터의 위해성 평가 결과를 일부 발표했다. 환경부는 이날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실험 전후 필터 내 OIT 함량을 비교, 분석한 내용을 적용해 위해성을 평가한 결과 일부 공기청정기와 차량용 에어컨 내 필터의 위해가 우려되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환경부는 “필터 사용 과정에서 OIT가 방출되는 것이 확인된 만큼 예방적 조치로 선제적으로 논란이 된 제품명을 공개하고 관계부처에 회수 권고 등의 조치를 내릴 예정”이라며 문제의 필터가 사용된 제품 명단을 공개했다.
7월 20일 환경부의 발표를 지켜본 대다수 소비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공기청정기가 환경부가 발표한 OIT 사용 제품 명단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 의왕시에 사는 이모(36) 씨는 “제조사에 전화로 문의했으나 제조사에서는 해당 제품에는 OIT 사용 항균필터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명했다”고 밝혔다. 황당한 일을 겪은 것은 이씨만이 아니다.
제조 명단 오류, 위해성 번복
제조사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환경부의 OIT 사용 제품 명단에 일부 오류가 있었던 것. 공기청정기 제조사 관계자는 “환경부가 발표한 명단에는 OIT 사용 항균필터가 포함된 제품의 제품번호가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 제품번호는 비슷하지만 OIT 사용 항균필터가 포함되지 않은 제품까지 교환해달라는 소비자의 전화가 잇달았다. 환경부가 필터 제조사를 통해서만 검증과정을 거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환경부는 7월 22일 제품 명단을 일부 수정해 다시 공개했다. 환경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OIT 사용 항균필터 제조사와 공기청정기, 에어컨 제조사의 상호검증을 거쳐 OIT 함유 여부를 최종 확인하고 이를 필터 제품정보에 반영했다”고 발표했다.
환경부의 갈팡질팡 대응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7월 26일 환경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OIT 사용 항균필터가 포함된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라도 정상적으로 사용할 경우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며 기존 주장을 완전히 번복했다. 환경부는 이날 발표를 통해 “초기 위해성 평가에서 OIT 함량이 높은 공기청정기 필터(4종)와 차량용 에어컨 필터(3종)의 사용 전후 필터 내 OIT 함량이 25~76%까지 감소해 우려가 제기됐지만, 실험 결과 공기 중 OIT 농도는 정량 한계 이하로 검출됐다. 기기를 장시간 사용하지 않거나 자주 환기하면 위해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환경부의 위해성 번복 발표에 제조사와 소비자는 불안하기만 하다. 소비자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두 번이나 (환경부가) 입장을 번복하니 발표 내용을 믿을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업계는 “정부 발표가 계속 될수록 소비자의 불안감만 깊어지고 그 불안감을 감당하는 것은 업계”라며 답답해하고 있다. ‘주간동아’는 환경부의 해명을 듣고자 사흘간 연락을 취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