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드문 평시에서 한미군사동맹이 가장 빛을 발하는 때는 바로 정보를 공유할 때다. 다른 전력에 비해 정보자산이 많이 부족한 한국군은 북한의 군사 동향을 감시하는 데 미국의 정보자산을 많이 활용한다. 그런데 1월 6일 북한 4차 핵실험을 계기로 한미 정보 공조에 균열이 감지됐다(‘주간동아’ 1022호 ‘급감한 한미 정보 공유 北 핵실험 눈 뜨고 당했나’ 참조). 게다가 미군 측이 한국군의 보안장비를 신뢰하지 않아 한미 정보 공조는 앞으로도 많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이 인적정보(휴민트·HUMINT)를 제외한 대북 정보 거의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전파 감청 등을 통해 수집되는 신호정보(시진트·SIGINT)나 위성과 정찰기로 수집하는 영상정보(이민트·IMINT)는 특히 최근의 북한 핵실험과 로켓 발사 국면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데 한국군은 이러한 정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는 한미 양국의 C4I(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를 통해 전달된다. 한국군의 현행 C4I 시스템은 한국군합동지휘통제체계(KJCCS)를 정점으로 육·해·공군의 전술 C4I와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가 연동되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한편 전 세계 차원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은 범세계연합정보교환체계(CENTRIXS)를 사용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자국군 부대와 동맹국 간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미국과 가장 높은 수준의 정보 공조를 실시하고 있는 영국, 캐나다, 호주와의 네트워크(CENTRIXS Four Eyes)부터 일본(CENTRIXS-JPN) 등등의 다양한 층위로 이뤄져 있으며, 우리나라와의 정보 공조를 위한 네트워크가 바로 ‘한반도연합지휘통제체계’로 일컬어지는 CENTRIXS-K이다.
전작권 전환 2012, 2015년, 무기한 연기
관건은 한국군과 미군의 C4I 연동이 얼마나 신속히, 보안을 유지한 상태로 이뤄지느냐에 달렸다. 잘 구성된 C4I는 멀리 떨어진 전력들 사이에서도 실시간으로 정보가 공유될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똑같은 전력 구성을 가지고서도 좀 더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원거리 포격이 필요한 좌표를 무전기로 일일이 읊어줄 때와 아군의 포 전력에 자동으로 좌표를 입력해주는 체계를 갖췄을 때의 차이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특히 수도권에 가장 위협적인 북한 전력으로 평가되는 장사정포에 대응할 경우, 1분 1초의 차이가 수도권 1500만 주민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현재 양국의 C4I 연동은 KJCCS와 CENTRIXS-K 사이에 놓인 연동체계(KJCCS-C)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전시작전권(전작권)이 한국군으로 넘어오면 지금과 달리 한국군이 작전 지휘를 주도해야 하기 때문에 현행 C4I 연동구조에 어느 정도 변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군도 한국군 주도의 연합 C4I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2009년부터 연합지휘통제체계(AKJCCS) 사업을 시작했다.
본래 전작권 전환이 2012년 이뤄질 것을 고려해 2011년까지 완성될 예정이던 AKJCCS는 전작권 전환이 2015년으로 연기되자 2014년으로 개발 계획이 순연됐고, 박근혜 정부 집권 이후 전작권 전환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면서 존립 자체가 애매해졌다. 이로 인해 몇 가지 문제도 뒤따르게 됐다.
예산의 중복 낭비는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다. AKJCCS의 개발에 투입된 예산은 400억 원이 넘는다. 당초에는 AKJCCS 개발이 완료되면 전작권 전환과 함께 기존 CENTRIXS-K를 대체할 계획이었으나 전작권 전환이 연기되면서 AKJCCS가 제구실을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게다가 한국군은 매년 CENTRIXS-K 운영비의 40%를 미국 측에 지불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지급하는 방위비 분담금과는 별도로 부담하는 것으로, 매년 200억 원가량이 지출된다. 돈은 양쪽으로 쓰고 아무런 추가적인 실익을 얻지 못하는 형국이다.
가까운 미래에 마침내 전작권 전환이 이뤄진다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한미 양국의 통신보안체계의 차이가 바로 그것. 한국군과 미군의 통신보안체계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앞으로도 연합 C4I 개발에서 지속적으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의 통신보안체계는 비(非)보안체계와 보안체계 사이 ‘물리적 분리’를 기본으로 한다. 한국군의 내부망(인트라넷)은 회선 자체부터 일반 인터넷 회선과 따로 설치돼 있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는 군 인트라넷에 접속을 시도하기조차 어렵다. 미군은 전 세계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물리적 분리를 추구하는 데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물리적 분리를 철저하게 추구할 경우, 전 세계에 미군만 사용하는 전용회선을 새로 가설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군은 상용 인터넷 회선을 사용하는 대신 고도의 암호화를 시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CENTRIXS-K에 연동되는 미군 측 정보는 이러한 방식의 네트워크 가운데 하나인 SIPRNET(Secret Internet Protocol Router Network)을 통해 들어온다.
미군의 韓 보안 수준 불신으로 무용지물 우려
부분적으로 상용 인터넷 회선의 사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미군 측이 요구하는 암호장비의 수준은 높은 편이다. 이에 반해 물리적 분리를 철저하게 추구하는 한국군의 경우 상대적으로 암호장비의 요구 수준이 미군에 비해 낮다. 한미 양군의 C4I를 연동하면서 미군 측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 연합 C4I 관련 사업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미군 측이 우리 군 C4I 시스템의 암호화 수준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AKJCCS의 사용을 거부했다”고 말한다. 현 상황에서는 전작권 전환이 이뤄질 경우 도리어 CENTRIXS-K의 사용을 확대해야 할 판이다. AKJCCS를 개발하는 데 투입된 400억 원 넘는 예산은 무의미해지고 미국 측에 지불해야 하는 사용료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국방부는 이에 대한 주간동아의 질의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이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보안 수준이 세계 수준에 결코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문제는 군이 보안장비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 한국군이 물리적인 네트워크(회선) 분리에만 치중하고 보안장비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는 데는 군 조직 내부의 주도권 싸움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선 설비는 통신 영역이고 보안장비는 전산 영역에 속하는데, 지금까지 통신병과가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보안장비보다 회선 설비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원활한 한미 정보 공조를 유지하려면 한국군 네트워크의 보안 수준을 높이는 데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국회 국방위원회 한 관계자는 “보안 문제를 빌미로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한 대북 정보 공유를 더 회피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겪으면서 한미 정보 공조에 균열이 드러난 상황. 앞으로가 더욱 우려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