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 [동아DB]
이 같은 전통적 요소 이외에 ‘대표성’이라는 개념도 현대 정치와 선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대표성은 민심과 구도를 함께 담기도 한다. 2017년 대선 무렵 더불어민주당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차기 권력을 대표했다.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의 대표성에는 촛불민심과 ‘문 후보 대 박근혜 전 대통령’ 구도가 스며들어 있었다. 이 때문에 문 후보는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등의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尹 지지율, 정권교체 바라는 민심도 내포
요즘 윤석열 검찰총장은 반(反)문재인(반문)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국민의힘도 반문을 대표하지만, 국민의힘의 반문은 파괴력이 약하다. 이명박(MB),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표 세력으로 여전히 인식되기 때문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광주 5·18 민주화운동 사죄, 10년 보수 정권 사과 움직임으로는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지지율이 급상승한 윤 총장은 MB, 박 전 대통령을 수사하기도 했다. 윤 총장 지지율에 반영된 반문에는 과거와 단절은 물론, 정권교체 민심과 ‘윤 총장 대 문 대통령’ 구도가 내포돼 있다. 윤 총장이 범보수 후보 적합도에서 늘 1위에 오르는 이유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윤 총장의 반문 대표성은 여론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1월 17일 윈지코리아컨설팅의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세대의 비중과 윤 총장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중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세부 지표에서도 격차가 크지 않았다(아시아경제 의뢰, 11월 15∼16일 1000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9%p, 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윤 총장은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가상대결에서 42.5%를 획득해 문 대통령 비(非)지지 응답층(45.2%)을 거의 흡수했다. 30대 이상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다만 18∼29세에선 윤 총장이 31.2%로 문 대통령 비(非)지지층(46.7%)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그 외 후보, 없음, 모름/무응답 등으로 분산됐기 때문이다. 무당층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문 대통령 비지지층에서는 윤 총장 적합도가 76.9%나 됐다. 세부지표에서 이낙연 대표 지지율과 비교해볼 때 윤 총장의 반문 대표성은 상당히 단단하다.
반문 대표성의 한계
윤 총장의 반문 대표성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윤 총장은 11월 11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여야 대상 1위로 나타나 온오프 공간을 달군 바 있다. 일부 언론에선 ‘윤석열 현상’으로 조명하기까지 했다. 윤 총장은 24.7%를 획득해 양강체제를 구축해온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한꺼번에 제쳤다(쿠키뉴스 의뢰, 11월 7∼9일 1022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윤 총장의 깜짝 1위는 조사기법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11월 1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 지지율은 11%로 이낙연 대표, 이재명 도지사 각 19%에 이어 3위로 조사됐다. 이틀 사이에 13.7%p 차이가 났다(자체, 11월 10~12일, 1001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한길리서치 여론조사는 조사 대상 여야 ‘인물 보기’를 이낙연 대표, 이재명 도지사, 윤석열 총장,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무소속 홍준표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 6명으로 한정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소속 인물은 아예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국민의힘 지지층 62.0%가 윤 총장을 선택했다. 안 대표, 홍 의원 등은 5% 안팎에 그쳤다. 이에 비해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인물 보기 없이 ‘자유 응답’ 방식을 택했다.
응답률도 한국갤럽은 17%였지만 한길리서치는 3.8%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응답률이 낮으면 열성 지지층 의견이 상대적으로 더 반영될 수 있다. 열성일수록 여론조사에 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을 싫어하는 응답자들이 윤 총장을 적극 선택했을 개연성이 있다. 또 유선 비중이 늘어나면 보수 성향, 무선이 늘어나면 진보 성향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한국갤럽의 유선 비중은 15%인 데 비해, 한길리서치는 23%를 활용했다.
윤 총장의 반문 대표성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우선 국민의힘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반사효과’ 탓이다. 만약 국민의힘이 내년 재보궐선거, 전당대회 등을 거쳐 분위기 쇄신에 성공한다면 윤 총장의 반문 대표성은 반감될 수 있다. 여론조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문 대통령 지지율은 45∼50%, 민주당은 35∼40%를 오간다. 임기 후반 이런 지지율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어느 정권보다 강력한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반문 대표성의 확장을 제한하는 또 다른 요소다.