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이른바 개딸들이 ‘민주당 개혁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최진렬 기자]
6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당사 앞. 강원 춘천시에서 왔다는 한 개딸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편향된 언론을 문제 삼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친야권 성향의 시민단체 밭갈이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민주당 개혁 촉구’ 집회 현장이다. 주최 측은 경찰에 1000명이 참가할 것으로 신고했으나 참가자 수는 80여 명에 그쳤다. 그나마 20명 안팎의 2030 여성이 자리를 지켜 체면을 지켰다. 민주당 이재명 의원의 2030 여성 지지자인 ‘개딸’이다. 이들은 수가 적었지만 연이어 무대에 오르며 존재감을 보였다. 모자와 선글라스는 물론 공룡, 토끼 탈을 쓰고 참가한 개딸도 있었다. 집회 현장에서는 민주당 2030 남녀 지지층을 각각 의미하는 ‘개딸♥냥아들 고맙다’라고 적힌 깃발들이 펄럭였다.
“국회의원 정신 차려라”
6월 10일 서울 여의도 집회 현장에 개딸이 토끼 탈을 쓰고 참석했다. [최진렬 기자]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내 계파 갈등이 본격화하면서 이 같은 양상은 격화되고 있다. 개딸들은 이 의원 지지 선언은 물론, 상대 계파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도 보내고 있다. 급기야 한 개딸이 6월 6일 민주당 홍영표 의원의 인천 지역 사무실 출입문에 “(홍 의원이) 치매가 아닌지 걱정되고 중증 애정결핍 증상이 심각한 것 같다”는 문구와 함께 3m 길이의 대형 대자보를 붙이는 일도 발생했다. 해당 대자보에는 중앙치매센터 대표번호도 함께 적혀 있었다.
홍 의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당 의원 중에는 문자 테러 등으로 개딸에 반감을 가진 이가 여럿 있었다. 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개딸이 3000명가량 되는 것 같은데 2030 여성을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팬덤보다 훌리건에 가깝다. 방탄소년단(BTS) 팬덤이라면 BTS를 위해 노력하지, 소녀시대가 뜬다고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개딸은) 지지 정치인에 조금이라도 비판적 목소리를 내면 ‘죽일 놈’이라며 난리 친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민주당 주류 정치인은 저마다 팬덤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달빛기사단과 문꿀오소리 등이 대표적 예다. 다만 정계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팬덤의 성향이 더욱 강성으로 나타난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사모보다 달빛기사단이, 달빛기사단보다 개딸이 더욱 목소리가 거세다는 것이다. 개딸이 민주당 핵심 지지 세력으로 자리하면서 ‘팬덤 정치’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李 “문자 폭탄 반감만 키워”
이재명 의원은 그간 개딸 등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소통해왔다. 개딸이 주로 활동하는 자신의 네이버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 글을 남기는 식이다.지방선거 기간에는 이들에게 투표 독려 전화를 돌린 것으로 보인다. 팬카페에는 “밥 먹다 이장님 전화 받고 오열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이장님 음성이 쉰 목소리로…” “선거 전날 김혜경 여사님이 전화 주셨다” 등 통화 인증 게시물이 줄줄이 달렸다.
민주당 내에서 강성 팬덤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이어지자 이 의원도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이 의원은 6월 9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지지자’ 이름으로 모욕적 언사, 문자 폭탄 같은 억압적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모멸감을 주고 의사표현을 억압하면 반감만 더 키운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홍 의원을 비난하는 대자보를 붙인 개딸은 이날 사무실을 방문해 사과했다. 여론을 의식했는지 6월 10일 열린 집회에서도 이 의원의 이름을 직접 호명하기보다 ‘특정 의원’ 등으로 지칭했다. 집회 현장 벽면에 ‘존경하는 이재명 의원’ 등 이 의원을 응원하는 화환이 즐비한 것과는 대비됐다. 해당 화환들은 개딸 등 이 의원 지지자들이 그의 국회 첫 출근을 축하하고자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당원이 인물 중심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정치인격화 현상’이 팬덤 정치를 강화한다고 분석했다. 지도자가 부각되는 대통령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정치인과 지지자 간 소통 증가가 이 같은 현상을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격화 현상이 나타나면 지지자들이 경쟁 정치인을 적으로 상정하고 타도 대상으로 여긴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신 교수는 이어 “소수에 불과한 정치 팬덤의 목소리가 부각되면서 다수 국민의 목소리가 무시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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