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 정치를 그만두겠다. 대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20대 총선을 하루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홍걸 씨(사진)와 함께 광주에서 이 같은 ‘광주선언’을 했다. 총선 결과는 더민주 참패. 호남 전체 의석 28석 가운데 새누리당 2석, 더민주 3석, 국민의당 23석이었다. 총선 결과로만 보면 ‘호남이 문재인을 버렸다’는 평가가 나올 법한 상황.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이가 더민주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다. 문 전 대표와 김 위원장은 총선 닷새 뒤인 4월 18일 전남 하의도에 있는 김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고 이튿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도 함께 참배했다. 호남에서 참패한 문 전 대표가 김 위원장을 방패 삼아 정치적 재기에 나섰다는 얘기가 나온 배경이다. 1월 문 전 대표가 영입해 더민주에 입당한 김 위원장은 문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서 경쟁자가 될 만한 인사들을 상대하는 저격수로 나서 ‘문재인 호위무사’로 통한다.
‘반기문 (대선) 완주 가능성 낮다.’
‘손학규 (더민주) 안 와도 정권교체 가능.’
‘안철수, 남의 당 신경 쓰기 전 당내 문제나 잘 정리하라.’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를 앞두고 여야 유력 차기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의 글을 올리고 있는 것. 김 위원장이 이처럼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는 이유는 뭘까. 6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오피스텔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뭔가. 문재인 전 대표가 (입당을) 제안했나.
“지난해 문 전 대표가 (입당을) 제안한 적은 있지만, 꼭 그 이유 때문에 입당했다고 할 수는 없다.”
▼ 문 전 대표가 입당을 제안한 게 지난해 4월 재·보궐선거(재보선) 이후인가.
“그즈음이다. 그때는 정치할 생각이 없어 완곡하게 ‘생각해보겠다’고만 했다. 당시에는 야권이 분열되거나 분당 상황에 놓여 있지도 않았고, 내가 한쪽을 편드는 것처럼 비치는 일도 곤란하다고….”
“한쪽 편드는 것 곤란하다”
▼ 친노(친노무현), 비노(비노무현)계 갈등 상황을 의식해서인가.“정권교체를 위한 대의명분이 있다면 돕겠다고 했다. 마음이 달라진 것은 문 전 대표 때문이 아니다. 연초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 상임대표가 어머니(이희호 여사)를 만난 뒤 ‘어머니가 (안 대표를) 지지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또 녹취록까지 나오면서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에서 이기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인간적 도리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김 위원장은 자신이 정계에 입문한 배경을 “총선에서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심판해야 하는데, 오히려 야권분열로 여당이 어부지리를 하게 생겨 도저히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권노갑 고문 등 과거 동교동계 인사들과 왜 반대 길을 가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동교동계와 다른 노선을 취한 것에 대해 “사적 인연보다 공적 책임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결과적으로 ‘문재인 구하기’로 비친다.
“문 전 대표를 (내가) 살렸다는 표현이 적합한지 모르겠다. 문 전 대표뿐 아니라 우리 당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분들은 모두 우리 당의 소중한 자산이다. 내년 (대선) 경선이 끝날 때까지 상처 입지 않게 (대선주자를) 보호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당원이 할 일이다. 그래야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잘못할 때는 쓴소리도 해야겠지만.”
▼ 20대 총선에서 호남은 더민주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국민의당을 선택했다. ‘정계 은퇴’ ‘대선 불출마’ 약속을 지켜야 할 문 전 대표가 김 위원장을 앞세워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 한다는 비판이 많다.
“문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연장되지 않을 게 나를 앞세워 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 전 대표가 하기 나름이다. 내가 (더민주를) 탈당한 분들을 비판한 이유는 여권에 어부지리를 줄 수 있는데도 의원 배지 한번 더 달려고 분당했다는 점과, 아버지(김대중 전 대통령)가 하셨던 정치와는 전혀 다른 정치를 하면서도 ‘김대중 정신’을 계승한 적통이라고 주장해서다. 상대방을 비난해 반사이익을 챙기거나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스스로 뭘 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선거운동 대신 네거티브 선거운동만 하는 것은 김대중식 정치가 아니다. 물론 문 전 대표에게 잘못이 없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당대표로서 당내에서 벌어진 일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1년 동안 당이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데 대한 책임이 있다.”
더민주 혼내려 국민의당 도구로 이용
▼ 호남은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를 심판했다.문 전 대표가 책임져야 할 대목 아닌가.
