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의 가상현실(VR) 기기 ‘메타 퀘스트 프로’를 사용하는 체험자. [메타 제공]
메타의 가상현실(VR) 기기 ‘메타 퀘스트 프로’로 구동되는 애플리케이션(앱) ‘이머스드(immersed)’를 통해 가전제품 가상화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해당 앱을 이용하면 메타 퀘스트 프로와 저사양 노트북을 연결해 가상공간에 모니터를 불러들여 사용할 수 있다. 증강현실(AR)·VR·XR 기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최고 사양 컴퓨터를 사용하고, 끝도 없이 넓은 TV를 시청할 날이 머지않았다.
디지털 가상화 첫 단추, 컴퓨터 VM
디지털 가상화 기술은 이미 버추얼 머신(VM) 형태로 현실화됐다. VM은 실재하는 컴퓨터에 여러 개의 컴퓨팅 환경을 구현하는 시스템이다. 가령 애플 ‘맥’ 컴퓨터에 ‘패러렐즈’ 같은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본래 맥에서는 구동되지 않는 윈도를 사용하는 식이다. 또 다른 가상 컴퓨터 소프트웨어 VM웨어를 이용하면 하나의 개인용 컴퓨터(PC)에서 윈도, 리눅스, 맥 오에스(Mac OS) 등 여러 운영체제를 실행할 수 있다. 가상데스크톱인프라(VDI) 솔루션인 VM웨어 호라이즌은 성능 좋은 컴퓨터에 최저 사양의 컴퓨터와 아이패드를 연결해 저마다 다른 운영체제를 쓸 수 있게 해준다. 고사양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여러 사람이 각자 디지털 디바이스를 연결해 필요한 컴퓨팅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반대로 수천 대의 저사양 컴퓨터를 가상화해 초거대 슈퍼컴퓨터를 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병렬 컴퓨팅이라고 하며, 이때 사용되는 게 바로 가상화 기술이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컴퓨터와 스토리지 자원을 가상화해 한데 묶음으로써 높은 성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클라우드 PC 포털’을 이용하면 고사양 컴퓨터를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로 사용할 수 있다. [GETTYIMAGES]
클라우드 PC 포털에 대해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우선 집에서 쓰는 2010년 모델 노트북, 회사 업무용인 2015년형 아이패드, 출장 기간 머무르는 호텔 객실의 2018년형 데스크톱을 클라우드 PC에 한데 연결한다. 그러면 각 장치의 성능에 상관없이 동일한 환경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클라우드 PC 포털을 이용하면 고사양 컴퓨터를 애써 구비하거나 업그레이드 등 관리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 컴퓨터 바이러스 예방이나 기기 고장 관리도 수월해진다.
이처럼 소프트웨어 차원에서 컴퓨터 가상화 기술은 어느 정도 현실화됐다. AR·VR·XR 디바이스 기술이 가상화 기술에 접목되면 어떨까. 그야말로 모니터조차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클라우드 PC 포털에 연결된 가상화 디바이스는 곧장 고성능 컴퓨터로 변모한다. 디바이스를 장착한 채 눈으로 인식하는 모니터의 크기, 개수, 위치 모두 사용자 의도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 의미에서 기존 컴퓨터는 물론, 키보드와 마우스, 모니터가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가상화 기술이 궤도에 오르면 사용자가 안경 크기의 디지털 장치를 착용하는 즉시 최고 사양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을 전망이다.
현실과 디지털 공간 혼합될 것
XR 기술이 고도화되면 컴퓨터뿐 아니라 TV, 스마트워치, 디지털 액자 등 다양한 IT 기기의 한계와 경계도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가령 현재 초대형 모델로 불리는 75인치 TV도 XR 디바이스와 연동하면 그야말로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우는 100인치 TV로 즐길 수 있다. 사용자가 XR 전용 안경을 끼고 바라본 자신의 손목에는 스마트워치가, 집 안 벽면에는 근사한 디지털 액자가 보이는 미래가 다가오는 것이다.이처럼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는 디지털 넘어 디지털 환경을 본격적으로 경험할 전망이다. 물리적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디지털 디바이스를 착용하면 보고 느낄 수 있는 디지털 세계 말이다. 이처럼 현실과 디지털 공간이 혼합되는 게 XR 기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AR·VR·XR 기기의 위상은 일견 게임기나 특별한 장난감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리얼리티(reality)와 디지털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가상화 기술은 앞으로 좁게는 IT와 가전산업, 넓게는 인류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