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조 달러가 넘는 대규모 부양책을 발표했다. [AP=뉴시스]
반도체 사용되지 않는 IT 제품 없어
반도체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자동차 등 신산업에서 핵심 부품으로 사용된다. [GETTYIMAGES]
초기 팹리스 기업은 반도체 제조 시설을 보유한 IDM에 생산을 위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IDM은 자사 제품을 우선 생산했고, 일부 제품은 팹리스와 IDM이 경쟁 관계라 반도체 제조만 전문으로 하는 순수 파운드리의 필요성이 커졌다. 대만 TSMC는 1987년 이러한 팹리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첫 파운드리 기업으로 설립됐다. 우리나라가 1983년 D램 개발을 시작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던 시기에 대만은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미국 제조업의 특징 중 하나는 새로운 산업이 일정 수준으로 성장하면 부가가치가 높은 연구개발(R&D)은 미국 기업이 수행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제조 분야는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로 생산 거점을 옮긴다는 것이다. 반도체산업 역시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설계 분야는 미국 기업이 담당하고 제조 공정은 아시아지역으로 이동시켰으며, TSMC를 비롯한 대만 파운드리 기업들이 생산을 담당함으로써 상호 발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을 선두로 유럽, 일본 등 기존 반도체 선진국들이 반도체 제조 기반을 자국에 재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TSMC에 미국 내 파운드리 건설을 요구했고, TSMC는 지난해 5월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내 반도체 제조업 부흥을 위한 지원을 약속했으며, 인텔은 이를 기다렸다는 듯 200억 달러(약 22조3300억 원)를 투자해 파운드리 산업에 재진출한다고 발표했다.
미국뿐 아니다. 일본은 TSMC와 협력해 연구시설 및 후공정 생산공장 건설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에 메모리 반도체 왕좌를 빼앗긴 이후 반도체 제조 분야에 적극적이지 않던 일본이 이 분야에 다시 뛰어든 것이다. 유럽 역시 반도체산업 투자를 발표하면서 자급률 20%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반도체 제조를 외부에 위탁하던 국가들이 앞다퉈 과거로 돌아가 자국에서 제조까지 모두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가 사용되지 않는 정보기술(IT) 제품은 없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자동차 등 신산업에서는 반도체가 핵심 부품으로 쓰인다. 이번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사태와 같이 신산업뿐 아니라 기존 주력 산업도 반도체 공급에 따라 성과가 좌우될 정도로 반도체 역할이 매우 커졌다. 따라서 반도체 생태계에서 비중이 적게 평가되던 제조 분야가 재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 국가인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막대한 자금력을 투입해 반도체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정식으로 가입한 이후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기지로 활용하면서 세계의 생산 공장으로 성장했다. 더불어 자국 내 전자기기 생산 기업도 늘어나면서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고, 세계에서 반도체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가 됐다. 그러나 반도체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