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학년 대학 입시 문과 정시모집에서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학과는 어디였을까. 서울대 경영학과 또는 사회계열을 짐작했다면 틀렸다. 정답은 이화여대 의예과. 한 입시업체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의과대 가운데 유일하
게 고교 문과생의 교차 지원을 허용한 이 대학 합격자 커트라인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 상위 0.04%였다.정원 500명인 고교에서 전교 1등을 할 경우 백분위가 0.2%인 것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최상위권 학생만 이 학과에 합격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고교 문과 출신 대입 정시모집에서 커트라인 상위 2, 3위를 차지한 것도 각각 원광대 치의예과와 경희대 한의예과로, 문과생의 교차 지원을 허용한 또 다른 이과계열 학과들이었다. 김희동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이에 대해 “최근 사회 전반에 ‘인문계열 졸업자는 취업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지 않나”라며 “이 때문인지 적성에 따라 문과를 선택한 학생들도 원서 쓸 때가 되면 이공계 학과 진학을 모색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입학만 하면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의대, 치대, 한의대의 경우 문과생 지원을 허용하는 몇몇 대학에 최상위권 수험생이 몰려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교 문과 출신이 의대에 진학하는 건 쉽지 않다. 이화여대 의예과가 정시모집에서 선발하는 고교 문과생은 단 6명. 원광대 치의예과 역시 문과생에게 할당한 정원은 6명에 불과하다. 순천향대 의예과는 인문계와 자연계 구분 없이 학생을 뽑지만, 이과생이 주로 응시하는 수능 수학B와 과학탐구 과목에 가산점을 줘 고교 문과 출신의 합격이 더욱 어려운 것으로 평가된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는 수험생으로 보이는 누리꾼이 ‘서울대 경제학과 합격, 원광대 치대 불합격’이라고 쓴 입시 후기도 올라와 있다.
반면 2013학년부터 의예과 입학 정원이 꾸준히 늘면서 이과생의 의대 진학은 상대적으로 수월해진 편이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2012학년 1371명이던 의대 정원이 2017학년 2507명으로 많아졌다. 상당수 의대가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을 없애면서 해당 정원을 신입생 쪽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이는 고교 문과 출신이 의사가 되는 게 더욱 어려워졌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고교 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인문 분야를 전공한 뒤 의전원에 진학해 의사가 되는 사례가 적잖았다. 그러나 한때 27개에 이르던 의전원 가운데 5개(강원대, 건국대, 제주대, 동국대, 차의과학대)만 2019년 이후에도 현 체제를 유지하기로 한 상태에서, 의사가 되려는 고교 문과생들은 한층 좁은 문을 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대해 학부에서 물리학,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의전원을 졸업한 한 의사는 “의사라는 직업은 자연과학적 지식 못지않게 폭넓은 인문학 소양도 필요하다. 학문의 융합을 강조하는 시대정신을 감안할 때 현행 의대 입시는 바람직하지 않은 면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2013년 서울대도 ‘2015학년 입시부터 의예과에 문과생 지원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의 입시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를 시행할 경우 외국어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 학생들의 의대 진학이 늘어나 고교서열화 구조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비판에 부딪혀 곧 철회했다. 현재 서울대는 간호학과, 의류학과 등 이과계열 일부 학과에만 고교 문과생 입학을 허용한 상태다.
다른 대학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교육부의 대졸자 취업률 조사 등에서 수위를 차지하며 최근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공학계열 등은 고교 문과생의 지원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문과생의 진학을 허용하는 일부 학과 경쟁률이 치솟고 있다. 2016학년 숙명여대 통계학과의 경우 고교 문과 출신 6명을 선발하는 전형에 271명이 몰렸다. 문과생 정원으로 4명을 배정한 인하대 공간정보공학과에는 105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래프1 참조).
