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할 때 가장 피하고 싶은 샷은 뭘까. 짧은 티샷이나 슬라이스 정도는 우습다. 시쳇말로 ‘뒤땅’, 즉 뚱뚱하게 맞았다는 ‘팻(fat)샷’일까. 공은 얼마 날아가지도 못하고 잔디만 뜯어내는 더프(duff)샷일까. 그린 주변에서의 뒤땅인 청크(chunk)는 또 얼마나 민망할까. 타이거 우즈가 지난해 초 이 샷을 반복하자 언론들은 “우즈에게 ‘칩샷 입스’가 왔다”고 호들갑을떨었다. 배상문은 지난해 프레지던츠컵 마지막 날 마지막 홀 그린 주변에서 뒤땅을 친 뒤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공 상단부에 클럽이 맞는 톱핑(topping)의 여러 샷도 쑥스럽긴 마찬가지. 뼈에 맞은 샷이라는 이름의 스컬(skull)샷, 헤드의 날에 공이 맞는 블레이드(blade)샷은 창피하기도 하지만 치고 나면 손목까지 얼얼하다. 샷이 공 제일 윗부분에 맞으면 한 번 위로 튄 뒤 몇 발짝 앞에 떨어져 또르르 구르다 멈춰 서고 만다. 이 경우를 일본식 표현으로 ‘쪼루’라 하는데, 이 샷을 하고 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빨개진다. 공이 호젤에 맞아 45도 각도로 튕겨나가는 섕크(shank)도 골퍼를 몹시 난처하게 만드는 샷 중 하나다. 혹 그 방향에 캐디나 동반자라도 서 있었다면 민망함은 둘째 치고 공에 맞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허리가 꺾어지도록 사과해도 모자랄 정도. 하지만 정작 필드에서 가장 민망한 샷은 헛스윙이다. 미국 리 트레비노가 한 개 공을 두 명이 번갈아 치는 포섬 방식의 프로암대회에 출전했을 때 일이다. VIP였던 아마추어 동반자가 바짝 긴장한 나머지 18번 홀 티잉그라운드에서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다들 뭐라 말은 못 하고 정적이 흐르던 그 순간, 트레비노가 재치 있는 말로 얼어붙은 분위기를 확 바꿨다. “괜찮아요, 파트너. 아주 좋은 라이를 넘겨주셨네요.” 그린 위에선 까르륵 웃음이 터졌다. 어쩌면 아마추어 파트너도 긴장을 풀고 함께 웃었을 것이다.
이렇듯 헛스윙은 골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샷이다. “좀 전의 것은 연습 스윙”이라고 어물쩍 넘어갔던 ‘아픈’ 기억이 있는 사람은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찌릿할 것이다. 섕크는 앞으로 얼마간은 전진한 것이지만, 헛스윙은 고스란히 한 타를 까먹는 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퍼팅에서도 헛스윙이 나온다. 1983년 브리티시오픈 3라운드 14번 홀에서 헤일 어윈은 홀컵에서 10cm 떨어진 퍼팅에서 헛스윙을 했다. 이어진 어윈의 반응은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안타깝게 했다. 어윈은 처음에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더니 잠시 현실을 부정하고, 퍼팅을 쓸어서 집어넣은 뒤 마치 ‘날 좀 이해해줘’라는 표정으로 동료 선수들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절망에 휩싸였다. 부끄러움과 민망함과 분노가 뒤섞인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린을 내려갔다. 그 대회에서 어윈은 톰 왓슨에게 한 타 차로 져 2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프로선수들이 헛스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골프계의 대표적인 심리학자 밥 로텔라 박사는 세 가지 원인을 제시했다.
첫째 부주의다. 어윈의 경우는 퍼팅 스트로크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서두르다 참사를 낳았다. 당연히 넣을 거라는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퍼팅을 하다 일을 낸 것. 둘째는 욕심이다. 미국 토리파인스골프클럽 12번 홀에서 깊은 러프에 빠진 필 미컬슨은 하이브리드샷을 시도하다 결국 헛스윙을 했다. 최악의 라이 상황에서 칩샷으로 빠져나오는 대신 무턱대고 그린을 노린 게 패착이었다. 그전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그는 그린에 공을 붙여 파를 잡을 것만 생각했지 공이 러프를 못 벗어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마지막은 멍청함 때문이다. 데이비스 러브 3세는 2006년 PGA챔피언십에서 그린 옆 깊은 러프에 빠진 공을 빼내려고 엄청난 힘으로 스윙을 했지만 공중에는 풀만 무수히 흩날렸다. 영웅적 샷으로 상황을 만회하려던 멍청함이 골프의 기초적 상식조차 무시하게 만든 것.
이렇듯 부주의, 욕심, 멍청함이 필드에서 만나면 반드시 헛스윙을 하기 마련이다. 만약 이 세가지가 일상에서 마주친다면? 필드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은 불문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