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남산의 부장들’의 저자 김충식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지호영 기자]
그가 이번에는 ‘5공 남산의 부장들’(블루엘리펀트)을 세상에 내놨다. 이 책은 제5공화국의 기원이 된 1979년 12·12 쿠데타에서 시작해 전두환, 유학성, 노신영, 장세동, 안무혁으로 이어지는 5명 시절의 남산 역사를 다뤘다. 전두환 집권 8년간의 역사를 남산의 부장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2탄인 셈이다.
6월 2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김 교수를 만나 격동의 대한민국 사관을 자처한 소회를 들었다. 김 교수는 “종전 책이 박정희 시대 10명의 정보부장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전두환부터 안무혁까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전두환 시대를 남산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여주는 책”이라고 말했다.
미공개 특종 실려
전작에 대해 “작두 위를 걸어가며 썼기 때문에 형용사와 부사를 쓸 겨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번 책은 어땠나요.“작두 위에 섰다는 기분은 비슷합니다. 이번엔 우주 발사체를 조립하는 기분으로 책을 썼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내용이 100% 명예훼손과 관계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상대방들은 상당한 법적 전문가이자 조력자도 많아서 이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이냐, 알권리냐를 두고 싸워야 했기에 집필까지 적잖은 결심을 해야 했어요. 지금도 누가 어떤 치명적 문제를 제기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시시비비에 맞설 각오도 돼 있습니다.”
양면적 평가를 받는 인물들을 다룬 책입니다. 집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박정희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썼지만 취재하며 연민하는 부분이 있었고, 이번에는 전두환에 대해 비판적 평전을 쓴 셈이지만 그에게도 장점은 있었어요. 양면을 다 살펴야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고 지켜보는 이들도 공감할 거라고 생각했죠. 철학에 추체험(追體驗)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때 당시로 돌아가 ‘내가 박정희였다면 그 시절 선생을 하다가 군인으로 만주에 갔을까’를 생각해보는 거죠. 지금 내 잣대가 아니라, 당시 그의 상황에 들어가 보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생각해보면서 책을 썼어요. 물론 그 선택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요.”
실제로 그는 시대의 목격자이자 참여자였다. 1985년 8월 망명 조종사 신병처리를 특종 보도했다가 남산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돼 3박 4일간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당시 편집국 기자들이 들고 일어나 정권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성명서 대표 집필자가 당시 이낙연 기자(전 국무총리)였다.
한편으로 이 책은 전두환의 파란만장한 성장 과정을 담은 최초의 전두환 평전이기도 합니다. 전두환 정권에서 기자 시절 고문을 당하기도 했는데 여러모로 악연 아닌가요. 기자 생활에 회의감이 들지는 않았는지요.
“종종 기자는 승려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승려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탁을 치면서 경전을 외고 석가의 가르침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는 구도자잖아요. 기자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독자가 뭘 알고 싶어 하고 뭘 읽고자 하는지, 내가 알려야 할 게 무엇인지 취재원과 싸우고 자신과도 싸우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죠. 그런 생각만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고문은 승려가 절로 돌아가다 길에서 봉변을 당할 수도 있지만 그다음 날 목탁을 손에서 놓지 않듯이, 그런 일종의 ‘봉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소개된 특종 비화를 몇 가지만 꼽아주세요.
“남한과 북한, 미국이 3자회담을 하자고 북한 측이 제안해온 걸 동아일보와 한국일보가 보도했거든요. 그런데 외교부 장관을 했던 노신영이 1984년 안기부장을 할 때 기사가 나가자 평생 같이 일한 외무부 차관, 차관보, 미주국장 등을 데려다 지하실에서 고문한 사건이 있었어요. 본인은 몰랐다고 하지만 남산 조직 형태로 봐서 부장 모르게 데려다 구타하지는 않았을 테고, 전두환 대통령과 장세동 경호실장이 아주 분노한 사건이라서 만류하지 못했을 거라고 봐요. 이 사건 자체를 최초로 활자화한 게 이 책이죠.
또 하나는 전두환, 장세동의 정치라는 게 암흑의, 쩨쩨한 정치였기에 김대중이 다시 떠오르는 걸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1986년 7월 4일 미국 건국기념일에 정동에 있는 대사관에서 정치범으로 가택연금돼 있던 김대중을 부르려 하니 장세동이 초청하지 못하게 공작을 하라고 지시했죠. 그런데 실패해 주한 미국대사관 측이 김대중을 데려다 환담을 하자 당시 외교부 장관의 목을 치고, 미주국장도 내쳤어요. 그렇게 치사한 정치를 한 걸 이번에 처음으로 활자화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책에 등장한다고요. 어떤 파트인지 살짝 소개해주세요.
