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1절을 맞아 여러 언론이 ‘딜쿠샤’와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1875~1948)를 일제히 소개했다. 딜쿠샤는 인도 러크나우에 있는 궁전 이름이고, 앨버트는 UPA(UPI 전신) 특파원으로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외신을 통해 처음 보도한 인물이다. 딜쿠샤는 앨버트의 부인 메리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인상 깊게 본 궁전으로 ‘행복한 마음’이란 뜻이다. 영국 부유한 집안 출신에 연극배우이자 화가, 작가였던 메리는 일본에서 연극 공연을 하다 요코하마에 온 앨버트를 만난다. 두 사람은 인도 봄베이(현 뭄바이)로 가서 결혼하고 서울에 자리 잡았다. 테일러 부부는 행촌동의 옛 권율 장군 집터 약 5만㎡(1만5000여 평)를 사서 집을 짓고 머릿돌에 ‘DILKUSHA 1923’이라고 새겼다. 사진 속에서 권율 장군이 심은 커다란 은행나무가 이채롭다. 사직단 인근 산에 작은 한옥이 다닥다닥 늘어선 위로 돌집이 우뚝 서 있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메리는 1919년 2월 28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아들 브루스를 낳았다. 앨버트는 독립선언에 참여한 세브란스 의료진이 아들 침상 아래 숨겨둔 독립선언서를 찾아내 UPA 통신으로 특종을 날렸다. 3·1운동 발발 첫 보도였다. 일본군이 제암리에서 기독교인과 천도교인들을 학살한 사건도 언더우드와 함께 방문해 세계에 알렸다. 결국 일제는 42년 이들을 추방했다. 앨버트는 사후 한국에 묻히길 원했다. 광산업자로서 운산금광에서 일했던 아버지 조지와 함께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묻혔고, 지난해에 작고한 아들 브루스의 무덤에서 가져온 흙도 그 옆에 뿌려졌다. 92년 어머니 사후 10년 만에 브루스가 영국에서 출판한 메리의 자서전 ‘호박목걸이(CHAIN OF AMBER)’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호박색으로 물드는 딜쿠샤의 풍경과 한국의 독립운동, 고종 장례식 등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호박목걸이는 앨버트가 메리에게 준 선물이었다.
2005년 5월 김익상 서일대 영화방송예술과 교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국 총영사관으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한국 독립운동에 관여한 사실을 영화로 제작하려는 미국인 후손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딜쿠샤를 60여 년 만에 찾아냈다. 브루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은행나무골 1번지’인 옛 장군의 집터였으며 ‘서대문형무소가 보인다’는 책 속의 표현이 단서가 됐다. 원래 3층으로 지은 이 건물은 1926년 벼락을 맞고 불이 나 2층으로 다시
지어졌다. ‘호박목걸이’에는 은행나무 근처에 집을 짓는다고 하자 무당이 “집 안에 악운이 내리고 화마가 집을 삼킬 것”이라고 한 말을 전하고 있다.
브루스는 2006년 KBS의 3·1절 기념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나라’ 주인공으로 부인, 딸과 함께 방한했다. 2010년에는 그의 자서전 ‘은행나무 옆의 딜쿠샤(Dilkusha by the Ginkgo Tree)’를 미국에서 펴냈다. 브루스의 딸 제니퍼는 할머니의 책 ‘호박목걸이’를 영화로 만들 계획이다. 기획재정부와 문화재청, 그리고 서울시는 딜쿠샤에서 거주자를 이주시키고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후 복원해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반에 개방한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