“호남이 (더민주를) 버렸다고 생각지 않는다. 총선 이후 호남에서 들은 얘기는 ‘더민주에 회초리를 때렸다. 국민의당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더민주를 혼내고자 국민의당을 잠시 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최근 호남에서 (정당) 지지율 추이가 그렇지 않은가. 물론 호남에 가서 얘기를 들어보면 문 전 대표에 대한 반감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물러나라’고 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호남 여론은 (총선에서) 혼을 냈으니 문 전 대표도 그렇고, (더민주) 당도 그렇고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정계 은퇴, 대선 불출마라는) 말에 책임지고 당장 물러나라는 분위기는 아니다.”
▼ 공천과 총선 과정에서 친노가 친문(친문재인)으로 바뀌었다는 지적이 많다.
“누가 친노이고 친문인지 모른다. 그런 계파에는 관심이 없다.”
▼ 어머니와 더민주 입당을 상의했나.
“말씀은 드렸다.”
▼ 뭐라고 하시던가.
“염려하셨다. (정치에) 잘못 발을 디디면 다칠 수 있다고. 그런 염려를 반대라고 한다면 적합하지 않다. ‘금배지에 눈이 멀어 어머니 뜻을 거스르고 입당했다’는 얘기는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오해가 풀리지 않았나.”
▼ 어머니는 자주 찾아뵙나.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찾아뵙는다.”
▼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객원교수로 일하나.
“계약기간이 끝났다.”
▼ 그럼 경제활동은?
“그동안 중국 쪽과 교류해왔는데, 지금은 잠시 쉬고 있다.”
▼ 주로 어떤 일을 했나.
“중국에서 한국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컨설팅을 하고, 문화교류와 학술교류를 도왔다.”
▼ 정치는 계속할 생각인가.
“그렇다.”
▼ 내년 재보선에 출마하나.
“뭐라 말씀드릴 수 없다. 차근차근 준비해나갈 뿐이다.”
지금 정당은 ‘정치 자영업자의 연합체’
▼ 더민주가 수권정당이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정당은 당원과 지지자가 주인이 돼야 하는데, 소수 지도부와 의원 몇 사람이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런 모습 때문에 국민이 ‘정치는 저 사람들이 하는 것’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구조부터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에 선거를 치르면서 여야 막론하고 너무 주먹구구식이라 정당이라기보다 정치 자영업자 연합체라는 느낌을 받았다.”
▼ 정치 자영업자 연합체?
“그렇게 표현하는 게 적합하다. 과도기여서인지 몰라도, 중앙당이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하고, ‘공천해줬으니 후보가 각자 알아서 당선해 오라’는 식이다. 중앙당 차원의 정책과 전략, 홍보가 실종됐다. 아버지가 정치하던 20년 전과 비교해도 어떤 점은 후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의 정당은 국고보조금으로 운영되지 않나. 국민 세금이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 내년 대선에서 여야 정권교체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총선 결과를 놓고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얘기하는데, ‘이대로 가면 이기겠구나’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 호남 민심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도 그렇지만, 여소야대 상황은 잘하면 (야권에) 약이지만, 못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여대야소 상황에서는 야당 쪽은 국정 실패 책임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책임이 생겼다. 국회에서 야당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 ‘야당이 다수가 되니까 달라지는구나. 좋아지는구나’ 하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드려야 한다. 과거 참여정부 때 정권도 잡고 의회도 다수를 점했지만 충분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대선에서 참패했고 정권을 잃은 것 아닌가. 이번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 수권정당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드려야 한다.”
▼ 앞으로 어떤 정치활동을 할 건가.
“(더민주가) 집권하는 것을 돕겠다. 과거 경험을 보면 대세론과 대안부재론을 믿고 안심했다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더민주가) 한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국제관계학 석사 김홍걸이 말하는 대북제재 실패론더불어민주당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인터뷰한 6월 14일은 마침 6·15 남북공동선언 16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하여,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6·15 남북공동선언과 남북관계를 주제로 잠시 대화를 나눴다.
▼ 내일이면 6·15 남북공동선언 16주년이다.
“해마다 6월 15일이 되면 (2000년) 당시 상황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북한에 다녀오신 뒤 굉장히 기뻐하셨다. 아버지는 죽을 고비에서 살아났을 때나 감옥에서 석방됐을 때, 심지어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도 기쁜 내색 없이 담담하셨다. 그런데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는 평생소원이던 남북 평화교류에 물꼬를 텄다고 무척 기뻐하셨다.”