“1980년 5월 서울대 법대생 윤석열이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모의재판을 하는 일화가 나와요. 당시 검사 역할을 맡아 전두환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죠. 사실 윤석열 정부는 국가정보원(국정원)의 그림자에서 싹튼 거라도 봐도 무방합니다. 이름 없는 늦깎이 검사가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수사할 때 주임검사가 되고 일개 검사가 국민적 관심 대상이 된 거죠. 이후 윤석열이 여주지청장으로 쫓겨나면서 정의롭고 저항하는 검사 이미지를 깊이 각인시켰어요. 그런 이미지가 2022년 대통령이 되는 뿌리가 된 거라고 봅니다. 최근 1~2년 사이 대선 후보로 거론된 게 아니라 10년 역사가 있었다고 봐야겠죠.”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이번에 낸 ‘5공 남산의 부장들’에는 전두환 집권 8년간의 역사가 담겼다. [지호영 기자]
권력은 영원한 관찰 대상
기자 생활을 30년간 했는데 기억에 남는 취재원이 있나요.“운 좋게 정치부 기자를 오래해 국회, 청와대, 외교부 등에 출입했고 그때 만난 이들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은 현 사안에 대해 물어보면 답을 잘 해주지 않아요. 그런데 옛날이야기는 재밌게 잘해요. 이번 책도 그런 취재를 바탕으로 쓴 거죠. 취재원과 관계는 불가근불가원이라지만, 신뢰와 상호 인정이 있을 때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거 같아요. 이번에도 30년 만에 전화한 취재원이 과거 이야기를 곧잘 해줬죠. 저는 자폐적으로 문제를 보는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건이 날 때마다 일희일비하며 취재하는 것도 기자의 일이지만, 불은 늘 나게 되니 거기서 소방관은 뭘 하고 경찰청장은 어떻게 뛰는지를 관조할 때 유장한 호흡의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자가 같이 흥분하는 게 아니라요.”
전작은 대만에서도 중국어로 번역 출간됐습니다. “한국의 경제부흥을 이룬 박정희 지도자를 독재와 인권탄압의 어두운 행적까지 입체적으로 조명한 이 책은 대만에서도 타산지석이 될 것”이라는 소개문이 인상적인데, 그 외에 이 시리즈를 꼭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했을 때 중국에서 평을 많이 썼더라고요. 정식 개봉한 적은 없지만(웃음). 대부분 한국은 이런 걸 영화로 만들 수 있구나, 부럽다 같은 반응이 주류였어요. 세상은 진화하는데 권력은 퇴화하는 경우가 많죠. 대명천지에 푸틴의 전쟁이나 김정은의 존재 같은 거처럼요. 권력은 기자들의 영원한 관찰거리이자 기자가 영원히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기도 하죠. 누군가는 끊임없이 권력에 경종을 울리고 질타를 해야 하거든요. 그 때문에 중국인들이 언젠가 이 책을 읽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북한 사람들도요. 북한에서 이 책을 읽을 때가 북한이 정상화되는 때가 아닐까요.”
잘못된 권력 운용의 결과
책에는 “청와대 주인들의 황혼은 비참했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비참하지 않은 황혼을 위해 청와대 주인이 된 사람 또는 주인이 되길 꿈꾸는 이에게 시대의 관찰자로서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과도기 때 대통령을 한 이들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10명인데, 7명의 인생이 비참했어요. 객지에서 죽거나, 총에 맞거나, 사형선고를 받는 등 말이죠. 청와대 집터가 좋지 않은 걸까요. 그건 무속 관점이고, 저는 권력을 잘못 운용했기에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당대 최고 엘리트들이 관여했음에도 그런 결과가 나온 거죠. 세상은 진화해도 권력은 퇴행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권력자들의 비참한 말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권력은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하고 바보로 만들거든요.
장작을 도끼로 팰 때 결대로 도끼날을 넣으면 쫙 갈라지는 게 상식이고 공정입니다. 결대로 도끼질하지 않고 옆쪽으로 자꾸 날을 집어넣으면 절대 갈라지지 않죠. 국민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이니 답답한 거예요. 보이는 결대로 날을 집어넣는 게 권력 운용이고 정치인데, 후원회나 지지 세력, 댓글 부대 등이 곁다리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도끼질을 하다 보니 어긋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비극의 다음 주자가 되지 않으려면 명심해야 할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