아예 일찌감치 이과를 선택하는 학생도 많아지는 추세다. 서울 양천구 한 고교 교사는 “최근 주위 학교들을 보면 2010년 무렵 이후로 1년에 한 학급씩 이과반을 늘리는 추세”라고 밝혔다. 서울 강남구 한 고교의 경우 오랫동안 5.5 대 4.5 수준이던 문·이과반 비율이 2014년 2 대 8로 바뀌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흐름은 고교 입시에도 영향을 미쳐 최근 과학고 입시 경쟁률은 꾸준히 상승하는 반면 외국어고 경쟁률은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그래프2 참조).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2015년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전망’ 자료를 통해 ‘2019~2024년 공학계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동시에 ‘사회·교육·인문·예체능·자연계열 등은 대학의 인력 초과 공급으로 미취업자가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올해부터 3년간 사회와 산업 수요에 맞게 대학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총 6000억여 원을 지원하는 이른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은 “현재 사회적 수요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학과 정원을 늘리고, 취업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학과 정원을 축소할 경우 장기적으로 학문 생태계가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학생들이 진로 결정 과정에서 적성보다 진학과 취업 국면에서의 유불리를 먼저 고려하는 것도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입시컨설턴트 김소희 씨는 “고교 저학년 때 무작정 이과를 선택했다 3학년이 된 뒤 예체능계열로 옮겨가는 학생이 적지 않다. 이과 쪽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전공에 적응하지 못해 중퇴하거나 재수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과>문과’ 공식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게 아닌 만큼 적성과 상황을 고려해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게 고교 문과생의 교차 지원을 허용한 이 대학 합격자 커트라인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 상위 0.04%였다.정원 500명인 고교에서 전교 1등을 할 경우 백분위가 0.2%인 것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최상위권 학생만 이 학과에 합격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고교 문과 출신 대입 정시모집에서 커트라인 상위 2, 3위를 차지한 것도 각각 원광대 치의예과와 경희대 한의예과로, 문과생의 교차 지원을 허용한 또 다른 이과계열 학과들이었다. 김희동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이에 대해 “최근 사회 전반에 ‘인문계열 졸업자는 취업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지 않나”라며 “이 때문인지 적성에 따라 문과를 선택한 학생들도 원서 쓸 때가 되면 이공계 학과 진학을 모색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입학만 하면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의대, 치대, 한의대의 경우 문과생 지원을 허용하는 몇몇 대학에 최상위권 수험생이 몰려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고 밝혔다.
고등학교도 이과반이 대세
부모가 고교 문과 상위권 자녀에게 의·치·한의계열 진학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올해 입시에서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사회계열 학과와 지방대 의예과에 복수 합격한 한 문과 출신 학생은 “당초 의대는 생각도 안 했는데 부모님 권유로 원서를 쓰고 결국 의대 진학을 택했다. 엄마가 ‘나중에는 나한테 감사하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다.그러나 현실적으로 고교 문과 출신이 의대에 진학하는 건 쉽지 않다. 이화여대 의예과가 정시모집에서 선발하는 고교 문과생은 단 6명. 원광대 치의예과 역시 문과생에게 할당한 정원은 6명에 불과하다. 순천향대 의예과는 인문계와 자연계 구분 없이 학생을 뽑지만, 이과생이 주로 응시하는 수능 수학B와 과학탐구 과목에 가산점을 줘 고교 문과 출신의 합격이 더욱 어려운 것으로 평가된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는 수험생으로 보이는 누리꾼이 ‘서울대 경제학과 합격, 원광대 치대 불합격’이라고 쓴 입시 후기도 올라와 있다.
