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EPL)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 [뉴시스]
경영인 아닌 축구 전문가들이 이끄는 토트넘
그렇다고 토트넘이 당장 성적을 간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단 전력을 다져 4위 안에 들어갈 팀을 만든 다음 우승까지 노리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를 위해 적어도 축구 측면에선 대니얼 레비 회장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디렉터들 계획대로 구단이 운영되고 있다. 구단 운영 변화가 어떤 실적을 낼지 예단할 수 없지만, 경영인이 아닌 축구 전문가들이 팀을 끌고 가는 모습은 일단 바람직해 보인다.
중상위권으로 분류되던 토트넘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을 거치면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는 등 위상이 한 단계 높아졌다. EPL에서도 뛰어난 전력, 안정적 재정 능력을 두루 갖춘 빅클럽 ‘빅6’(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첼시, 아스널, 토트넘)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선수단 투자 규모나 리그 순위, ‘야망’ 측면에선 토트넘이 다른 빅클럽에 밀리는 게 현실이다. 토트넘이 빅6가 맞느냐는 점은 축구팬들의 흥미로운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그간 토트넘은 레비 회장의 철저한 계산 아래 무리한 지출을 지양했다. 하지만 이제 선수 영입에 지갑을 여는 팀으로 거듭나고 있다. 투자 없이는 현상 유지조차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토트넘은 당장 필요한 포지션에 걸맞은 선수가 있으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영입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토트넘 역대 이적료 순위 톱10 가운데 2022∼2023시즌 이후 영입된 선수가 8명인 것만 봐도 팀 분위기 변화가 역력하다.
토트넘 이적생 대부분이 젊은 선수라는 점도 흥미롭다. 지난 시즌 20대 초반 선수들이 토트넘에 합류했다. 이번 시즌에는 루카스 베리발, 아치 그레이, 윌슨 오도베르, 양민혁 등 10대 선수를 4명이나 영입하는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10대라고 해서 당장 실전 투입이 어려운, 성장 잠재력만 있는 선수들이 아니다. 이들은 이미 각국 프로무대에서 한 시즌 이상 실력을 입증한 선수들이다. 즉시 전력으로 투입할 젊은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팀의 미래 밑그림도 함께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공은 선수단을 이끄는 코칭스태프에게로 넘어갔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지난 시즌 초반 토트넘을 공격적으로 이끌며 찬사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6일(현지 시간) 토트넘은 2023∼2024시즌 11라운드 첼시와 경기에서 2명이 퇴장당한 수적 열세에도 수비 라인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용맹함을 보였다. 그런데 바로 이 경기(4-1 패)를 기점으로 포스테코글루호(號) 토트넘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했다. 과감하고 용감한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공격만 하는 전술에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국내 팬들은 토트넘에서 가장 골을 잘 넣는 손흥민이 슛을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풀백들이 올라와 공격을 주도하는 모습에 황당해했다. 토트넘의 리그 순위는 횡보했고, 심지어 마지막 7경기 가운데 5경기를 내주면서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놓치고 말았다.
최근 상대 팀들은 토트넘이 어떤 전술로 경기에 임할지 속속들이 파악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수비 위치를 조정하고 중앙을 지킨 상대가 역습해오면 토트넘은 높은 수비 라인 탓에 뒤공간을 내주고 만다. 따라서 축구 스타일에 타협이 필요함에도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요지부동이었다. 도리어 자신의 전략·전술을 수정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번 시즌 초반 토트넘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막 후 4경기 1승 1무 2패라는 부진한 성적에 현지 언론들은 토트넘과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비판하고 나섰다.
안지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홋스퍼 감독. [GETTYIMAGES]
“난 부임 2년 차에 우승”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부임 후 시종일관 주장한 “나는 부임 2년 차에 우승했다”는 발언도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그가 처음 이 발언을 했을 때만 해도 ‘공격 축구’로 분위기가 좋은 상황이라 팬들 반응도 뜨거웠다. “다음 시즌 우승을 기대하라”는 감독의 야심 찬 선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팀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그저 사실을 얘기했을 뿐”이라며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실제로 그는 호주 국가대표팀과 U-17·U-20 대표팀, 사우스 멜버른, 브리즈번 로어, 일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부임 2년 차에 우승을 거두긴 했다. 잘 생각해보면 “나는 부임 2년 차에 우승했다”는 말은 상황에 따라 야심 찬 선언도, 당장 위기를 면피하려는 변명도 될 수 있다.
시즌 초반 위기를 겪은 토트넘은 조금씩 전술 변화를 꾀하는 중이다. 수비진만 본분을 망각한 채 신나게 공격에 나서고, 정작 공격진은 그러지 못하는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손흥민 위치도 골대와 가까운 쪽으로 이동했다. 토트넘에서만 10번째 시즌을 맞은 손흥민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구단과 계약이 끝난다. 계약에 1년 연장 옵션이 있다고 알려졌지만 이를 구단이 일방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지, 선수 동의가 필요한지 등은 명확하지 않다.
당장 확실한 부분은 아직 손흥민의 계약 연장에 관한 발표가 없다는 것이다. 손흥민은 토트넘 필드 플레이어 가운데 수비수 벤 데이비스와 더불어 2명뿐인 30대 선수다. 그는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고 젊은 선수들에게 부족한 경험과 노련미를 채워준다. 두 자릿수 득점과 도움을 기록하는 엄청난 공격 생산 능력은 말할 것도 없다. 주장을 응원하려고 현지를 찾는 수많은 한국 팬이 가져다주는 부가가치는 덤이다. 혹시 젊은 팀으로 거듭나려는 최근 기조에 맞춰 구단이 그와의 재계약을 망설이는 것일까. 아니면 손흥민 본인의 생각이 달라진 것일까. 손흥민의 재계약 여부, 리그 성적표,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미래 등 토트넘에 여러모로 관심이 집중되는 시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