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세계음식거리가 한산하다. 오후 7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술집이 여러 곳이었다. [이슬아 기자]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골목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남인석(82) 씨가 12월 12일 기자에게 한 말이다. 남 씨는 이 골목에서 일어난 이태원 참사 이후 가게 안쪽 카운터에 앉아 유리문을 통해 골목 벽면에 꾸며진 추모 공간을 바라보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새벽 4시까지 가게 안으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그랬어요. 상처 난 곳 물티슈로 닦아주고 한 3명은 위로 끌어올려 구조하고….”
사고 당일 기억을 떠올리던 남 씨는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외국인 관광객 찾아와 기도
같은 날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가득하다. [이슬아 기자]
해밀톤호텔 골목 ‘추모의 벽’에는 하루 수백 명 방문객이 찾아온다. 12월 12일 오후 4시쯤 비 소식에 벽면 추모 메시지가 젖지 않도록 미리 비닐을 씌우던 자원봉사자는 “요 며칠 기온이 영상권을 회복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골목에 머무른 1시간 동안 방문객 28명이 벽 앞에 서서 메시지를 읽었다. 사진·영상으로 기록을 남기거나 기도를 하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이날 만난 서울 관악구의 50대 여성 A 씨는 “(직장) 쉬는 날 일부러 찾아왔다”며 “살면서 이태원에 와본 적이 없어 대체 왜 그런 사고가 난 건지 직접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12월 10일 한국에 왔다는 태국인 관광객 옌링(22) 씨도 이날 추모 공간에서 한동안 기도를 했다. “뉴스로 이태원 참사를 접했다”며 “(희생자들이)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에 하루 일정을 비우고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추모 공간을 제외한 이태원 상점가에는 사람의 발길이 뚝 끊겼다. 12월 13일 저녁 7시 해밀톤호텔 골목 위쪽과 맞닿은 이태원세계음식거리에는 손님 없이 텅 빈 식당과 술집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웨이팅이 잦은 프랜차이즈 술집도 이날은 외국인 관광객 한 테이블뿐이라 가게 조명 절반을 꺼놓았다.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이후 이태원 1, 2동 상점가 매출(11월 둘째 주 기준)은 각각 61.7%, 20.3% 급감했다.
이로 인해 정부와 서울시가 이태원 소상공인에게 장기·저금리 대출(최대 7000만 원) 및 심리 상담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날 만난 상인들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이태원세계음식거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B 씨는 “(용산)구청에 막상 신청하려고 보니 두 달 치 월세가 채 안 되는 700만 원밖에 (대출이) 안 된다고 하더라”며 “사고 현장이 자꾸만 아른거려도 당장 현실적인 문제가 더 급해 상담까지 받을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이태원 참사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는 데 대한 볼멘소리도 나왔다. 매일 이태원역 4번 출구에서 교회 홍보물을 배포한다는 70대 곽모 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 출퇴근 때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유동인구가 크게 줄었다”며 “정치권이 이 사고를 싸움 소재로 삼으니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태원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정치색을 띠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이태원 활성화 노력 이어져
사업가 송강현 씨는 12월 1일부터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인근에서 행인들에게 군고구마를 나눠주고 있다. [이슬아 기자]
이태원 활성화를 위한 행사도 진행되고 있다. 이태원을 찾은 이틀간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삼각지역(서울지하철 4·6호선) 방면으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달콤한 고구마 냄새가 풍겼다. 사업가 송강현 씨가 12월 1일부터 이곳에서 자비 200만 원을 들여 무료 군고구마 나눔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송 씨는 “SNS에 ‘#play이태원’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사진을 업로드하면 고구마를 드린다”며 “지인이 경리단길에서 가게를 하고 있기도 하고, 같이 사업하는 입장에서 이태원이 다시 활기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 (행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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