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후계자로 지목된 서경배 회장의 장녀 서민정 씨. [동아DB]
오래전부터 재계는 서민정 씨를 아모레퍼시픽그룹(아모레G) 후계자로 지목해왔다. 현재 서씨의 그룹 지분율은 2.93%. 경영 승계가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지분율 확대가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씨가 보유한 로드숍 계열사 지분을 활용해야 하는데, 실적 악화로 승계 자금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서씨 앞에는 아모레퍼시픽 및 계열사의 실적 회복과 승계 자금 확보라는 두 가지 과제가 놓였다.
서씨는 올해 2월 아모레퍼시픽 뷰티영업전략팀에서 지주사인 아모레G 전략실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서씨의 직급은 직급체계 개편 전까지 과장급에 해당하는 ‘프로페셔널’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직급체계 개편으로 팀장 이하 모든 직급을 없애 직급이 따로 없는 상태다.
결혼 8개월 만에 이혼
서씨는 아모레G 지분 53.9%를 보유한 서경배 회장에 이어 아모레G 2대 주주다. 12세 때 아모레퍼시픽 주식을 처음 증여받았으며, 비상장 계열사인 이니스프리와 에뛰드, 에스쁘아 지분도 각각 18.18%, 19.50%, 19.52% 보유하고 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비상장 계열사의 총수 일가 지분이 20%를 넘으면 사익편취로 본다. 현재 서씨의 주식 평가액은 2100억 원대로, 그동안 줄곧 ‘대한민국 20대 주식 부자 1위’에 이름을 올렸다.반면 동생 서호정 씨는 1995년생으로 아직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그룹 지분은 물론, 계열사 지분도 갖고 있지 않다. 올해 2월 서민정 씨가 아모레G로 자리를 옮길 때 아모레G 지분 10만 주를 서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았다. 당시 서 회장은 서씨의 전 남편인 홍정환 씨에게도 아모레G 주식 10만 주를 증여했는데, 최근 서씨가 이혼하면서 주식도 회수했다.
홍정환 씨는 홍석준 보광창업투자(보광창투) 회장의 장남으로 보광창투에서 투자 심사를 총괄하고 있다. 지주사 BGF(0.52%), BGF리테일(1.5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보광그룹은 범삼성가로 분류된다. 홍석준 회장은 고(故) 홍진기 보광그룹 창업주(전 중앙일보 회장)의 아들이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라움미술관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홍석조 BGF그룹 회장의 동생이자 홍라영 전 라움 부관장의 오빠다. 따라서 홍정환 씨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는 사촌지간이다.
서민정 씨는 아버지 서 회장과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2016년 졸업 후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 앤드 컴퍼니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17년 아모레퍼시픽에 사원으로 입사해 경기 오산공장에서 화장품 생산 관련 실무를 익혔다. 그해 6월 퇴사하고 돌연 유학길에 올랐다.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친 뒤 중국 2위 전자상거래기업 징동닷컴에서 근무했다. 2019년 10월 다시 아모레퍼시픽으로 돌아와 국내 화장품 채널 조직인 뷰티영업전략팀에 합류했다.
로드숍 3사 실적 개선이 관건
5월 6일 서울 중구 명동 이니스프리 매장 앞에 반값 할인을 알리는 입간판이 놓여 있다. [동아DB]
이니스프리 등 로드숍 계열사들은 수년 전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중국의 경제 보복을 촉발한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를 기점으로 실적이 급하강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부터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뿐 아니라 국내시장에서도 맥을 못 추고 있다.
한때 ‘로드숍 신화’로 불리던 이니스프리는 2019년과 2020년 중국에서 140개 매장이 문을 닫은 데 이어 올해 말까지 170여 개를 추가로 폐점할 방침이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매장 상당수도 폐점이 예고된 상태다. 에뛰드 역시 지난해부터 자본잠식에 빠졌고, 에스쁘아는 2019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지난해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아모레퍼시픽이 서민정 씨를 중심으로 3세 경영체제에 돌입하려면 배당이나 상장, 매각 등을 통해 1조 원에 가까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로드숍 3사를 잘 키워 승계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꿈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실적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원활한 승계 재원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디지털 전환과 오설록을 통해 실적 회복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특히 온라인 매출 확대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아모레퍼시픽이 제안한 럭셔리 라인과 디지털 강화 전략이 올해 1분기 실적 개선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아직 승계를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며 “디지털 판매 확대로 영업이익률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며, 해외시장 및 온라인 매출 확대를 위해 전체 회사가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