반면 2013학년부터 의예과 입학 정원이 꾸준히 늘면서 이과생의 의대 진학은 상대적으로 수월해진 편이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2012학년 1371명이던 의대 정원이 2017학년 2507명으로 많아졌다. 상당수 의대가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을 없애면서 해당 정원을 신입생 쪽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이는 고교 문과 출신이 의사가 되는 게 더욱 어려워졌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고교 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인문 분야를 전공한 뒤 의전원에 진학해 의사가 되는 사례가 적잖았다. 그러나 한때 27개에 이르던 의전원 가운데 5개(강원대, 건국대, 제주대, 동국대, 차의과학대)만 2019년 이후에도 현 체제를 유지하기로 한 상태에서, 의사가 되려는 고교 문과생들은 한층 좁은 문을 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대해 학부에서 물리학,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의전원을 졸업한 한 의사는 “의사라는 직업은 자연과학적 지식 못지않게 폭넓은 인문학 소양도 필요하다. 학문의 융합을 강조하는 시대정신을 감안할 때 현행 의대 입시는 바람직하지 않은 면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2013년 서울대도 ‘2015학년 입시부터 의예과에 문과생 지원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의 입시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를 시행할 경우 외국어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 학생들의 의대 진학이 늘어나 고교서열화 구조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비판에 부딪혀 곧 철회했다. 현재 서울대는 간호학과, 의류학과 등 이과계열 일부 학과에만 고교 문과생 입학을 허용한 상태다.
다른 대학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교육부의 대졸자 취업률 조사 등에서 수위를 차지하며 최근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공학계열 등은 고교 문과생의 지원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문과생의 진학을 허용하는 일부 학과 경쟁률이 치솟고 있다. 2016학년 숙명여대 통계학과의 경우 고교 문과 출신 6명을 선발하는 전형에 271명이 몰렸다. 문과생 정원으로 4명을 배정한 인하대 공간정보공학과에는 105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래프1 참조).
아예 일찌감치 이과를 선택하는 학생도 많아지는 추세다. 서울 양천구 한 고교 교사는 “최근 주위 학교들을 보면 2010년 무렵 이후로 1년에 한 학급씩 이과반을 늘리는 추세”라고 밝혔다. 서울 강남구 한 고교의 경우 오랫동안 5.5 대 4.5 수준이던 문·이과반 비율이 2014년 2 대 8로 바뀌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흐름은 고교 입시에도 영향을 미쳐 최근 과학고 입시 경쟁률은 꾸준히 상승하는 반면 외국어고 경쟁률은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그래프2 참조).
100% 문과 성향 아니면 무조건 이과?
입시 전문가들도 내놓고 이과 진학을 권유한다. 올해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을 둔 학부모 박모 씨는 “아이가 다니는 수학학원에서 ‘요새는 진학이나 취업 양쪽 면에서 모두 이과가 유리하니, 아이를 이과에 보낸다 생각하고 일단 고교 ‘수학Ⅱ’까지 선행을 하자’고 하더라”고 밝혔다. 입시컨설턴트 이미애 씨는 이에 대해 “현재 수능 응시 인원은 문과가 더 많지만 대학에서 뽑는 인원은 거의 비슷해 이과가 대입에 유리하다. 게다가 정부가 대학의 인문계열 정원은 줄이고 이공계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내놓고 있어 이런 상황은 향후 더욱 심화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자녀가 ‘100% 문과 성향’이라는 확신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과를 보내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실제로 고용노동부는 2015년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전망’ 자료를 통해 ‘2019~2024년 공학계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동시에 ‘사회·교육·인문·예체능·자연계열 등은 대학의 인력 초과 공급으로 미취업자가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올해부터 3년간 사회와 산업 수요에 맞게 대학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총 6000억여 원을 지원하는 이른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은 “현재 사회적 수요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학과 정원을 늘리고, 취업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학과 정원을 축소할 경우 장기적으로 학문 생태계가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학생들이 진로 결정 과정에서 적성보다 진학과 취업 국면에서의 유불리를 먼저 고려하는 것도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입시컨설턴트 김소희 씨는 “고교 저학년 때 무작정 이과를 선택했다 3학년이 된 뒤 예체능계열로 옮겨가는 학생이 적지 않다. 이과 쪽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전공에 적응하지 못해 중퇴하거나 재수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과>문과’ 공식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게 아닌 만큼 적성과 상황을 고려해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