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3월 27일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IRNA]
중국은 3월 27일 이란과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서명한 이 협정에 따르면 중국은 향후 25년간 이란으로부터 할인된 가격에 원유와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대신, 금융·에너지·항만·철도·5G(5세대) 등에 4000억 달러(약 446조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화리밍 전 주이란 중국 대사는 “이 협정에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물론 경제, 문화, 석유·가스·핵에너지, 보건의료, 군사 분야 등에서 양국이 폭넓게 협력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화 전 대사는 “중국은 1979년 미국과 수교한 이래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이란과의 거래에 신중을 기해왔다”며 “중·미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이란과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미국 제재 조치로 경제난에 빠진 이란
중국과 파키스탄 해군 함정들이 아라비아해에서 합동 훈련을 하고 있다. [chinamil]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중국은 이란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중국은 전체 원유 수요량의 75%를 외국으로부터 도입한다.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는 중국 경제는 물론, 국가 안보에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 맹주이자 대표적인 반미국가로 중동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중국은 지난 수년간 이란과 관계 강화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이미 이란의 제1교역국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은 미국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도 암암리에 이란으로부터 원유를 대량 수입해왔다. 이란을 중동지역 교두보인 동시에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카드’로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국의 이번 협정에는 합동 군사 훈련, 군사기술 및 무기류 공동 연구개발, 군사 정보 공유 등이 포함돼 있다. 일각에선 중국이 앞으로 투자시설 보호를 명분으로 이란에 자국군 주둔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중국은 2019년 12월 27일부터 나흘간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 인근 오만해와 인도양 북부에서 러시아, 이란과 합동 해상 훈련을 사상 처음 실시했다.
중국은 향후 이란과 군사 협력을 강화해 ‘중국-이란-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3각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미국과 인도의 군사 협력에 대항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은 이란과 미국의 관계가 일부 개선되더라도 이란과의 연대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에 견제구를 날렸다. 왕 부장은 “양국은 영구적이고 전략적인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대표적 친중국가인 파키스탄과의 연대도 더욱 강화하고 있다. 2월 1일 파키스탄에 50만 회분의 백신을 무상 지원했으며, 100만 회분의 백신을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중국이 외국에 백신을 무상 지원한 것은 파키스탄이 처음이다. 왕 부장은 3월 22일 샤 메흐무드 쿠레시 파키스탄 외교장관과 전화통화에서 “양국은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는 훌륭한 전통이 있다”며 “중국 정부는 파키스탄에 대한 백신 지원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차관과 백신 무상 지원 파키스탄
중국은 그동안 파키스탄에 대규모 자금을 차관 형식으로 지원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파키스탄을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핵심 국가로 간주하고 양국 간 경제회랑(CPEC) 구축에 나서기도 했다. 양국은 2016년 파키스탄 과다르항에서부터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카슈가르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3000㎞의 CPEC 사업에 합의했다. 중국은 620억 달러(약 69조 원)를 CPEC에 투자해 고속도로, 철도, 송유관, 광케이블, 산업단지 등을 건설하고 있다. 중국의 해외 단일 국가 투자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중국은 이 사업의 대가로 과다르항에 대한 43년 운영권을 따냈다. 호르무즈해협에서 동쪽으로 400㎞ 떨어진 과다르항은 물류 요충지일 뿐 아니라, 군사기지로도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은 과다르항의 안전 확보를 명분으로 해군 군함을 파견해 파키스탄 해군과 공동 경비 작전을 펼칠 계획이다. 과다르항에 함정을 배치할 경우 중국은 인도양과 아라비아해에서 펼쳐지는 인도 해군의 활동과 미국·인도의 합동 해상 작전 등을 손쉽게 감시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파키스탄과 전방위적으로 군사 협력을 해왔다. 중국은 파키스탄에 JF-17 선더 전투기를 비롯해 디젤 추진 공격용 잠수함, 각종 함정, 탱크와 장갑차, 대포, 무인기 등을 판매해왔다. 양국 해군은 그동안 수시로 합동 해상 훈련을 실시했다. 중국은 파키스탄에 위성위치확인체제인 베이더우 시스템을 제공하는 한편, 원자력발전소도 건설해주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4월 1일 코로나19에 걸린 아리프 알비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보낸 위로문에서 “양국은 전천후 전략적 협력 파트너”라며 “중국 정부와 국민은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파키스탄과 늘 굳건히 함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알비 대통령은 앞서 중국 제약사 시노팜의 백신을 맞았지만 확진 판정을 받았다.
대북 관계 강화, 쿼드 저지 가장 효과적 수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019년 1월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China Daily]
중국 입장에서는 쿼드와 한미일 협력을 저지하기 위해선 북한과의 관계 강화가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중국이 앞으로 북한과 관계를 한층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김정은의 방중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중국은 한국의 쿼드 참여를 견제하고 있다. 왕 부장은 4월 3일 푸젠성 샤먼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다자주의를 함께 수호하고 공동 이익을 심화, 확대하기를 바란다”며 한국의 쿼드 참여 반대 입장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 왕 부장은 또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 체제와 완전한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앞으로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준비하는 등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던 북한과 교역을 재개하고 지원도 대폭 늘릴 것으로 보인다. 또 북한과 ‘혈맹’ 관계를 다시 강조하면서 이를 미국과의 패권 다툼에 활용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이 비록 ‘핵보유국’이 되더라도 중국 처지에서 북한은 파키스탄처럼 전략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을 자국 경제권에 완전히 종속시키기 위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케 하려는 속셈도 보여왔다. 핵보유국 파키스탄은 중국 경제에 사실상 편입됐을 뿐 아니라, 인도를 견제하는 역할도 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의 의도는 러시아와 함께 이란, 파키스탄, 북한 등을 묶어 이른바 ‘반미의 축(axis of anti-US)’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의 반미국가 연대 전략이 미국의 쿼드 전략과 정면충돌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