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네이터2’에 등장하는 액체 로봇. [네이버영화]
액체로 바뀌는 로봇 MPTM
고체에서 액체로 변하면서 철창을 통과하는 ‘자기 활성 고체-액체 상 전이 기계(MPTM)’. [저널 ‘매터’ 제공]
미국 카네기멜론대와 홍콩중문대는 액체나 고체로 상태를 바꿀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한 연구 결과를 1월 저널 ‘매터(Matter)’에 발표했다. 이 로봇의 정식 명칭은 ‘자기 활성 고체-액체 상 전이 기계’(Magnetoactive solid-liquid Phase Transitional Machine·MPTM)다. 연구진이 제작한 MPTM은 작은 레고 피겨를 닮은 미니 로봇이다. 시연 영상에서 철장에 갇혀 있던 MPTM은 마치 ‘터미네이터2’ 속 T-1000처럼 감옥을 빠져나가기 위해 고체에서 액체로 상태가 바뀐다. 마치 녹아내린 듯 철창 사이로 스며들어 반대편으로 통과한 뒤,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MPTM이 녹는점이 29.8도로 매우 낮은 금속 갈륨(Ga)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희토류 광물 중 하나인 네오디뮴 자석(NdFeB)을 삽입했다. 연구진은 액체와 고체를 넘나드는 로봇을 제작하기 위해 낮은 온도에서 부드러운 상태와 단단한 상태를 쉽게 오갈 수 있는 무독성 재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금속이 갈륨이다. 갈륨은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녹을 만큼 녹는점이 낮다. 여기에 자성입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류 자기장에 반응해 재료를 가열하고 상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해준다. 또 자기장에 반응해 로봇이 움직이고 이동할 수 있게 한다. MPTM은 액체 상태에서는 점성이 높아 이동성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벽을 오르거나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다른 물체를 운반한 뒤 다시 합체될 수 있다. 그리고 본래 모양으로 쉽게 복원된다.
미국항공우주국 (NASA)이 토성의 위성 타이탄 탐사를 목적으로 개발 중인 변신 로봇.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 과학 및 인공지능 연구실에서 만든 로봇 일렉트로복셀은 모듈식으로 조립할 수 있는 큐브 블록 로봇이다. 크기는 작지만 이 모델 역시 우주 탐사에 활용하고자 개발된 기술이다. 특이한 점은 미세중력에서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소프트 로봇 연구 중
유연한 엘라스토머 시트로 만들어 형태 변환이 가능한 로봇. [미국 버지니아공대 제공]
영국 바스대와 버밍엄대 공동연구팀은 고체 표면을 활성물질로 코팅해 형태를 유연하게 변형하는 새로운 기술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드’에 발표했다. 탄성이 있는 고무 재질의 공을 미세한 나노 로봇으로 감싸는 것이다. 그러면 프로그래밍을 통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부드러운 재료로 둘러싼 로봇 팔을 유연하게 움직이게 하거나, 나노입자의 표면을 반응성 활성물질로 코팅해 약물을 전달하는 캡슐의 크기와 모양을 조절할 수 있다.
인체나 회로에 스며들어 다양하게 활용 가능
이런 형태 변환 로봇은 아직 실생활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소프트 로봇은 유연하지만 내구성이 약하고 움직임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기술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MPTM은 이런 단점을 뛰어넘고자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진 액체 로봇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로봇은 예상 외로 SF영화보다는 자연의 ‘해삼’에서 영감을 받았다. 소프트 로봇 공학자들은 유연하면서도 조직의 강성을 변경할 수 있는 해삼이나 문어의 특징에서 종종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MPTM이 향후 실용적으로 발전할 경우 의료 분야에 적용될 전망이다. 인체에 약을 투여하거나 위에서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배터리를 삼켰을 때 위에 투입해 배터리를 추출하는 식이다. 또 무선회로를 조립하고 수리하는 스마트 로봇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연구팀은 인간의 손이 도달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복잡한 회로에 스며들어 납땜과 도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물론 액체 로봇이 실생활에 응용되려면 약간의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생의학 목적으로 설계하려면 기능은 유지하면서 녹는점이 우리 체온보다 높은 갈륨 기반의 합금 재료를 개발해야 한다. 연구팀은 미국과학진흥협회가 운영하는 사이트 ‘유레칼러트’를 통해 “좀 더 실용적인 재료 개발로 의료 및 엔지니어링에 활용되도록 연구하고 있다”며 “아직 개념 증명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약물 전달이나 이물질 제거 등에 활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