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세계를 뒤흔든 게임이 출현했다.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캐릭터 ‘포켓몬’을 소재로 한 모바일 게임 ‘포켓몬GO’다. 이 게임은 미주지역에서 출시 하루 만에 모바일 게임 1위를 차지하고, 출시 엿새 만에 가입자 2100만 명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포켓몬GO 캐릭터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닌텐도의 주가는 게임 출시 당일 21.82% 급등했고, 2주가 채 되지 않아 기업 시가총액이 2배 이상 늘었다. 현재 포켓몬GO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와츠앱 등을 넘어서는 미국 ‘국민 애플리케이션(앱)’ 위상에 오른 상태다. 이를 활용한 크고 작은 부가 사업모델도 단시간 내 등장했고, 포켓몬GO 플레이어가 범죄 대상이 되거나 교통사고 등을 당하는 등 사회적 이슈까지 생기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게임이 정식 출시되지 않은 한국도 이 현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강원 속초시 등 일부 지역에서 게임이 가능하다는 소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속초로 몰려들었다. 게이머를 대상으로 한 테마여행이 기획됐고 포켓몬GO 게임이 가능한 지역, 이른바 ‘포세권’이 ‘포켓몬 특수’를 누리고 있다.
대체 포켓몬GO가 기존 게임과 무엇이 다르기에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포켓몬GO의 가장 큰 특징은 게임 이용자의 실제 위치를 기반 삼아 몬스터가 출현한다는 점이다. 몬스터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장소와 명소에 출현한다. 또 이 게임은 플레이어의 이동거리를 점수로 환산해 제공한다. 최근 가상현실(VR)과 함께 화제를 모으고 있는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스마트폰 카메라로 실제 환경에서 몬스터를 잡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도 독특하다. 한마디로, 포켓몬GO는 야외에서 돌아다니며 하는 게임이다. 포켓몬GO 개발자 존 한케는 이에 대해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 다른 이들과 어울릴 만한 동기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덕에 포켓몬GO 플레이어는 실내에서 나와 여행을 하거나 명소를 방문하고 사람을 만나며 게임을 즐긴다.
사실 이러한 AR 기술을 이용한 게임이 포켓몬GO가 최초는 아니다. 예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고, 한국에서도 스마트폰이 막 출현하던 무렵부터 이러한 시도가 진행됐다. KT는 2011년 AR 기술을 적용해 몬스터를 잡으면 혜택을 주는 ‘올레 캐치캐치’라는 마케팅 플랫폼을 내놓은 적이 있다. 해당 앱은 사용자 120만 명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쿠폰 90만 장(100억 원 상당)이 배포되는 등 가시적 성과를 보이기도 했으나, 끝내 시장에 자리 잡지 못하고 2013년 2월 1일 서비스가 종료됐다.
KT, SK텔레콤 증강현실 서비스는 줄줄이 종료
이 밖에도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한 ‘모바일 혼합현실 기반 체험 투어 기술’, 증강현실 기반의 SNS였던 SK텔레콤 ‘오브제’, 그리고 지금은 인텔에 인수된 올라웍스의 지역정보서비스 ‘스캔서치’까지 우리나라에서도 AR 기술이 크게 관심을 끌던 시절이 있었다. 2010년대 초반에 특히 붐이 일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린이 도서와 함께 제공되는 교육용 서비스 정도를 제외하고 모바일 기반의 증강현실 서비스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면 포켓몬GO와 과거 우리나라가 개발한 서비스는 대체 무엇이 다를까.
첫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포켓몬 캐릭터와 시나리오가 가진 영향력이 기존 국내 서비스에 비해 월등하다는 점이다. 포켓몬은 슈퍼마리오와 함께 닌텐도를 대표하는 캐릭터 상품이다. 20년 전 몬스터 150여 종으로 시작한 동명의 비디오 게임은 현재 700여 종의 몬스터 캐릭터를 지닌 방대한 콘텐츠가 됐다. 이미 포켓몬을 주제로 한 10개 이상의 게임 타이틀과 수백여 편의 애니메이션 및 극장용 영화, 수천 개의 캐릭터 상품이 존재한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후반 포켓몬 애니메이션이 TV에서 방영됐고, 해당 캐릭터 스티커가 포함된 빵이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친숙함이 사람들을 포켓몬GO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또 이 유명한 포켓몬 시나리오가 위치기반 게임 콘셉트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포켓몬GO의 인기 원인이다. ‘포켓’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포켓몬은 휴대할 수 있는 몬스터 친구다. 스마트폰과 잘 어울린다. 게다가 포켓몬 시나리오의 기본 바탕이 여행과 모험이라는 점에서 위치기반 게임이 가진 특성과도 딱 들어맞는다. 여기에 AR 기술이 가상이 아닌 실제감을 더하면서, 어린 시절 포켓몬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란 20, 30대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요소까지 갖췄다. 최근 SNS에 포켓몬 게임 인증사진을 올리는 계층은 대부분 성인이다. 이 덕에 포켓몬은 세계적으로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게 두루 사랑받는 게임이 됐다.
