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은 했지만 대학생도 아닌, 그래서 고교 4학년인 그들.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대학을 포기하지도 않은 이들을 맞이하는 곳은 재수학원이다. 재수학원을 찾았던 오래전 2월 어느 날, 살갗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와 그날의 다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힘들었던 재수생활이 가끔은 추억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재수생활을 통과하면 추억이 되지만, 재수를 시작하는 이들에겐 전투를 앞둔 장수와도 같은 비장함과 피하고 싶은 마음 두 가지가 뒤섞인다. 누군가가 “학생!” 하고 부르면 머쓱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직도 재수하려는 학생들에게 “재수는 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고3에서 곧바로 대학에 들어간 학생과 재수해서 대학에 들어간 학생은 걸음걸이가 다르다는 얘기가 있다. 대학 졸업 후 취업 걱정에 졸업을 미루는 학생들에 비하면 오히려 고교 4학년은 행복한 선택일 수 있다. 더 밝은 앞날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이 시기에 고교 4학년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재수를 시작하기 전 대입에 실패한 정확한 원인 분석과 확고한 결심이 필요하다. 재수는 고3 수험생활보다 3배 힘들다고 보면 된다. 고교 3년간 공부한 내용을 1년에 마치려면 3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유야 어떻든 대학 입시에 실패한 것은 분명하다. 실패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막연히 1년 더 공부하면 성적이 오를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고3 때 실패한 원인은 무엇이고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3배 힘든 재수생활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확고한 결심이 없으면 또 실패로 끝난다.
재수를 결심했다면 이전 성적은 모두 잊어라. 아무것도 모른다 생각하고 기본 개념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3 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어느 부분이 약해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았는지에 집중하면 만점을 받을 거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80%는 이미 아는 내용이니 나머지 20%만 채우면 100%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20%의 욕심 때문에 80%에서 더 큰 손실이 생긴다. 수능은 어느 단편적인 부분이 아니라 전체 내용을 파악해야 하며, 문제 푸는 기술이 아니라 기본 개념을 충실히 공부해야 고득점을 얻을 수 있다.
재수는 상대방이 있는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다.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은 중간고사 후 5월에 축제를 즐기면서 유혹한다. 재수생활 중 5월과 6월 첫 번째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친구를 멀리해야 한다. 친구와 몇 달간 연락하지 않는다고 우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성친구는 확실한 점수 도둑이며, 절대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재수생활은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의 고독한 경주이다. 소속이 없기에 대학생보다 더 자유로운 생활 속에서 어쩌면 군대보다도 엄격한 자기통제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학습계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계획 없이 막연하게 시간 되는 대로 공부하겠다는 것은 정글 속을 헤매는 것과 같다.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는 것이 좋다. 과목별로 자신의 학습 형태에 적합하게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진행되는지 점검해야 한다. 혼자 실천하기 어려우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해도 좋다. 계획을 점검해주는 사람은 친구보다 교사나 부모가 훨씬 좋다. 그리고 계획을 실천하려면 반드시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하다. 특히 재수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경우는 규칙적인 생활이 절대적이다.
재수생활은 느긋하게 해선 안 되지만, 급하게 서두를 필요도 없다. 자신의 학습 형태에 맞게 계획을 세우는 능력, 계획했던 것을 실천하는 능력,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 등이 재수의 성공열쇠다.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재수생활을 결심했다면, 몇 번의 고비와 슬럼프를 현명하게 잘 이겨내야 한다. 힘들어 넘어지면 친구의 손을 붙잡지 말고, 부모나 교사에게 요청해야 한다. 오늘 힘든 만큼의 반대급부가 평생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해보라.
재수(再修)를 잘하면 평생 재수(財數)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