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근대화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이는 그간 개최된 각종 전시회의 관람 인원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확인됐습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본 그림이라는 사전교육의 힘일 수도 있고, 역경을 극복한 서민화가 박수근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과 독창적인 창작세계를 개척한 예술혼에 대한 경외가 작용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작가는 나무와 여인이라는 소재를 내용과 양식을 조금씩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그렸습니다. 나란히 소개한 세 점의 그림 모두 ‘나무와 두 여인’이라는 동일한 제목을 가졌습니다. 제작연도는 다르지만 나무와 두 여인만 간결하게 표현한 작품이 일종의 연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맨 왼쪽 작품은 1956년, 가운데 작품은 50년대, 오른쪽 작품은 62년에 각각 제작됐습니다. 세 작품은 무슨 차이가 있고, 작가는 왜 비슷한 작품을 계속 그렸을까요. 화면 구성은 매우 단순하고 평면적입니다. 중앙에 큰 나무가 화면을 양분하고 있고, 나무 좌우로 여인이 한 명씩 있습니다. 왼쪽 아래로 아기를 등에 업은 여인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이 여인은 고개를 살짝 돌려 오른쪽을 보고 있습니다. 그 시선이 닿는 곳에는 행상인 듯한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마치 정지된 순간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왼쪽 여인은 흰색 상의와 발목만 보이는 검은색 긴 치마를 입고 주황색 포대기로 아기를 업고 있습니다. 오른쪽 여인은 노란색 저고리와 역시 발목만 보이는 거무스름한 긴 치마를 입고 있으며,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팔짱을 낀 채 지나가고 있습니다. 당시 서민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이 그림에서 친근함과 애잔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나목(裸木)’ 연작이라고도 부르는 이 그림들은 1950년대 시작돼 60년대에 이르러 절정을 이룹니다. 따라서 62년 작품은 완벽한 대칭구도를 형성하는 뛰어난 조형성, 화면의 안정성과 분명해진 선묘감, 화강암의 질감 등 여러 측면에서 앞서 그린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에 비해 좀 더 원숙미가 느껴집니다. 또한 62년 작품은 하드보드가 아닌 캔버스에 그렸고, 크기도 가로 89cm와 세로 130cm에 이르는, 박수근 작품 가운데 대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나머지 두 작품은 하드보드에 그린 것으로 크기도 27cm 미만입니다.
박수근 작품의 주인공은 대부분 여인, 아이, 노인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골 아낙네를 주로 그렸습니다. 신윤복 작품에 등장하는 미인상과는 거리가 멀죠. 이 그림에서처럼 여인들은 한결같이 아기를 업고 있거나, 머리에 짐을 이고 있거나, 빨래를 하거나 절구를 찧거나 나물을 캐는 등 부지런히 몸을 놀리고 있습니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전통적인 한국 여인, 바로 우리 어머니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