김 위원장은 부친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6·25전쟁 때 인민군에 잡혀 목포교소도에서 총살당할 위기에 처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이라고 했다. DJ가 ‘동포끼리 죽이는 비극을 절대로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고 자신의 끔찍했던 경험을 동포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하고자 정치에 입문했다는 것. 김 위원장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등의 성과가 수포로 돌아간 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개성공단은 휴전선 바로 건너편에 있는 북한 군사기지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 만든 것이다. 북한 땅에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경제영토를 만든 쾌거인데, 그것을 우리 스스로 포기한 우를 범한 게 안타깝다.”
▼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해 남한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북제재가 불기피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교류해야 한다. 북한 핵개발은 한동안 멈췄다 미국에 부시정권이 들어선 뒤 재개됐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교류와 대화가 거의 없는 사이 핵개발 속도가 더 빨라졌다.”
▼ 정부는 대북제재를 위해 미국, 중국 등 세계 각국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여러 보도를 통해 드러났지만,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인 단둥에서 교역량은 (대북제재 이후)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다고 하지 않나. 중국은 북한을 조여 숨통을 막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겨 중국에 악영향이 미치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중국이 미온적이라 대북제재 효과가 없다고 보나.
“중국은 대북제재를 해도 늘 한쪽 문을 닫고 다른 쪽 문을 여는 식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문을 닫으라고 요구해도 중국은 자신들의 국익을 생각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 쿠바 등과 접촉해 북한과 거리를 벌린다고 하는데 중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소용없다. 그리고 북한에 큰 도움을 줄 수 없는 먼 나라와 틈을 벌려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조금이라도 대북제재 효과를 높이려면 아프리카나 프랑스 대신, G7 정상회의에 옵서버로 참석해 외교활동을 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대북압박이 효과가 있다면 찬성할 텐데, 이명박 정권부터 계속 압박해왔지만 효과가 없지 않았나. 현실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무조건 강하게 나가자고 하니까 미국조차 한국을 제쳐놓고 중국이나 북한과 직접 대화해 북핵문제를 풀려는 낌새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중국이 이명박 정권 때처럼 박근혜 정권에 대한 기대도 접었다고 생각한다.”
▼ 전승절 행사 참석 효과가 사라졌다.
“전승절 행사에 가서 중국 쪽에 기울었다가 다시 미국 쪽으로 확 기우는 왔다 갔다 하는 행보 때문에 중국이 서운해한 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개성공단 폐쇄 이후 나온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얘기가 중국이 박근혜 정권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드 배치는 누가 봐도 미국의 중국 견제와 일본 방어를 위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최규선 게이트? 세상물정 몰라 생긴 일, 다 잊었다”더불어민주당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그의 활동을 못마땅해하는 이들은 그가 최규선 씨와 얽혔던 과거사를 주된 이유로 든다. ‘아버지의 대통령 재임 때 정권에 부담을 줬던 사람이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 인터뷰 말미에 최씨와의 관계를 물었다.
▼ 최근 최규선 씨를 본 적이 있나.
“한두 번 마주친 적은 있지만, 교류하는 사이가 아니다.”
▼ 최근에 만난 게 언젠가.
“몇 달 됐다.”
▼ 정계 입문 전인가.
“전인지 후인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 함께 비즈니스를 하지는 않나.
“그분이 무슨 비즈니스를 하는지도 잘 모른다.”
▼ 최씨로 인해 옥고를 치렀는데….
“악감정은 없다. 내가 세상물정 몰라 생긴 일이다. 지난 일이고 이제는 다 잊었다.”
▼ 아버지의 대통령 재임 때 부담을 준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게 옳으냐는 비판이 있다.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은 과거 자기 잘못뿐 아니라, 아버지의 유지를 제대로 잇지 못한 부분도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평생 쌓아온 민주화의 업적이 무너지는데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야권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어 수권정당이 되는 데 일조하고, 정권교체가 되면 아버지의 업적을 다시 복원하는 데 노력하겠다.”
▼ ‘아버지 업적 복원’이라는 점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논리와 비슷해 보인다.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하던 독재시대의 부정적 유산 위주로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다. 최소한 박정희 정권 말기 차지철 씨가 득세하던 시기 전까지는 지금처럼 의사결정 구조가 불투명하고 인의장막에 싸여 있지 않았다. 사람을 쓰는 용인술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전혀 그런 긍정적인 부분을 닮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