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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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사피엔스×사이언스=인공지능?

사람보다 더 사람 같네

현실에선 알고리즘대로 움직이는 자동화 장치일 뿐

  •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입력2016-03-14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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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살아 있어. 죽기 싫어.”
    지난해 초 개봉한 영화 ‘채피’의 주인공 로봇은 사람 못지않은 완벽한 지능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두려움과 공포를 알고, 동료의식과 애정도 갖고 있다. 며칠뿐인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스스로 존재를 인식하고 살아남으려 발버둥 친다. 이 영화가 개봉되자 국내 누리꾼 사이에선 ‘만약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장치가 현실에 등장한다면 우리는 그 기계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인터넷기업 구글 딥마인드가 제작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세계 정상의 바둑기사 이세돌에게 도전장을 던지면서 ‘컴퓨터가 세계 최고 수준의 사람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공지능에 다소 ‘두려움’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인공지능이 인류에 해가 되리라 가정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영화 ‘터미네이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선 인공지능 컴퓨터 ‘스카이넷’이 지구를 지배하고, 인간은 저항군으로 몰락한다.



    봉사하는 로봇 vs 자아를 갖게 된 로봇

    비슷한 설정은 매우 자주 등장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컴퓨터, 즉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극단적 세상을 그렸다. 자아를 가진 컴퓨터는 모든 인간을 전력을 얻는 데 필요한 생체에너지로 취급하고, 인간에게는 가상현실을 통해 사회 속에서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가축처럼 사육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2014년 개봉한 영화 ‘트랜센던스’는 죽어가던 한 사람의 의식을 꺼내 컴퓨터 속 인공지능으로 바꿔 넣는다는 독특한 설정을 갖고 있다. 이 인공지능은 인터넷으로 퍼져나가며 세계를 지배하려 든다.
    이러한 영화들과 반대로 인간이 철저하게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고, 뛰어난 인공지능이 이와 갈등을 빚는 설정도 각종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인간에게 핍박당하는 로봇 처지에서 스토리를 풀어가는 경우다.
    SF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는 단편소설 ‘런어라운드’에서 로봇은 반드시 △사람을 해치지 말 것 △사람 명령에 복종할 것 △자기 스스로를 지킬 것이라는 3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로봇 3원칙’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 규칙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지능을 가진 로봇을 철저히 ‘도구’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도구는 사람이 쓰기에 안전하고 편리해야 하며, 자주 고장이 나선 안 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로봇 3원칙’은 도구로서 로봇, 인간에게 철저히 복종하도록 돼 있는 로봇의 존재를 보여주는 셈이다.
    비슷한 설정을 가진 영화로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을 맡은 ‘바이센테니얼 맨’이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로봇 ‘앤드루(NDR-114)’는 점점 지능이 좋아지면서 자아를 갖게 된다. 이후 인간이 되고자 재판을 청구하지만 “당신은 법적으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뒤 쓸쓸히 “One is glad to be of service(봉사는 제 기쁨이죠)”라고 말하며 법정에서 내려온다. 앞서 언급한 영화 ‘채피’의 주인공 로봇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자아를 갖게 됐지만 사람과 같은 권리 및 수명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방황하는 것이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에이 아이(A.I.)’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외모 면에서 인간과 구분이 가지 않는 로봇) ‘데이비드’다. 데이비드는 식물인간이 된 한 소년의 빈자리를 대신하려고 제작됐지만 사람으로부터 버려지면서 소외감을 겪는다. 이런 설정은 김준범 만화작가가 그린 ‘기계전사109’란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89년 출간된 이 만화는 지능을 가진 로봇이 인간에게 핍박받으며 느끼는 서러움을 로봇 시각에서 묘사해 큰 반향을 낳았다.
    반면 몇몇 작품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사람과 동등하게 대우하고, 인간과 인공지능이 친구로 살아가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일본 만화작가 데즈카 오사무가 그린 ‘아톰’이다. 그의 작품에서 인공지능 로봇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돈을 벌고, 로봇끼리 결혼하거나 어린이 로봇을 입양해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유명한 로봇이 파괴되자 사람들이 모여 그를 추도하는 등 뛰어난 인공지능을 완전한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때로 인공지능은 문화 콘텐츠 안에서 사랑스러운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나가노 마모루의 원작 만화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The Five Star Stories)’에는 사람과 외모 면에서 구분이 가지 않는 ‘파티마’라는 여성형 인공생명체가 등장한다. 인간 파일럿과 함께 거대한 전투용 병기를 조종하는 이 인간형 컴퓨터는 자신의 주인을 직접 선택해 결혼 형태의 예식을 치른다.


    완벽한 그녀 ‘서맨사’와 살아가기

    2013년 개봉한 영화 ‘그녀(Her)’ 속 인공지능 운영체계 ‘서맨사’ 역시 완벽하게 사람과 같은 수준의 인공지능을 갖고 있다. 서맨사는 비록 육신은 없지만 주인공 남자를 돕고, 그와 데이트를 하며, 사랑을 속삭일 만큼 감성이 풍부한 존재로 그려졌다.
    1월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 ‘나노리스트’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같은 권리를 갖고 사회를 구성해 살아가는 세계를 그렸다. 주인공은 친누나가 만들어준 안드로이드 2대와 함께 살아간다. 연예인도, 학교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담임교사도 완벽한 인공지능을 가진 안드로이드가 대신한다. 이 작품 안에서는 등장인물 모두가 안드로이드의 존재를 알지만 차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이런 작품들 속 주인공처럼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인공지능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아직 실용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아직 인간의 뇌가 어떤 원리로 사고하는지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식이 두뇌 속에서 어떤 신호체계를 통해 만들어지는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한 사람이 평생 쌓은 경험을 생생하게 다시 저장하려면 현재 상용화된 컴퓨터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현재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은 주변 상황을 판단하고 정해진 알고리즘대로 움직이는 자동화 기계장치 수준이라는 게 과학계의 평가다. 주어진 조건에 맞춰 자동적으로 움직이거나 답을 내놓는 것을 진정한 ‘지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알파고’처럼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 기술을 탑재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이 역시 사람이 지정한 알고리즘대로 움직인다. 현실의 인공지능은 사회를 더 편하고 안락하게 만들고자 수많은 변수를 예측한 ‘프로그래밍 엔지니어링’의 결과물인 셈이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한 콘퍼런스 자리에서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기계가 세계를 정복할 미래를 우려해왔지만,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사람이 받는 임금은 오히려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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