포켓몬GO와 여느 증강현실 서비스의 두 번째 차이점은 포켓몬GO가 실제 환경정보에 가상정보를 입히는 AR 기술 본연의 가치를 설득력 있게 잘 살리는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KT ‘올레 캐치캐치’의 경우 강력한 캐릭터와 시나리오가 없었을 뿐 아니라, 본래 목적이 마케팅 플랫폼이다 보니 잠깐의 경험과 혜택만 목적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광고주나 광고를 소비하는 고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그동안 박물관 또는 관광지 등에서 활용해온 AR 기술도 지역적 한계가 뚜렷해 해당 지역에서만 잠깐 즐기는 신기한 경험 수준에 머물렀다. SK텔레콤 ‘오브제’는 별자리를 중심으로 한 테마 SNS라는 콘셉트 때문에 SNS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성과 네트워크 효과 등이 약했다. 결국 기존 국내 증강현실 서비스들은 AR 기술이 갖는 가치 발굴에 실패해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도 확산에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반면 포켓몬GO는 위치에 기반을 둔 환경 정보에 포켓몬의 가상정보를 적절히 입혀 AR 기술의 가치를 잘 살리는 데 성공했다. 이 덕분에 증강현실 대중화의 포문을 여는 구실을 하게 됐다.
세계가 사랑한 캐릭터의 힘
그렇다면 포켓몬GO가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은 뭘까. 벌써부터 ‘한국형 포켓몬GO’를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현재 한국이 증강현실이나 위치기반서비스 기술력 면에서 결코 세계 수준에 뒤진다고 생각지 않는다. 먼저 AR 기술은 스마트폰의 시작과 거의 역사를 함께했고, 현재도 SK텔레콤이 구글의 AR 기술 관련 ‘프로젝트 탱고(tango)’에 긴밀히 관여하고 있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 아니다. VR 분야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 아직까지는 삼성전자 기어VR일 만큼 한국의 기술 수준은 높다.위치기반서비스 기술은 골목길의 속도 방지 턱까지 지도에 표시될 정도로 정교한 지도를 갖고 있으며, 아이나비는 AR 기술을 응용한 내비게이션을 상용화한 상태다. 상황인지 같은 AR의 핵심 기술 역량이 다소 부족하긴 하지만, 우리가 포켓몬GO 같은 서비스를 만드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그런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빅히트작을 탄생시키려면 첫째, 포켓몬처럼 세계적으로 다양한 연령층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 콘텐츠가 필요하다. 포켓몬은 20년 동안 같은 캐릭터를 가지고 다양한 연령층에 다각도로 접근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가진 글로벌 캐릭터는 ‘뽀로로’와 ‘라바’ 같은 저연령층 대상이 전부라 시장이 한정적이며, 캐릭터의 다양한 응용도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포켓몬 같은 캐릭터 콘텐츠를 확보하려면 게임이나 웹툰, 애니메이션,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산업과 캐릭터 지적재산권(IP)산업 발전이 선행돼야 하며, 기술과 콘텐츠의 융합 시도도 더 빈번해져야 할 것이다.
둘째, 게임산업계에서 AR 기술과 위치정보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한때는 국내 거의 모든 게임기업이 온라인 게임만 개발했고, 최근에는 비슷비슷한 모바일 게임만 찍어내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검증되고 안전한 게임 개발만 선호해 국내 출시 게임이 모두 유사해졌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TV 광고 같은 마케팅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기업의 자본 의존성이 심화해 새롭고 혁신적인 게임 출현이 더욱 어려워졌다. 디지털콘텐츠 시장에서는 창의성이 큰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기업들이 새로운 시도와 개발로 콘텐츠의 다양성을 지켜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